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을린 사랑> 정통 연극이 주는 묵직한 무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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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완
등록일 2012.06.29
조회 2175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대사와 가벼운 애드립, 음악과 춤이 득세하는 요즘의 공연계에서 모처럼 정통의 사실주의 연극이 주는 묵직한 무게감을 느낀 무대였다. 극장 안의 모든 관객들이 흐트러짐 없이 조용히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배우의 독백에 귀 기울인 것이 얼마만인가?
한 여인의 끔찍하고 비극적인 운명과 중동의 혼란스러운 역사가 연극을 이끌어 가는 커다란 힘이었지만, 연극의 곳곳에 배치된 전쟁과 테러, 폭력, 죽음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가 단지 레바논이라는 지구상의 한 곳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들게 했다. 많은 등장인물들을 서너 개 씩 소화해 낸 배우들의 변신도 볼거리였고, 이연규와 배혜선, 남명렬과 같은 배우들의, 작은 소리로 대사를 읊어도 객석에 전달되는 정확한 발성과 기본기는 무대를 안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전쟁의 폐허와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 무대는 간결하면서도 그 때 그 때 고향 마을로, 감옥으로, 무덤으로 변신하여 효율적으로 활용되었으며, ‘가시성 그래프’와 ‘콜라츠 추측’ 등의 모티브는, 음향 조명과 더불어 이야기 전개에 작은 재미를 더했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영화로 접해서 줄거리를 알고 있을 텐데, 이번 무대는 단지 줄거리를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연극적 체험을 관객들에게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묵직한 이야기와 정통의 연극적 전개로 모처럼 연극 본연의 원시적 즐거움을 느낀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