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극단/명동예술극장 "벌"> 벌, 죽음, 생명 그리고 사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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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1.11.04
조회 2253
<벌>
- 작 : 배삼식
- 연출 : 김동현
- 출연 : 조영진, 최현숙, 강진휘, 정선철, 박윤정, 이봉련, 서미영, 김슬기
- 제작 : (재)국립극단 · 명동예술극장 공동제작
- 명동예술극장
- 2011년 10월 13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초연 관람(첫 번째)
- 2011년 10월 15일 토요일 오후 3시 관람(두 번째)
- 2011년 10월 27일 목요일 저녁 7시 배삼식 작가의 15분 강연
어느 저녁,
길 잃은 벌들이 그녀에게 내려앉는다.
· · ·
"벌의 구제역이라 할 수 있는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토종벌의 95%가 멸종한 것을 알고 있습니까?"
꿀벌 멸종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려는 의도가
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 작가의 의도성과 그를 표현해내려는 연출의 시도가
결합된 작품이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병든 벌(혹은 병든 자연)에 작가는 병든 인간을 더합니다.
말기 암 환자 온가희,
만성심부전증을 앓고 있는 그녀의 간병인 박정순,
벌침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김대안,
통풍 환자인 최요산,
도박 중독자 정수성,
향수병을 앓고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 구릉 델렉.
여기에 마을에 남은 두 개의 벌집을 샘플로 연구하던
대학원생인 이봉련과 서미연은 각각
감성의 상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마음의 짐을 안고 있습니다.
즉, 작품의 제목인 '벌'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병들어있는 것입니다.
배삼식 작가는 "왜 생명있는 것들은 병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병든 곤충, 병든 동식물, 병든 인간, 병든 세계.
벌이 병들어 손쓸 도리도 없이 멸종해가는 상황,
그리고 한 여자가 가망없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결국 죽어가는 이야기.
죽음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죽음의 과정을 바라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익숙한 갈등 양상과 충돌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바라보다', '성찰하다'의 의미를 중점에 두었기에,
다소 불편하고 낯선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존재가 피해갈 수 없는 고통,
병든다는 것 그리고 사라져 간다는 것.
이렇게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작가는 생명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요.
한 개체의 죽음에도 기저에 흐르고 있는 생명은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멸종에 가까운 벌의 상황에도 우리의 일상은 평범하게 흘러왔고
온가희의 죽음에도 연극의 일상은 그래왔던 것 처럼 흘러갑니다.
벌의 문제 상황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하여 죽음에 대한 성찰과 그 속에 살아있는 생명까지
(그리고 '벌의 속성'과 '사랑' 또한)
어떻게 보면 한 없이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기에,
다른 작품보다 분명히 다수의 사람에게 어렵게 느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인물간의 갈등 구조와 막간극의 역할에 대한 언급은 생략할지라도.)
사실 이러한 개인적인 견해조차도 맞는 것이 아니겠지만,
저의 감상은 이러했습니다.
공연을 두 번 보면서 느낀점을 말하자면,
작품의 무게감이 부담이었을까 이틀의 간격을 두고 관람한 공연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달라져있었습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무대 인사겸 hook으로 '사랑'에 관한 언급을 추가하고,
시간적 배경을 제시해주며,
유머 코드를 증가시켰습니다.
디테일한 연기 변화는 물론이겠지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력,
고전적이면서도 센스있었던 무대 장치,
그리고 적절한 조명과 음향까지.
그렇지만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들이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하는데 성공했는지는 의문이 남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꼭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수도 있고
효용론적인 측면에서는 관객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라 생각합니다.
'작품을 어렵게 생각하면 정말로 어려운 작품으로 느껴진다.'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연극 <벌>
시간이 지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더 보고싶습니다.
· · ·
"넌 아프지만 애는 죽는다..." - 온가희
"상처가 당신을 내게 데려왔으니, 그 상처에 입 맞추며 감사하지요." - 온가희
"빠랑게는 벌이 되고 셀파는 눈보라가 된다."
"애들이 날아오르거든 말이야,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사람 손 닿지 않는 곳으로 데려다 줘." - 온가희
"잘 가, 누나..." - 김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