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을린 사랑> 사랑의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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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2.07.01
조회 2343
오랜만의 연극 관람으로 그을린 사랑을 선택한 것은 매우 좋은 결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3시간여의 공연이었다.
극과 음악의 절묘한 조화로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으며 배우들의 열연과 어설픈 번역체가 아닌 주옥같은 자연스러운 대사들 덕분에 러닝타임이 길다고 느껴지지조차 않았던 밀도 높은 관람을 할 수 있어 매우 뜻 깊었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구조의 잿빛 무대는 사막이라면 사막, 전쟁터라면 전쟁터, 자연이라면 자연, 교실이라면 교실... 바뀔 때 마다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던 매우 효과적인 사용도를 보여주었다.
난 늘 언제나 너를 사랑할 거라고 극중에서 주인공 나왈은 주문같이 되뇌인다. 그러한 나왈의 고통으로 가득찬 인생과 사랑하겠다 맹새한 자식을 찾으려던 여정 끝에 기다리던 잔혹한 진실은 5년간 온갖 고문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던 그녀를, 5년간의 완벽한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서 증오하던 시몬과 원망하던 쟌느는 어머니의 여정을 밟으며 자신들의 근원을 알게 되는데, 그 여정 속에 담겨진 그 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처참함은 아랍 여인들의 잔혹한 현실과 그 굴레에서는 벗어나 살아온 자녀들 간의 거리감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준다. 어머니 과거 따위에 관심도 없고 너와 나 세상에 둘 뿐이니 과거는 잊으라고 완강하게 어머니와의 연결고리를 거부하던 시몬은 결국 자신의 근원을 마주하고 충격에 빠졌고, 리하드를 만난 뒤 누이와 어머니의 침묵에 동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시몬과 쟌느의 변화는 어쩌면 모든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주제인 전대의 희생을 밟고 그 위에 지금의 영광을 누리는 후대에게 자신의 "뿌리"에 대한 것은 결코 외면할 수는 없음을, 그러나 동시에 전대의 굴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음을 동시에 시사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나왈의 여정은 체제를 뒤엎겠다는 정치적 이념적 이상에서 비롯된 것도, 평등을 추구하려는 거창한 목적의식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다. 단순히 사랑 때문에, 자신의 자식 때문에, 그녀는 글을 배우고 사랑하는 남자와의 아이를 포기하지 못 하고 아이를 찾아 다니다 전쟁의 참상을 보게 되고 암살을 자행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운명은 모두 어긋나고 자신의 인생의 유일하던 맹세인 언제나 너를 사랑할 것이라는 것을 실행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인간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리하드에게 자신의 생을 걸고 어머니로서의 마지막 사랑이 담긴 교훈을 준다. 잔인하고도 잔인하지만 그를 인간으로 되돌려줄 그러한 교훈을... 인류에게 가장 근본적이고도 가장 강인한 사랑인 모정을 건 맹세 하나를 지키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랍계의 여성에게 주어진 현실이 인간성의 근본적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겠다.
증오의 굴레는 인류의 역사를 지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한 대목이 2막 초반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절친한 친구에게 나왈은 더이상 증오의 고리를 늘여가서는 안된다고, 사랑도 해보고 글도 배운 자신이 단 한 명을 죽이고 이 모든 것의 끝을 내겠다고 선언하고 실행한다. 굴레는 완전히 끊어지지 못 했다. 그 단 한 사람을 살해하면서 난민들에게 이어진 학살은 굴레를 이어갔기에.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와 자식으로 이어지던 증오의 굴레는 적어도 그녀와 자식들에게는 끊어졌다. 사랑의 산물인 리하드가 증오로 바뀌고 그 증오의 산물인 시몬과 쟌느가 이제는 사랑으로 바뀌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기에... 그리고 그 둘은 누구에게도 복수를 감행할 수 없게 되어버렸기에. 아이러니하고 고통스럽다.
근원의 중요성, 전대에의 감사와 동시에 미래에의 희망. 가장 기본적인 사랑을 지키기조차 어려운 환경의 잔인함...그리고 모든 난관과 증오를 초월할 정도로 강인한 어머니의 사랑이 "난 언제나 너를 사랑할 거야"라는 맹세와 함께 이 극을 감싸고 있었다. 어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을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공연이었다. 재연이 있을 경우에는 주위의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