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어파우스트"> 연극 - 우어파우스트, 그레트헨의 비극 - 정보석 / 장지아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1.09.21
조회 2150
지난 8월, 네이버 카페 이벤트가 있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라고 해봤자, 강의때문에 운영하는 허접한 카페이지만...) 회원들과 함께 볼 생각에 이벤트 신청을 했다.
그리고...
댓글을 열성적으로 달아주신 몇 분의 회원 덕분에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다.
정보석, 쥬얼리 정이 고뇌하는 파우스트로 등장한단다.
원래 3팀 정도로 나누어서 편한 시간대에 맞춰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으나...
이벤트에 당첨된 다른 카페 운영자들이 무척 열심이신가 보다.
예약 시작일보다 하루? 이틀 정도 늦게 전화를 걸었더니 원하는 날짜, 시간은 좌석이 남는 게 없단다. ㅠㅠ
결국 20일 화요일 오후 세시로 몰아서 20장을 한꺼번에 예약했다.
안타까운 것은 약간의 착오와 기타 등등의 이유로 표 넉 장이 그냥 버려졌다는 것... ㅠㅠ
어쨌든 그렇게 연극관람을 시작했다.
꽤 오래전에 파우스트라는 작품을 읽은 기억은 나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무척 재미없고 지루했었다는 기억만 얼핏...
연극을 보고 난 내 감상을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집에 도착해서 난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접속했다. 그리고... 책을 한 권 주문했다. 파우스트...>
[[우어파우스트]]
(공식 포스터)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파우스트는 내용이 뭔지를 떠나 워낙 유명한 제목이니 들어봤고, 한번쯤 읽어본 기억도 있지만...
우어파우스트는 도대체 뭐지?
인터넷을 잠깐 뒤져보니 파우스트의 초고격에 해당하는 작품이란다.
흠...
연극을 다 보고, 거금 삼천원을 들여서 구입한 팸플릿을 보니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오늘날 우리가 '우어파우스트'를 만날 수 있는 것은 괴테와 한 여인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이 여인이 없었더라면...
...괴테는 3여 년에 걸쳐 완성한 우어파우스트를 제일 먼저 바이마르 궁정에서 낭송회를 갖는다...
...'파우스트 단편'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고는 원고를 없애 버렸다...
...그 낭송회에는 괴테와 가까웠던 괴흐하우젠이라는 한 귀족출신 여인이 있었다...
...우어파우스트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녀는 낭독회가 끝난 후 바로 그 원고를 빌어 필사를 했다.]
- 팸플릿의 작품 설명 부분에 나온 대목이다.
무대가 시작되면, 술에 취한 것처럼 비척거리는 메피스토(이남희)가 등장한다.
뒤이어 출연진 모두가 무대에서 저 먼 곳을 함께 바라보는 씬도 있고...
정보석이 연기하는 파우스트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처럼, 고뇌하는 인간으로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학문, 예술, 정치, 의학... 을 다 섭렵하고도 여전히 풀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 그의 고뇌를 한 방에(!) 해결해주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그레트헨이라는 나이어린 처녀가 그의 마음을 홀까닥 빼앗아가 버린다.
마치 빈폴 CF처럼,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하늘거리는 치마와 나풀거리는 머릿결의 그 녀는 파우스트의 가슴을 온통 빼앗아 버린다.
이야기는 급진전해서 그레트헨은 임신을 하게 된다. 그녀와 잠자를 함께 한 것이 파우스트인지, 메피스토인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그 녀는 극 말미에 죽음을 맞이한다.
설령 죽는 것이 아니었대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 장면 이후의 그녀는 살았다고 해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일테니 말이다.
메피스토가 건네준 하얀 드레스로 바꿔입는 그녀의 모습... 난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이상하다. 그 이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난 정보석이 연기하는 우어파우스트를 보러 갔는데, 막상 연극이 끝나고 나니 장지아가 연기한 그레트헨의 비극으로 남는다.
결국, 삶의 해답을 찾지 못하는 파우스트에게 고뇌를 멈추게 한 이도 그레트헨이라는 여성이요,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갈 힘을 준 것도 그레트헨이고, 다시금 그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것도 그레트헨이다.
어쩌면,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는 그 순간부터 이 모든 비극은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극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참으로 통속적인 싸구려 연애소설을 읽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인간의 그 모든 비밀을 다 안다고 할만한 파우스트가,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며 악마와 계약을 맺고, 결국은 젊은 처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고뇌에서 벗어난다?
이건 마치 60, 70년대 우리나라 연애소설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비쩍 마르고 볼품없는 룸펜, 그를 보살피기 위해 술집에서 몸을 팔아가며 돈을 버는 여자...
이놈의 룸펜은 괜시리 인생이 허무하네 어쩌네 진상이나 떨면서 가끔 여자를 두들겨 패기나 하고...
운이 좋아 고시라도 패스하면 잘 사는 년 따라가서 '미워도 다시 한 번' 이야기가 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폐결핵에 걸려 울컥울컥 피토하다가 젊은 나이에 횡사해버리는 이야기...
글쎄?
우어파우스트를 그런 류의 삼류 연애 소설과 비교하는 건 실례일까?
어쨌든 오늘 내가 만난 정보석의 파우스트는 고뇌하는 남자, 결국 여자의 젖가슴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나약함을 제대로 보여준 것 같다.
그리고...
장지아의 그레트헨은, 특히 그 순백의 드레스로 허겁지겁 갈아입는, 마치 그것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은 그 모습이 주는 안타까움은...
인천에서 서울, 명동까지... 그리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기까지 길에서 뿌린 세시간 반 이상의 시간을 아깝지 않게 해주었다.
(프로필을 보니 꽤 많은 연극에 출연하셨던데, 네이버 검색에서는 사진이 없네? 팸플릿 사진 찍어서 살짝 뭉갰다.^^)
다른 배역들, 그레트헨의 오빠 역인 발렌틴(윤대열), 메피스토의 개가 되어버린 학생(김준호, 이 역할은 이름도 없었나? 팸플릿에도 그냥 학생으로 나온다.), 휠체어를 탄 신(정규수)... 미안하지만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본 우어파우스트는 장지아의 그레트헨과 그를 파멸로 내몬 정보석의 파우스트만 있었다.
불만 하나!!!
왜 더블캐스팅이냐고?
장지아의 그레트헨에 내 눈물을 바쳤는데, 이지영의 그레트헨이 어떤지 궁금하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