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고전연극탐험Ⅰ "동 주앙"> 동 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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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1.04.05
조회 2154
동 주앙의 하인인 스가나렐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으로 연극의 시작을 알린다. 스가나렐은 사교를 위해서는 담배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하면서 담배 피기를 권유했는데, 이때 진짜 담배냄새가 나서 당황했다. 물론, 연극의 사실화와 스가나렐 역할의 정규수 배우의 연령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종이가 타는 냄새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싫어하는 것 중 첫 번째가 담배연기인데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를 진짜로 태웠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연극이 시작하기 전의 들떴던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연극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흡연 장면으로 성인을 대상으로 기획된 연극임이 어렴풋이 짐작 되었고, 흡연을 권장하는 부분에서 이 연극은 풍자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
스가나렐이 엘비르 부인의 하인과 동 주앙의 뒷얘기를 할 때 배경으로 동 주앙과 여자들이 춤을 추는 모습은 연출을 잘 한 것 같다. 처음에 봤을 땐 컴퓨터 그래픽(CG)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진짜 사람에게 무대장치를 이용해 그림자 같은 효과를 보여줘서 담배연기 때문에 분산되었던 정신이 무대장치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시 집중을 하게 되었다. 잠시 후 동 주앙이 등장하고, 동 주앙은 관객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여자만 보면 작업을 시도하는 동 주앙을 보고 스가나렐은 충고를 하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한다. 주인에게 가끔 반말을 하기도 하고,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기도 하면서도 스가나렐의 마음 한켠엔 주인의 삶에 대한 부러움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은 행동으로 사람의 이중적인 마음을 잘 나타내 준 것 같아서 연극에 점점 몰입해 감을 느꼈다. 사람은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앞에서는 별 말 하지 않고, 뒤에선 뒷말을 하는 이중성이 연극을 보는 내내 떠올랐다. 조금 뒤 동 주앙을 따라온 그의 아내, 엘비르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등장한다. 처음 엘비르가 등장할 때부터 손을 떨어서 엘비르 역의 배우가 긴장을 해서 떠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는 화내는 연기를 좀 더 과장해서 표현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비르가 동 주앙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퇴장하자, 동 주앙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는 또 다시 다른 여자를 만나러 떠난다. 이 때 한 여자를 취하고 난 다음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 동 주앙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고 싶었다.
다른 마을로 간 동 주앙은 살로뜨라는 시골 처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녀에게 작업을 시도한다. 칭찬받고 싶어 하는 여자들의 속성을 잘 아는 동 주앙은 달콤한 말로 살로뜨의 눈, 허리 등 여러 부위가 아름답다고 찬양한다. 동 주앙의 이런 태도에 수도원에 있던 엘비르가 그 곳을 뛰쳐나와서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돈 많고, 귀족의 신분이며, 당장 단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이쁘다고 말해준다면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지 달성하는 그의 모습에 질릴 정도로 질겁하면서도 '인생은 저렇게 후회 없이 살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던 동 주앙은 이리저리 떠돌던 중 과거에 딸의 복수를 위해 그와 결투를 했던 기사의 석상이 있는 마을을 지나게 된다. 심심했던 찰나 재밌는 장난이 생각 난 동 주앙은 스가나렐에게 석상에게 저녁식사 초대를 해보라고 명령 한다. 장난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석상이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더 이상 장난이 아니게 되었다. 혼비백산해서 집으로 뛰어온 두 사람은 화가 난 동 루이를 맞게 된다.
동 루이는 동 주앙의 아버지로, 엘비르에게 동 주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서 아들의 집으로 찾아가 크게 혼낸다. 그날 밤, 동 주앙은 저녁식사에서 기사의 석상을 만나게 된다. 얼마 후, 아버지에게 자신은 이제부터 바른 삶을 살기 위해 회개하겠다고 한다. 진짜인 줄 아는 아버지는 잠옷차림으로 동 주앙을 구원할 수 있어 기뻐하며 아내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편한 삶을 살기 위한 눈속임용 거짓말인 것을 알게 된 하인 스가나렐은 주인에게 가면을 쓴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그러자 동 주앙이 관객들에게 “당신들도 위선이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가?”라고 강하게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그렇다.' 라고 생각하며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앞에서 위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나?” 라는 대사가 중간에 나오는데, 갑작스러운 교훈에 의아해하면서도 내 삶에 대해서 급하게 되짚어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앞에서 위선이라는 가면을 쓴 적이 분명히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동한 적도 있고, 친구의 말에 동의를 해 주기 위해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핑계로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속을 보일까봐 속으로는 꽁꽁 싸매고 겉으로는 포장 한 적도 많을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사람들도 똑같은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지막에 동 주앙이 죽는 장면에 가서는 왜 죽어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보여 준 부분은 그의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다. 그가 위선 없이 살 때는 사회 악 취급을 받았는데, 그가 거짓으로 자신의 일부를 가리려 하자 위선이라고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동 주앙처럼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의 질서가 문란해지므로 그가 100% 옳았다는 입장은 아니다. 다만, 희극의 내용이 왜 그렇게 극단적인 결말으로 급하게 끝나야하는지에 대해서 이해가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하인 스가나렐이 주인 동주앙이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지게 되자 자신의 ‘월급', '돈’부터 찾는 한 층 더한 위선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연극은 웃고 즐기는 내용이 아니라 관객에게 미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여운을 남기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동 주앙 연극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엘비르의 둘째오빠의 대사였다. 옆에서 자꾸 울먹이면서 중얼중얼 대사를 처리하는 장면이 가장 웃겼다. 원래 실수도 안할 것 같은 사람이 실수하면 웃기는 것처럼 보기에는 엘비르의 둘째오빠보다 첫째오빠가 더 어벙할 거 같이 생겼다. 그렇지만, 둘째오빠의 울먹이면서 칭얼대는 연기는 큰 키와 덩치에 맞지 않았고, 칼을 허공에 휘두르면서 하는 혼잣말이 웃음을 두 배로 자아내게 했다.
다음으로 재미있었던 부분은 동 주앙에게 당한 등장인물들이 퇴장하고 난 후에 퇴장한 쪽에서 붉은 색 빛이 나오면서 퇴장한 인물들의 목소리로 "동 주앙~!!"을 외치는 처리였다. 처음에 이 효과를 보고 붉은 빛이 나오면서 "동 주앙~!!"을 외쳐서 그 사람이 죽은 줄 알았다. 붉은 빛을 피나 죽음과 연관시키면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내가 연출자였다면 이 부분은 생각도 못 했을 것 같은데 이 장면에서 연출자의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큰 웃음을 유발했다. 물론 이 장면 말고도 연출자의 고뇌가 녹아 있는 부분이 있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참신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이 두 군데였다.
연극의 전개는 매우 느렸다가 빨랐다가를 반복했다. 스가나렐과 동 주앙의 로드무비 느낌이 나는 대화에서는 대사가 장황하고 긴 독백이 많아서 때론 지루하기도 했다. 반면, 석상과의 만찬에 초대받은 뒤에는 너무 빠른 전개라 영화를 보다가 졸았다 깬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너무 아쉬웠다. 이런 부분에서는 해설자가 끼어들어서 보충 설명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큰 석상이 내려오는 장면이었는데, 마징가제트라는 장난감이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진지해야하는 마지막 장면인데 웃기게만 느껴졌다.
마지막 마무리가 극의 전개에 비해서 너무 빈약한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망설여졌다. 그렇지만, 배우들의 대단한 암기력과 긴 대사를 가슴에 와 닿게 처리하려고 노력한 모습, 웃음을 유발했던 장면들을 생각하면 이 연극이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