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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동예술극장 공개리허설ㅣ리어왕> 광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
  • 작성자 이*욱

    등록일 2015.05.10

    조회 3207

윤광진 연출의 번역극을 보면 작품이 원작 안에 머물지 않고 다른 작품이 개입해 확산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못생긴 남자>는 타자화된 욕망에 내면화되어 모르모트처럼 소비되다가 폐기처분되는 과정이 신탁에 휘둘리는 오이디푸스의 21세기 버전이라고 봤습니다. 소극장 작품으로 초연을 봤을 때 소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 작품은 그해 연극평론가가 선정한 ‘2011 한국연극 베스트3’에 꼽혔지요.

 

관객으로 하여금 해석 혹은 상상의 여지를 넉넉하게 남겨두는 방식이 윤광진 연출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윤광진 연출의 대표작인 <황금용>을 보지 못해서 <갈매기> 등 소극장에서 본 작품만 기억하는데요. 젊은 해외 작가들의 신작이 아닌 고전을 다루는 윤광진이 중극장에서 어떤 그림을 그릴지 궁금했습니다.

 

배우들 면면을 보면 과하다 싶게 좋은 연기를 선보이는 베테랑들입니다. 셰익스피어라는 명성이 있기는 하나, 조연급 한 명 한 명이 각각 주연급이지요. <아메리칸 환갑>에서 호흡을 맞췄던 리어왕 역 장두이 배우를 비롯해 세 딸에 서주희, 이영숙, 서은경이라니 모두 대표 여배우예요. 이 작품의 키를 쥔 인물은 에드먼드라고 생각하는데요. <못생긴 남자> 주역 오동식입니다. 그 외 주변 인물인 켄트, 글로스터, 에드거, 알바니 등등 모두 눈에 익은 배우들입니다.

 

배우 구성을 과하다 싶게 꾸린 반면에 무대는 텅 비었습니다. 명동예술극장 작품을 보기 전 늘 무대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연극 무대를 재량껏 구성할 수 있는 무대는 디자이너에게 꿈과 같은 곳입니다. 작품 완성도나 만족도는 차이가 있지만 한 번도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실망을 한 적이 없어요. 다른 극장과 달리 명동예술극장은 무대만 봐도 남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완만하게 경사진 무대 한 가운데 의자 하나가 전부입니다. 게다가 무대 좌우로 막이 올라가서 등퇴장로가 훤히 보입니다. 무대를 채운 게 아니라 도리어 비운 셈이지요. 배경도 없고, 소품도 없으니 배우들 기량이 뛰어나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대를 넓게 쓰지도 않습니다. 경사가 제법 가팔라서 걸음이 조심스럽고, 셰익스피어 특유의 긴 대사를 소화하려니 이렇다 할 동선이 없습니다. 등장하면 제자리에서 방백을 하듯 주변을 맴돌며 대사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초연작이라면 흥미를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르는 내용도 아니고 익숙한 방식의 패턴의 반복이라니 좀 지루합니다. 작년 5월 같은 무대 위에서 김광보 연출이 같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올리면서 무대 위 철망 울타리를 쳐서 좁히고 그 안에서 뛰어다니면서 속도감을 올리는 방식으로 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정치극의 한계를 넘어섰던 방식이 기억났습니다.

 

그런데 경사진 무대 앞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얼추 짐작했던 부분입니다. 그리고 무대 위로 억수같이 비가 쏟아집니다. 게다가 좌우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좌우 옆면을 비웠던 이유였던 거죠. 뗏목처럼 중안 무대가 분리가 되어 사면 밧줄에 의지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앞뒤를 제외하고 무대를 비워야만 가능한 무대의 확장! 바닥이 아닌 공간 전체가 리어와의 연기와 절절한 절망과 하나가 되어서 혼돈으로 빠져듭니다. 백발과 수염을 흩날리는 폭풍우를 맞닥뜨린 리어왕, 포스터 그대로입니다.

 

무대 위에는 고목이 한 그루 매달려 리어왕과 함께 흔들립니다. 빈 무대 위에 나무 한 그루,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배경입니다. 극단 산울림 임영웅 연출의 대표 레퍼토리는 소극장이든 대극장이든 바뀌지 않습니다. 같은 나무가 늘 무대 한 가운데 있지요. 리어왕의 고통은 그리고 광기 서린 독백은 서로 꼬리를 물고 반복하면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고고와 디디의 대화의 변주입니다. 다시 말해 고고와 디디의 기다림이 고도가 오건 말건 전혀 무관하듯이, 리어왕의 절망은 두 딸이 누리는 권력에 취한 행복에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무대 위에 등장한 광대 배우 이기돈은 배우와 관객 사이 경계에 있습니다. 조롱인 듯 동정인 듯 예언인 듯 맞는 얘기인가 싶지만 리어왕은 무시하거나 듣지 않거나 들어도 모르거나 다르게 해석하고 맙니다. 고고와 디디의 앞뒤가 맞지 않는 대사가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2막부터 미친 리어왕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큰 상관이 없습니다. 막내딸의 죽음도 슬픔이 아니고, 첫째딸과 둘째딸의 비극도 만족이 아닙니다. 그렇게 딸들이 다 죽어나갔으니 결국 비극이니 모르는 편이 낫습니다. 한 집안에서 벌어진 권력쟁탈극은 가까이에서 보면 안타깝지만 멀리서 보면 참 왜 저럴까 싶게 씁쓸하면서 어이가 없습니다. 

 

다 아는 얘기인가 싶은데, 극장 밖 현실을 보면 비극의 반복에 피로도가 쌓여 다들 자기 문제를 끌어안고 허덕이다 매몰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극 후반부 광대가 무대에서 객석으로 퇴장했다가 다시 무대로 등장합니다. 그는 객석 통로를 지나 출입구를 거쳐서 명동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온 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무대 위 웃기고도 슬픈 비극이 거울처럼 펼치지는 현실을 보고 왔겠지요. 그러면 그의 얘기를 알아들어야 하는 건 미친 노인네가 아니라 내 자신입니다. 광대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한 발 물러서서 세상을 주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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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예술극장 공개리허설ㅣ리어왕

- 2015.04.15 ~ 2015.04.15

- 19:30 1회

-

- 만13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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