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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 La Mere> 어머니 La Mere, 아버지 Le Pere
  • 작성자 오*수

    등록일 2016.07.18

    조회 4159

관람일자 : 어머니 - 2016년 7월 17일 15시 공연, 아버지 - 2016년 7월 17일 19시 30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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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어머니]와 [아버지]는 현재 프랑스에서 떠올랐고 유럽에서 주목 받고 있는 젊은 극작가인 플로리앙 젤레르의 희곡을 국립극단이 가져온것이다. 시작은 [어머니]가 먼저였다. 1979년생인 프랑스 출신의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는 2010년에 [어머니]를 발표했다. 2010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어머니]는 평단의 호평 속에 2011년 몰리에르 어워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이 작품은 프랑스를 벗어나 유럽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어머니]의 성공에 힘입어 플로리앙 젤레르는 연장선격으로 [아버지]를 내놓았다. 2012년에 역시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아버지]는 2년 전 공개된 [어머니]보다 더 큰 성과를 냈다. 이 작품은 2014년 몰리에르 어워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고 2015년엔 [플로리다](Floride)란 제목의 코미디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다. 이후 브로드웨이로도 진출하여 올해 열린 토니상의 연극 부문에서 박근형 만큼이나 위대한 배우인 프랭크 란젤라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국의 올리비에상도 수상 이력에 추가했다. 특히 이 작품은 영국에서의 지지가 대단해 자국에서보다도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국립극단은 플로리앙 젤레르가 2010년과 2012년에 걸쳐 별개의 작품으로 올린 두편의 작품을 한번에 올리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만약 각각의 작품이 프랑스 초연 직후에 국내에서 공연됐다면 당연히 개별 작품으로 공연됐을것이다. 아니면 먼저 공연됐던 [어머니]보다 더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영미권까지 진출하여 최신 화제작으로 떠오른 [아버지]를 들여오고 후발주자로 [어머니]를 선보였을지도 모른다. 올해 올리비에상과 토니상까지 수상한 현재는 플로리앙 젤레르의 희곡들 중 [아버지]가 대세다. 국립극단이 두 작품을 전형적인 기획으로 올렸다면 플로리앙 젤레르가 그랬던것처럼 연장선격인 작품으로 중심을 잡고 같은 극장에서 [어머니]를 올리고 바로 이어 [아버지]를 올리거나, 반대로 [아버지]를 올리고 그보다 앞서 씌여진 [어머니]를 공연했을수도 있다.

 

국내에선 [어머니]나 [아버지]가 유럽이나 영미권보단 늦게 유입된 근작이니 극단이 두 작품을 동시 기획했을 때 가장 손쉽게 고안해낼 수 있는 공연 형태는 연이어 올리는 방식이다. 원래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독립적인 작품으로 선보였기 때문에 따로따로 올리는 형태가 맞는 방법이다. 그러나 명동예술극장에서 이 두 작품을 주관하게 된 국립극단은 해외에서와는 다른 방식을 취하여 차별화를 모색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한번에 사와 국내에서 올릴 때 당연한 공연 구성으로 떠올릴 수 있는 연속 공연 형태가 아니라 교차상연 방식이란 무대적 실험을 추구한것이다. 플로리앙 젤레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카포네 트릴로지]같은 작품처럼 애초에 연작 개념으로 씌여진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해외 공연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올리는 국립극단의 국내 공연 방식은 파격적이다. 작품을 떠나 공연 형태만으로도 주목을 받을 수 있게 구성돼서 해외 공연들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써 재해석의 시각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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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와 극작가만 동일할 뿐 같은 무대에서 다른 제작진이 선보이는 독립적인 작품을 교차상연 방식으로 진행하는 구성은 사실 국내 공연계에서 흔한 일이다. 제작비 절감과 대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현재도 대학로 등지의 소극장에서 활용되고 방법이기 때문이다. 대학로 가면 낮이고 밤이고, 공연계 비공식 휴무일인 월요일이고 그 외 요일이고 늘상 볼 수 있는 염가 로맨틱코미디 연극들이 영화처럼 교차상연 방식으로 공연되고 있는걸 볼 수 있다. 염가의 저질 로맨틱코미디 연극이라고 다 그런건 아니고 일부 작품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놀이공원 아동극 형태처럼 무리한 속도로 회전되고 있다. 이런 작품은 예매 안 하고 가도 지하철 입구에서부터 일정 간격으로 자기구역 사수하고 있는 삐끼를 통하면 즉석에서 만원 안팎의 값으로 볼 수 있다.  

 

국립극단이야 돈 없어서 궁상을 떠는건 당연히 아니고 오로지 예술적 도전이란 과제를 숙명 삼아 명동예술극장같은 호화 공간에서 배부른 실험을 하고 벌였다. 그래서 예전부터 대학로 등지에선 흔하게 자행된 교차상연 방식이 예술적 실험이란 미명으로 포장되어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나 역시도 국립극단에서 명동예술극장같은 국보급 건물을 깔고 플로리앙 젤레르라는 프랑스 신진 극작가의 화제작 두편을 교차상연 방식으로 진행하는것에 남다른 파격과 독특함이 느껴져 관심이 갔다. 대학로에서 저질 로맨틱코미디 연극들이 교차상연으로 공연되는 상황에선 그저 딱하고 한심하게만 보였는데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 준다는 말처럼 국립극단 기획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매 회 무대를 재활용하여 교차상연 되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근사한 배경까지 합쳐지면서 제법 품위있는 명품으로 와닿는것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명동예술극장에서 교차상연작으로 정해진 두 작품의 티켓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외에선 별도로 올려진 작품을 연속공연이 아닌 교차상연으로 올리면서 제작비가 절감됐을텐데 공연에서 궁기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연작 정서를 풍기는 교차상연 방식으로 인해 두 작품을 동시에 예매한 사람들이 많을텐데 정가는 다른 명동예술극장 공연들처럼 개별적으로 똑같이 매겼기 때문에 다른 명동예술극장 공연들보단 상대적으로 순익이 많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내 경우엔 이례적으로 예매오픈했던 날에 조기예매로 두 작품의 좌석을 선점했다. 평상시엔 명동예술극장 공연들은 조기예매기간에 느긋하게 예매했었다. 행여 조기 예매 기간을 놓쳐도 상관없었다. 명동예술극장 공연들을 상시적으로 전석 30프로 할인을 해주고 있고 예매수수료도 없는 신한올댓컬쳐를 이용하면 된다. 인터파크랑 연동돼서 자리는 후져도 신한카드 포인트도 중복 결제할 수 있어서 국립극단 자체 예매보단 할인 받기에 더 좋은게 신한올댓컬쳐다. 

 

나는 명동예술극장에서 좋은 자리에서 보는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명동예술극장 공연들 중 자리 구하느라고 애먹었던 경우는 조기예매기간을 지나고 생각지도 못한 매진사례로 평소엔 막아 놓는 3층석까지 개방하며 성황리에 끝났던 2015년 [리어왕]공연이 유일했다. 명동예술극장 공연 중 처음으로 전석 매진이 돼서 보조석까지 깔아야 했던 [러브,러브,러브]도 내 경우엔 예매 초반에 자리를 잡아서 편하게 봤었다.

 

명동예술극장 공연들의 조기예매 기간은 늘 여유있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경우엔 상연되는 방식의 특수성 때문에 공연 기간 내내 상시적으로 두 작품과 연관된 릴레이 할인을 조기예매 할인률과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일반 할인폭이 가장 큰 조기예매 할인에 크게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작품의 화제성과 명동예술극장 공연의 높은 평균 객석점유율을 고려하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예매는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두 작품 중 한편만 본다거나 일자를 나눠서 본다면 별 상관은 없지만 교차상연 방식으로 연속 공연되는 주말 공연의 이점을 누리려면 신경을 써야 했다. 예매오픈 날에도 잔여석이 넉넉하지 않았다. 나는 교차상연이란 특수한 공연형태를 무조건 즐길 생각이었기 때문에 주말 하루 날 잡아서 연속관람하는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작품과 별개로 공연 관람 때문에 복잡한 명동을 한 달 내에 두번이나 가고 싶지가 않았다. 이건 뭐 걸을 수가 있어야지. 명동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금요일 저녁 퇴근시간대의 교대역 환승구역을 걷는 기분이다. 어기적어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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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상연작이지만 작가만 같을 뿐 독립된 작품이고 제작진도 다르고 일일이 정가개념에 맞춰 따로따로 본것이라 후기도 개별적으로 작성할 생각이었다. [어머니]를 보고 [아버지]를 봤는데 [아버지]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자 공연 후기를 개별적으로 올리는게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두 작품이 연속 공연으로 선보여서 일정 간격을 두고 보게 됐다면 당연히 후기도 그때그때 느낀 생각을 따로따로 옮겼겠지만 지금과 같은 교차상연 방식, 주말 2회 공연 땐 특히나 두드러져 보이는 의도적인 교차상연 형태로 보게 되는 경우엔 독립된 작품으로 구분하는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국립극단이 두 작품을 교차상연작으로 기획하면서 의도한 연작 정서의 개념이 작품의 통일성을 이어주며 온전하게 물들었기 때문에 국내 공연은 사실상 한 작품으로 묶어 이해하기가 쉽다. 무대 구성의 특이점이 없어서 현재와 같은 무대구성으로 연속 공연됐다면 개별 작품으로 받아들이기가 수월했겠지만 교차상연 방식으로 선보이는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내만의 교차상연이란 특수성이 자국에선 2년 간격으로 선보인 두 작품을 견고하게 연결해주는 접착체 구실이 돼주었다. 이번 국내 공연을 선례삼아 해외에서도 교차상연 방식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선보여도 괜찮을것같다. 특히 뒤에 나온 [아버지]가 기대이상의 성과를 내면서 [어머니]가 묻히고 있는데 완성도 면에선 [아버지]가 더 우수하지만 [어머니]도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아버지]에 가려 [어머니]가 소외되는건 아쉬운 일이다. 현재 토니상과 올리비에상까지 받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정점에 이른 상태이니 이참에 [아버지]의 모태가 된 [어머니]도 화두 삼아 국내의 국립극단 기획처럼 교차상연 구성으로 묶는것도 영리한 돌파구가 될것이다.

 

연작 정서로 진행되는 작품은 아니다. 외관상 연작 정서의 작품처럼 보이고 있긴 한데 두 작품이 공통점은 많지만 연작 구성의 연계성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작가가 [어머니]를 쓴 다음 [아버지]를 쓰면서 연작 구성을 고려한것도 아니다. 연작 구성은 아니고 리메이크 개념으로 봐야할것같다. 주말에 하루 날 잡아서 두편을 몰아 본건데 사실상 주인공 성별만 바꾼 같은 작품을 두번 보고 나온 느낌이었다. 관람 순서에 따라 두편 중 한편은 새로울게 없는것으로 느껴질 요소가 발생하는것이다. 플로리앙 젤레르가 2010년 발표한 [어머니]를 발전시켜 다시 한번 만든 [어머니]가 [아버지]라고 보면 된다. 극적인 상황을 좀 더 추가하고 인물의 감정기복과 드라마를 좀 더 살려 대상을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전향시킨것이다. 이런 연유에서 내가 두 작품의 공연 후기를 묶어 작성하기로 마음먹은거다.

 

작가와 기획사만 같다 뿐 국내판 [어머니]와 [아버지]는 출연진과 제작진이 전혀 다르지만 희곡의 영향력이 커서 모르고 보면 동일 제작진이 두편의 작품을 교차상연작으로 올린것처럼 보인다. 두편을 다 봤으니 여유가 생겨 하는 말이긴 하지만 굳이 두편 다 안 봐도 된다. 작품으로써 접근하자면 두 작품의 구분점이 명확하지가 않기 때문에 연속으로 보고 있으면 동어반복의 느낌이 강하다. 뫼비우스의 띠 같다. 분명 다른 제작진이 만든 독립된 작품이지만 모든 설정, 모든 구성이 다 겹친다. 장면 구성과 노인이나 중년의 정신질환을 다룬 남다른 시각이라며 호평 받았던 작가의 인물 심리 표현마저 똑같아서 기시감이 생긴다. 이걸 교차상연으로 연속 관람하고 나면 도돌이표로 무한 반복되는 돌림노래를 듣는 기분마저 든다. 할머니 배우가 한 소절, 할아버지 배우가 한 소절, 다시 할머니 배우가 한 소절, 할아버지 배우가 한 소절 부르는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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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개념이면 봐야할 이유가 분명해지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같은 경우는 비공식 리메이크 개념이라서 공연 외적인 요소에 기인하여 봐야하는것이 아니라면 두편 다 봐야할 가치가 분명하게 살지는 않는다. 주인공의 연령대와 성별이 다르고 제작진과 배우가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두편 다 보는것이 낭비까지는 아니지만 작품적인 차별성은 떨어진다. 둘 중 한 편만 봐도 상관없다. 두편 다 본다면 [어머니]를 보고 [아버지]를 보는것을 추천한다. [어머니]를 가다듬어 좀 더 풍부하게 살린 극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공개된 순서도 [어머니]다음 [아버지]이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나 발전된 방향을 순서대로 파악하기가 쉽다. 그럴것같아서 [어머니]다음에 [아버지]를 관람할 수 있게 관람일정을 조절했는데 [아버지]를 뒤에 보길 잘했다. 하루 2회 공연하는 주말엔 격주 단위로 두 작품의 공연 순서가 바뀌기 때문에 교차상연 관람 순서의 선택권도 공평하게 분리됐다.

 

[어머니]에 비해 [아버지]는 정신질환을 다루는 시선이나 인물을 대하는 묘사 방식이 더 성숙하고 입체적이기 때문에 평단의 반응도 [아버지]에 기울어진것같다. 기술적으로 더 세련된 작품은 [아버지]이다. [아버지]를 보고 나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쓰기 위한 작가의 습작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재미면에선 [어머니]가 더 좋았지만 완성도는 [아버지]가 더 우수하다.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를 보면 작품이 좀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치매 소재가 너무 지겨워서 아무리 치매 환자의 1인칭 시점으로 정신질환을 남다르게 해석해서 극의 농도를 풍부하게 살렸다 해도 80대 치매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아버지]는 소재 때문에 흥미가 반감됐다. 치매 소재에서 다룰 수 있는 범위엔 한계가 따른다. 아무리 다른 시각으로 해석을 하려 해도 치매 환자의 행동양상이 고정화 돼있기 때문에 묘사에 제약이 큰것이다.

 

치매 환자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작품으로 화제를 모은 최근작 중에선 [스틸 앨리스]가 있다. 줄리안 무어가 오스카상을 받았던 [스틸 앨리스]는 치매 환자의 1인칭 시점을 섬세하게 풀었다 하여 호평을 받았는데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대체 어느 부분에서 치매 환자의 1인칭 시점이 제대로 들어가 치매 소재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하는지 의문이었었다. 작품에 대한 평가에 거품이 끼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줄리안 무어에게 공로상 같은 여우주연상을 수여하기 위한 일시적인 핑계랄까. 언론의 호들갑으로 작품성에 대한 호감도가 반짝 일어난것같았다. [스틸 앨리스]에서 배우들의 연기야 좋았지만 다른 치매 소재물과 별 차이는 없는 전개였다. 1인칭 시점이란것도 경쟁력이 부족했다. 다른 치매 소재물, 하다못해 [내 머릿속의 지우개]같은 얄팍한 치매 소재물도 주인공의 치매 초기 증상 때는 1인칭 시점으로 치매 환자의 서글픔을 묘사했다. 김수현 작가의 [천일의 약속]은 어떤가. 그 작품도 치매 묘사는 뻔하기 그지없었다.

 

[스틸 앨리스]도 주인공인 줄리안 무어의 치매 증상이 똥,오줌도 못가리는 말기 증세로 넘어가면 작품에 부각시켰던 1인칭 시점의 치매 환자 심리를 포착하는데에는 실패했다. 치매 환자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치매 소재물이 제대로 효과적이려면 무대극이나 영상물로의 변환보단 희곡이나 소설이 더 적합한것같다. 매 순간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불치병인 치매를 환자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했을 때 반전 효과나 상황을 초현실적으로 느끼는 환자의 불안증세, 절박한 심리 묘사의 가능성이 독자의 상상의 여지가 열려있는 활자 구성에 더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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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그런 면에서 시각적으로 접근하는 극에서 표현할 수 있는 치매 소재의 한계를 다른 치매 소재물들에 비하면 남다른 방식으로 뚫었다고 할 수 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착시 현상이 수시로 일어나는 치매 환자의 1인칭 시점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자고 일어나면 주변 상황이 바뀌었고 집도 내 집이 아니라 하고 딸은 이혼한 전 남편과 살고 있고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마구 일어나고 있고 실제론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지 않았지만 두들겨 맞은것같아서 공포에 질려 있는 등의 혼돈의 상황을 1인칭 시점에 걸맞게 근접시켰다. 그래서 작품은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수시로 흘러 나온다. 장면 전환이 많고 암전도 잦아서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지만 치매 환자의 1인칭 시점이란 설정으로 전개 방식의 취약점을 극복했다.

 

암전을 통해 장면이 전환되면 상황이 바뀌어 있다. 심각한 치매증상을 앓고 있는 주인공 앙드레는 매 장면마다 어리둥절해 있고 매번 달라지는 주변 상황에 날카롭고 신경질적이다. 극이 전면에 걸쳐 치매 환자의 1인칭 시점을 그린것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앙드레 때문에 힘든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철저히 앙드레를 중심으로 혼란의 상황을 묘사한 뚝심이 심리극으로써 굉장히 인상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작품이 1인칭으로 치매 묘사를 그리면서 일일이 상황 설명을 하진 않기 때문에 객석에서 극의 전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좀 있는데 이걸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면 상황 묘사에 수긍이 갈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그 많은 치매 소재물에서 치매 환자의 시점으로 정신질환을 제대로 다룬 작품이 없었다는것이다. 흔하디 흔한 치매 소재물인 [아버지]가 소재의 식상함을 이겨낼 수 있었던것도 시점 분할의 시도가 의도한대로 흡수가 됐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의 1인칭 시점이 새로운건 아니지만 그동안 나온 1인칭 시점의 치매 소재물이 묘사 방식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설정도 까다로운 난관이었다. 다행이 플로리앙 젤레르는 치매 설정의 위기를 이겨냈기에 흔한 방식의 흔한 소재 차용에도 불구하고 유독 새롭게 보이는것이다. 특히 영미권에서 이 작품이 각광을 받는것은 그만큼 영미권에서 비슷한 소재가 흔하게 남발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비춰지는것같다. 국립극단의 박정희 연출도 희곡의 의도를 충실히 옮기는데 성공했다.

 

수십년만에 국립극단 연극에 복귀한 박근형의 호연도 감동적이다. 박근형은 심리극인 이 작품의 중심을 단단하게 받쳐주며 극의 기둥으로써 제 몫을 다 하고 있다. 드라마가 풍부한 배역 해석으로 치매 환자의 절절한 감정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직설적인 연기를 선호하는 국내 관객들의 기호에 맞으면서도 희곡의 인물 설정을 이해하고 있다. 배우가 가진 친근함도 극의 몰입에 도움을 주고 있다. 수십년간 안방극장에서 함께한 대중적인 노배우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좌석점유율도 [아버지]를 담당한 박근형 쪽이 강세다. 윤소정도 연극계 스타이지만 박근형의 대중성과 한창 때의 인기를 떠올려 보면 밀릴 수 밖에 없는것같다. 둘 다 각자의 무대에서 잘 하긴 했지만 윤소정의 [어머니]에선 나오지 않은 기립박수가 박근형의 [아버지]에선 나와서 배우가 가진 대중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배우의 노련함과 성실함이 깃든 연기였다. 고령의 나이에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건데도 쩌렁쩌렁하다. 영상물에 주로 출연하는 연기자가 무대에 섰을 때 흔하게 벌어지는 발성의 한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걸 보면 발성은 타고난것도 있는것같다. 예를 들면 비슷한 연배의 나문희나 이순재는 박근형보다 무대에 더 자주 서고 있는데도 발성의 울림이 영상물과 달리 떨어지는데 나는 이걸 나이탓으로 봤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70대 중반의 박근형은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건데도 무대 연기와 영상물 연기의 괴리감이 생기지 않았다. 같은 연배는 아니지만 배종옥 같은 경우도 영상물에서와 달리 무대에선 훈련이 덜 된 탓인지 발성이 굉장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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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보다 2년 먼저 나온 [아버지]의 전신격인 [어머니]는 중년 여성이 앓고 있는 빈 둥지 증후군을 다룬 작품이다. [아버지]가 노년 문제를 다뤘다면 [어머니]는 중년 문제를 다뤘다. 근데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도 노년 문제를 그린것처럼 느껴진다. 해외와 달리 두 작품을 교차상연작으로 묶은 국립극단은 [어머니]의 배역 설정과 달리 배우들을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구성하여 연작 정서에 괜한 욕심을 부렸다. 두 작품은 연작 구성도 아니고 국내판 전개 양상도 원래 희곡의 설정을 따르고 있지만 국립극단은 출연진 섭외로나마 은연중에 패키지 효과를 보려는것이다. 배우의 레파토리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70대의 윤소정이 굳이 50대 초반의 여주인공을 연기할 필요도 없고 배역 나잇대 덕분에 윤소정 외의 대안도 많았을텐데 [아버지]와의 연작 구성 욕심에 출연진 선택에 무리수를 두었다.

 

배역 나잇대의 설정으로 인한 현실적인 묘사가 관건인 작품이라 공감대 측면에서 캐스팅에 대한 무대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보단 가급적 배역 나잇대에 맞는 배우를 기용하는것이 작품의 효과를 살릴 수 있는데 [어머니]의 캐스팅은 그런 면에서 위태롭다. 배역 설정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극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기운과 달리 기용된 배우들의 나잇대가 너무 높아서 정서적으로 겉도는 지점이 생겨 버린것이다. 50대 초반의 배역을 맡은 윤소정이 70대다 보니 남편 역도 70대인 이호재가 맡았고 20대 아들은 쉰살에 다가선 박윤희가 촐랑거리는 모습으로 연기하고 있다. 윤소정이 캐스팅 된 상태에서 20대 아들 역을 20대나 30대 초중반의 배우에게 맡기면 아들이 아닌 손자처럼 보일까봐 1967년생인 박윤희를 섭외한것같은데 박윤희가 동안인 편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이에서 오는 한계가 생겨 버려서 코미디 설정의 역할극처럼 보인다. 오히려 곧 쉰살이 될 박윤희가 여주인공의 남편 역을 맡아야 하는 작품에서 철없고 여자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20대 날라리 아들 역을 맡고 있으니 분위기가 되게 괴이해지는것이다. 연기 자체는 다들 좋았지만 배역 나잇대에서 생기는 배우들의 괴리감은 아쉽다.

 

[어머니]는 여자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20대 중후반의 아들을 둔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작품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그녀는 폐경기에 접어든지 얼마 안 지난것으로 보인다. 늘상 업무로 바쁜 남편과 결혼생활한지 25년이 됐다. 혼자 오래 집을 지키고 있다 보니 살림하는 중년 여성들에게 많이 걸린다는 빈 둥지 증후군을 앓고 있다. 날이 갈수록 그녀가 앓고 있는 질병은 심각해진다. 그녀는 사실상 입을 일이 없는 빨간색 외출용 원피스에 집착하며 과시적인 색깔의 빨간색 드레스를 입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 확립과 폐경으로 인해 상실한 여성성을 회복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여주인공과 그녀 주변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뒤에 나온 [아버지]처럼 주인공은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되고 주변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며 여전히 혼자 남아 쓸쓸한 모습으로 끝나는것도 똑같다. 희망없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기력해진 상태로 방치되다시피 버려진 모습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소외된 중년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3년 만에 무대로 복귀한 윤소정의 연기도 호소력있고 이호재와의 호흡도 자연스럽다. 오랜 세월 무대에서 익은 이호재의 힘을 뺀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도 윤소정의 연기만큼이나 무대 장악력이 뛰어나다.

 

윤소정은 3년 전 [에이미]때가 일흔을 맞이했을 때이고 그 때 [에이미]를 끝으로 무대 은퇴를 암시했는데 이렇게 다시 무대극에서 윤소정의 연기를 볼 수 있게 돼서 반갑다. 윤소정 자신은 70살 되면 은퇴할것이라고 누누히 밝혔었다. 근데 70넘은 지금도 무대 연기를 하고 있다. 근데 윤소정 나잇대의 배우라면 작품 하나하나가 마지막이다, 란 생각으로 임할 수 밖에 없을것이다. 더군다나 연극무대는 한 호흡으로 가는것이다 보니 배우가 나이를 먹을수록 부담스러운 도전인데 그런 면에서 수십년간 무대에 섰던 연극계 스타인 윤소정 입장에선 개인적 의미로써 무대 은퇴작에 대한 준비를 매 작품마다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번 작품 출연도 격일 출연 일정이라 수락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론 은퇴하고 싶지 않지만 나이에서 오는 한계를 인정하고 은퇴작의 의미를 새기는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3년 전 [에이미]의 재공연 출연이 무대 은퇴작이 될것임을 암시했던것같다. 70넘어서까지 무대에 서는 배우가 많지 않은 현실이니까. 이번 [어머니]도 [에이미]때처럼 은퇴 무대란 생각으로 임할것같다. [어머니]이후에도 무대 연기를 한다면 그건 배우에겐 덤으로 얻는 선물이 될것이다. 발레리나 강수진 같은 경우도 40대 들어서부터 은퇴를 매번 번복했었다. 나이와 체력에 대한 한계를 예상하고 매 작품할 때마다 은퇴를 암시했는데 결국 쉰살까지 전막발레를 하고 은퇴를 결심하지 않았나.    

 

[아버지]의 전신격으로 세워진 [어머니]도 [아버지]처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가중된다. 아무래도 빈 둥지 증후군이란 현대의 질병보단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치매가 공감대 측면에선 접근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에 작품의 접근성은 [아버지]가 좀 더 좋다. [아버지]의 드라마가 암시와 생략의 효과가 적극적으로 가미된 [어머니]보다 더 직접적이면서도 풍부하기 때문에 극적으로도 더 효과적이다. [어머니]는 이게 70대 윤소정이 연기한 덕분에 처음부터 빈 둥지 증후군보단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의 외로움으로 느껴지는데 배역 나잇대와 근접한 40~50대의 실력있는 배우가 중년 배역을 소화했다면 작품의 모호한 심리극의 기운을 의도한만큼 살려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통해 플로리앙 젤레르는 충분히 촌스러운 감정의 신파물로 호소할 수 있는 대상의 선정과 소재의 구성을 간결하고 깔끔한 방식으로 걸러냈다. 작가는 현대사회의 노인과 중년이 앓기 쉬운 정신질환의 문제와 이들이 느끼는 소외감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재에서 기인하는 또 다른 뿌리를 발굴해 냈다. [어머니]와 [아버지]란 거대한 대상을 선정했을 때의 화두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성과 새로운 시각,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시켰다는 점에서 오늘의 극작가로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작가의 나이가 아직 30대란것에 업계가 호들갑을 떠는것같다. 이해한다. 늘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젊은 수혈을 필요로 하는 업계가 자신들이 원하는 재능있고 겉멋 들지 않은 30대 작가가 나타나 확실한 주관을 갖고 굵직굵직한 소품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으니 쌍수 들고 환영할만하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공연계에선 눈에 띄는 1980년대 태생의 극작가 이름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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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La Mere

- 2016.07.14 ~ 2016.08.15

- 월.목.금 19시 30분 / 수 15시 / 주말 15시, 19시 30분 / 화쉼
* <아버지 Le Père>, <어머니 La Mère> 각 공연별 개별 예매
* 하단 공연 스케줄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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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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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정완기

    우수한 리뷰. 멋저용

    2016.07.23 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