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고전연극탐험Ⅰ "동 주앙"> 동주앙은 정말 나쁜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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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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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주앙'이라는 연극은 동 주앙의 하인인 스가나렐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스가나렐은 동 주앙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동 주앙의 잘못을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정작 동 주앙 앞에서는 동 주앙의 잘못을 직접 말하지 못한다. 동 주앙은 한 시대를 누비던 바람둥이인데 수도원에 있는 한 여자인 엘비르와 그저 본능에 충실한 결혼을 한 뒤 다른 곳으로 도망쳐 여러 여자들을 농락하며 지낸다. 어느 날 동 주앙의 아내인 엘비르가 동 주앙을 찾아 쫓아오지만 동 주앙은 엘비르를 매몰차게 내친다. 엘비르의 오빠들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동 주앙을 쫓는데 동 주앙은 우연히 엘비르의 큰오빠를 도와주게 된다. 나중에 엘비르의 오빠들은 동 주앙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이미 은혜를 입은 엘비르의 오빠는 동 주앙을 죽이지 못하고 동 주앙을 그냥 보내준다. 동 주앙은 도망 다니는 도중 자신과 불법으로 싸우다 죽은 기사의 석상을 발견하는데 그 석상에게 장난을 치다 석상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게 된다. 그리고 석상은 정말 동 주앙의 저녁식사에 찾아오게 되고 석상은 다시 동 주앙을 초대한다. 동 주앙은 자신의 상황이 불리해지자 가식의 가면을 쓰지만 결국 석상이 초대한 지옥으로 가게 되면서 연극이 끝이 난다.
이 연극을 보면서 나는 '위선'과 '가식'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상황이 불리해지자 가식을 떠는 동 주앙, 동 주앙의 가문과 혈통 때문에 동 주앙 앞에서는 동 주앙을 비판하지 못하는 스가나렐, 동 주앙의 외모와 가문을 보고 동 주앙에게 빠져버린 여자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동 주앙과 같은 인물을 비판하고 있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동 주앙보다는 동 주앙의 주변 인물들에게 더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오히려 동 주앙이 동 주앙의 신하인 스가나렐, 동 주앙에게 놀아난 여자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동 주앙은 본능에 충실한 죄밖에 없다. 동 주앙이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우리도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질 수 있듯이 동 주앙도 그저 본능에 따라 그 순간만큼은 그 여자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 도가 지나치기 때문에 동 주앙이 비판을 받는 것 이지 우리가 동 주앙의 사상자체를 비판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 주앙은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저 숫자와 같은 산수만 믿는다. 나는 이것도 우리가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믿지 않는 건 그저 동 주앙의 사상일 뿐이다. 현대사회에선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비판받는 사람은 없다. 이런 면에서 동 주앙은 가장 현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동 주앙의 신하인 스가나렐은 동 주앙 앞에서는 동 주앙을 비판하지 못한다. 그저 뒤에서만 동 주앙이 잘못을 뉘우치길 바라며 동 주앙을 비판할 뿐이다. 스가나렐은 아마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위선적인 인물일 것이다. 자신의 주인의 허물을 보고도 그 허물을 벗겨주지는 못하고 자신의 생계를 위해 동 주앙 앞에서는 그저 아첨을 한다. 스가나렐의 이런 모습은 이 연극 속 등장인물 중 가장 한심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또 동 주앙의 꼬임에 넘어간 여자들은 동 주앙의 외모와 가문만을 보고 넘어간 그저 속물 같은 여자들로 밖에 안 보인다. 동 주앙에게 넘어간 여자 중에는 약혼자가 있는 여자도 있었는데 동 주앙을 단 한번밖에 보지 않고도 동 주앙에게 넘어가 동 주앙에게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행동한다. 특히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 주앙에게 넘어간 여자는 과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은 잘못이 없는척하기 위해 일부러 순진한척, 바보 같은척한 것인지 궁금하다. 이 연극 마지막 장면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동 주앙이 그동안 잘못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모두 나와 동 주앙을 지옥의 문으로 밀어 넣는다. 그 장면을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가지게 했다. 과연 그 사람들은 정말 동 주앙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동 주앙을 지옥의 문으로 밀어 넣은 것일까? 내 답변은 '아니다.' 이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선을 감추기 위해 동 주앙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의 위선을 보이기 싫어 동 주앙 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들은 자신들의 위선을 또 다른 위선으로 가린 것이다. 어쩌면 동 주앙은 이 연극 속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동 주앙과 같은 희생양이 없었다면 이 연극 속에 모든 인물들이 위선적이라며 비판받았을 것이다. 나는 동 주앙이 측은하다. 동 주앙은 시대를 잘못타고 태어난 사람이다. 동 주앙이 현대의 인물이었다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죽음으로 몰릴 만큼 나쁜 놈은 아니였을 것이다. 그저 그 시대에서 요구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시대 사람들에게 비난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번 연극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것이 있다. 바로 무대장치와 관객과의 호흡, 그리고 내용의 긴밀성인데 가끔 대학로의 소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는 나로서는 이렇게 제대로 된 극장 안에서 보는 정식적인 연극은 관객과의 호흡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약간 지루함도 느껴졌다. 또, 무대장치가 기대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못해서 약간 실망도 했다. 물론 연극의 특성상 무대의 조명이 모두 꺼진 그 짧은 순간에 무대장치를 완벽하게 바꾸기란 어렵겠지만 뮤지컬에서는 이런 것을 모두 해낸다. 뮤지컬에선 장면이 바뀌는 짧은 순간에 하늘이 바다가 되기도 하고 바다가 땅이 되기도 한다. 뮤지컬만큼은 아니더라도 너무 간략했던 무대장치가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대장치가 모두 아쉬웠던 것은 아니다. 처음 시작할 때, 무대 뒤의 액자 같은 무대장치에서 그림자 실루엣으로 춤추는 장면 같은 건 정말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내용의 긴밀성이 부족 했던 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중간에 내용이 많이 빠진 느낌이 들어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연극의 처음 시작도 엘비르와 동 주앙의 이야기가 모두 지난 뒤의 시점부터 시작해서 처음엔 이해하는데 많이 힘들었다. 연극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가능한 부분은 좀 더 보완되어서 다음 작품은 더 완벽한 연극의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영화를 볼 때도 '코미디'라는 장르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본 연극인 동 주앙은 희극이라는 자체만으로 나에게 굉장한 매력을 느끼게 했다.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 의상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나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특히 동 주앙이 순진한 시골여자 두 명을 농락할 때 한 여자는 자신에게 청혼을 했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한 여자는 자신에게 청혼을 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그 두 여자만 모르고 동 주앙과 관객만 동 주앙이 그 여자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설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또 동 루이 역을 맡으신 권성덕님의 나이와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분장은 정말 나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석상이 움직일 때 정말 석상처럼 움직이는 모습으로 연기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희극을 볼 때는 그 순간만큼은 생각 없이 웃고 즐기고 싶어서 보는 것인데 이 연극은 희극이라는 장르에 어울리게 코믹한 장면이 많고, 즐거움을 많이 주었던 만큼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동 주앙'은 이번 연극 '동 주앙'도 있지만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비슷한 이름으로 많이 나와 있다. 영화, 뮤지컬, 소설 등등 여러 분야에서 동 주앙을 볼 수 있는데 이번 연극을 보면서 동 주앙에 관심이 많이 생긴 나로서는 영화, 뮤지컬, 소설 등 기회가 되는대로 모두 볼 계획이다. 연극 속 동 주앙은 희극의 특성상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는데 영화나 소설, 뮤지컬에서의 동 주앙은 어떤 모습일지 굉장히 궁금하다. 또 동 주앙의 이런 코믹한 모습도 보았으니 진지한 동 주앙의 모습도 보고 싶고, 연극의 특성상 많이 생략된 부분들의 내용도 궁금하다. 특히 동 주앙이 엘비르를 피해 도망오기 전엔 어떤 모습이었는지 또 엘비르와 수도원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좀 더 알고 싶다. 그리고 이 연극에서 풍자한 인간의 위선을 다른 작품들에선 어떤 식으로 나왔는지, 석상이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 좀 더 깊고 자세하게 알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번 연극을 보면서 느낀 것도 많고 얻어간 것도 많다. 우선은 지친 삶속에서 이렇게 박장대소하면서 웃을 수 있는 공간을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 아직은 내가 어리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지쳐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나만 생각한다면 나는 충분히 지쳐있기 때문에 이렇게 그저 앉아서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연극을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다. 또, 이런 희극을 보면서도 인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희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위선'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희극을 보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우면서도 흥미롭다. 그동안은 대학로 소극장에서만 연극을 봤는데 이렇게 정식으로 연극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정말 좋다. 이번 연극 감상은 그저 '레포트를 쓰기 위한'이 아닌 '여러 가지를 얻어갈 수 있는'이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대학로 소극장의 연극뿐만 아니라 이렇게 정식적인 연극도 자주 보러 다니면서 웃고 즐길 기회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