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 명동연극교실ㅣ전유성> ⊂ 전유성님의 개그맨과 연극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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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규
등록일 2013.07.27
조회 2843
1989년 유머1번지의 '네로'에서 데뷔를 시작으로 그의 약력을 알게해주었다.
"연극이란, 막 하나를 치고 남을 옅보는 것이다."
그에게 개그맨과 연극의 인연은 무엇인가!?
국민학교때부터 황해 선생님표정을 따라하며 임춘애님 연습실을 몰래 구경하며 꿈을 키웠다고 한다.
고등학교땐 연극부를 들어갔지만 그의 억양과 연기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길이 연출.
하지만 그의 꿈은 늘 배우를 하고 싶었다.
연애인면접을 봐도 오로지 키가 유난히 커서 그런지 키만 물어보기만해서 속상했던 그.
그래서 지금은 15년부터 자신이 직접 면접관이 되어 개그맨의 진짜하고 싶은 사람만 뽑겠다는 다짐을 하며
후배양성을 무료로 하였다.
신봉선, 안어벙, 이영자는 7번이나 떨어져 자신이 특채로 훈련시켜 데뷔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개그맨들의 이름을 대며 지난 과거를 흐뭇하게 회상한듯 하였다.
구봉서님에게 꽁트 드라마 20편의 원고를 작성하면서 그중 12편을 각색해서 TV에 방영되었다한다.
그것이 어쩌면 전유성님의 최초 TV데뷔계기가 시작된것이다.
예전부터 불러졌던 '코미디언'이라는 명칭을 '개그맨'으로 이름을 바꿔부르면서 새로운 길을 열려는
생각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후배였던 임하룡, 주병진, 김병조 등을 시작으로 불리게 하였다.
30년동안 유지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를 '고도리를 기다리며' 로 제목을 색다르게 연출하기도 했다.
추상미 아버지로 유명한 '추송웅' 님의 '빨간 피터의 고백' 의 힘이 컷던것이다.
우리나라 최초 소극장인 '삼일로창고'를 얘기하며 100명의 입장정원인데도 300명이상 들어와
배우가 움직일 수 없이 그냥서서 대사만 해야했던 시절을 얘기한다.
제대로된 무대, 극장도 없던시절 열정으로 살았던 그의 인생이 대단해 보였다.
솔직히 최양락이나 임하룡처럼 웃기진 않았지만 자신은 여행을 좋아해서 시골에 코미디무대를 지어
보여주자는 실험적인 자세가 있었다.
현재 경상북도 청도에서 흥행중이라고 한다.
"내가 재미있으면 관객들도 재미있다" 는 생각으로 늘 즐거운 고민을 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어린이도 떠들수 있는 콘서트인 '얌모얌모 콘서트' 는 7세이하 어린으를 위한 클래식공연으로
처음엔 색다른 시도라서 모두들 어려워했지만 예술의전당에서 3000회를 넘었다고 한다.
동물을 위한 '개나 소나 콘서트' 초복날을 공연시작으로 쉬운 클래식 콘서트를 연다.
애완견을 데려오면 무료입장은 늘 일반인을 생각하고 마음이 열려있음을 옅볼 수 있었다.
그외 '모유수유를 위한 음악회', '암투병환자를 위한 음악회', '임플란트 환자를 위한 음악회',
'음악 지망생을 위한 음악회', '성악가가 가요를 부르는 음악회'..
그렇게 끈임없이 색다르고 기발한 음악회는 계속된다.
추후 '클래식만 들으면 잠자는 콘서트' 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사람들이 오게하는 공연은 재미있는 공연이어야 한다"
일반인들이 공연에 접할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싶다는 진실된 말투가 고된 삶을 위로해 주는듯 했다.
공연을 예약하며 하루하루 기다리는 재미를 얘기하고 있다.
그맇게 계속 무료로 공연을 진행하다 지금은 사회적기업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공연지망생들에게 할인특혜를 시도한 장본인.
가수도 데뷔시는 그의 열정.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아는 이문세, 이택림, 강산에..
그중 이문세님은 노래도 안듣고 목소리만으로 일주일뒤에 DJ를 시켰다고 한다.
그의 창의력은 불만에서부터 나온다.
왜 이렇게 할 수 없는가, 왜 안될까, 왜 아무도 안할까..
보신탕을 좋아해서 간판이름을 지을땐 '어제께 효과 보신탕' ^^
그의 창의력은 시집을 많이 읽어서 나왔다고 한다.
그가 좋아하는 시인중 '이정록' 시인을 얘기해주며 "사람들이 왜이렇게 바쁘게 사니, 달은 윙크 할려고
한달이 걸린다"
"우리나라 사람은 시를 좋아해서인지 왼손바닥에 '시'라는 글씨가 세겨줬다."
좋은시 한구절 소개로 그가 감성적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예술인은 일반인과 다른걸까 환갑이 넘은 나이지만 40대 옆집아저씨처럼 건장하고 늘 기대에 차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각자가 살고있는 분야는 다르지만 자신만의 분야에 끈임없이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이시대의
인생예술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많은 질문에도 성실히 답해주고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덛붙여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천상 개그맨이라는 단어가 어울림을 느꼈다.
그의 지난 인생을 얘기하자니 왠지 모노드라마를 보는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