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고전연극탐험Ⅰ "동 주앙"> 동 주앙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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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1.04.02
조회 1992
동 주앙...
왠지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 투우사, 매력적인 귀족이 생각나는 이름이다. 사실 동 주앙(Don Juan)은 스페인 전설 속 고귀한 귀족출신의 희대의 바람둥이라고 한다. 마치 우리가 잘 아는 카사노바와 같이.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연극 동 주앙(Dom Juan)은 17세기 파리태생의 코미디의 선구자 몰리에르에 의해 <동 주앙, 혹은 석상과의 만찬>이란 희극으로 연출된 작품이다. 그 이후로 이 작품은 다양한 장르로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400년이란 긴 시간동안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동 주앙의 매력과 바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난 이 리뷰에서 동 주앙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도 같이 알아보려 한다.
동 주앙이라는 1979년 이후 32년만에 우리나라에서 연출되고 있는 작품이다. 2011년 3월 10일부터 같은 해 4월 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몰리에르의 원작을 <에이미>, <왕은 왕이다>를 연출한바있는 최용훈씨의 연출되고 있다. 주요 배우에는 동 주앙역에 <웃음의 대학>, <금발이 너무해>, <라디오 스타> 라는 작품에 출연하신 뮤지컬 배우이시기도한 김도현 배우, 동 주앙의 하인 스가나렐역에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인 영화 <글러브>, <헬로우 고스트>, <퀴즈왕>, <이끼>, <김종욱 찾기>와 드라마 <글로리아>, <제중원>, <천사의 유혹>, <신데렐라 맨>등에 출연하신 영화배우겸 연극배우 정규수 배우, 동 주앙의 아버지역인 동 루이 역에 영화 <아저씨>, 드라마 <야인시대>등에 출연하신 권성덕 배우등이 있다. 명동예술극장은 리모델링을 한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깔끔했다. 무대는 심플하지만 연극을 즐기기엔 충분했고 무대 특수장치들도 극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특히 큰 석상과 바닥이 꺼지면서 나오는 지옥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연극의 배경은 종교와 사회적 정의가 굳게 믿고 따라지고 있는 중세시대 스페인이다. 주인공 동 주앙은 고귀한 귀족출신의 동 주앙은 수려한 외모와 넘치는 매력으로 세상 모든 여인들의 선망을 받지만 정작 그는 여성을 쾌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사랑을 믿지 않고, 즐길줄만 아는 바람둥이다. 게다가 그는 어떠한 종교, 법, 사회적 억압들을 모두 무시하고 둘 더하기 둘은 넷, 넷 더하기 넷은 여덟이라는 것만 믿는다는 세상의 이단자이자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런 동 주앙의 하인인 스가나렐은 동 주앙을 답답해하고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그를 모셔야한다는 운명을 기구하게 여긴다. 스가나렐은 동 주앙에게 마음을 고쳐먹고 회게 하라고 하면서 동 주앙이 믿지 않고 무시하는 것들을 믿게 하도록 노력하지만 정작 그 자신도 물질의 유혹 앞에선 욕심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연극은 동 주앙과 그의 하인 스가나렐이 동 중앙의 아내 돈느 엘비르를 피해 여행길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동 주앙은 돈느 엘비르를 결혼을 미끼로 수녀원에서 빼내면서 까지 그녀를 차지하지만 그녀에게 곧 질리고 그를 다그치는 스가나렐에게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며자신의 바람기를 정당화 하고 그 여행길 도중에도 동 주앙은 여자들을 결혼을 미끼로 꼬시며 다닌다. 그러나 곧 엘미르의 명예를 되찾고자 동 주앙에게 복수하기 위해 엘미르의 오빠들이 그를 따라오지만 두 오빠 중 한명이 동 주앙에게 도움을 받고 빚을 지게되어 동 주앙은 무사히 그들에게 벗어난다. 그 후 계속 여행을 하던 중 동 주앙은 우연히 그가 예전에 죽인 기사의 무덤에 다다르고 스가나렐과 동 주앙은 석상이 움직이는 기적을 목격하고 어쩌다 보니 그 죽은 기사의 석상을 저녁식사에 초대하게 된다. 석상은 동 주앙이 화려한 말장난으로 빚쟁이를 보낸 이후 진짜로 저녁식사에 나타난다. 이후 동 주앙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거짓으로 스가나렐과 아버지인 동 루앙의 소망대로 잘못을 늬우치고 하느님앞에 무릎꿇는다 한마디로 거짓으로 고상한 껍질을 뒤집어 쓴 것이다. 하지만 동 주앙은 곧 석상의 초대 즉 지옥으로의 초대를 받고 결국 지옥으로 가는 벌을 받고 만다.
단순히 보면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라는 스토리로 보일수 있다. 하지만 난 동 주앙의 자유로운 정신을 주목하고 싶다. 사실 난 동 주앙을 보며 나랑 약간 비슷한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 평상시 동 주앙처럼 무신론자에다가 2더하기 2는 4라는 것처럼 인생은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냐에 100%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동 주앙과 같이 사회적 압박이 없이 자유로운 삶을 어느 정도 동경해왔다. 물론 그렇다고 동 주앙처럼 바람기있고 사랑을 믿지 않으며 산다는건 아니지만 내 눈에 동 주앙은 그 당시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홀로 싸워가는 혁명가처럼 보였다. 난 요즘 세상도 쓸데 없이 너무 사회적인 압박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서로 각자 자신의 종교, 사회적 위치, 기대감과 같은 다른 탈을쓰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데 그땐 얼마나 심했었겠나. 그런 의미에서 동 주앙은 어쩌면 동시대 사람들보다 좀더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선구자일수도 있겠다. 물론 그가 옳은 행동만 한건 아니다. 아무리 개방적이라도 바람기와 쾌락만을 추구하고 사랑을 믿지 않는면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이런 동 주앙의 모습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내 생각도 어떻게 보면 나 또한 사회의 정의에 물들어서 하게되는 것이 하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이지 동 주앙은 사회의 억압의 때가 하나도 묻지않은 순수하게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찍한 사람 같다. 이런 면에서 난 극중 동 주앙의 대사중
“여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선의 껍데기를 쓰고 앉아 있느냐”
라는 동 주앙의 대사가 가장 인상 깊었다. 난 정말 이 말을 듣고 거짓말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찔렸다. 우리중 과연 몇이나 원래 자기 자신의 얼굴대로 살고 있을까? 솔찍히 나 자신을 스스로를 뒤돌아 봐도 진정 나의 모습, 내 감정에 충실한 모습이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 말한마디 한마디 한마디 마다 나의 체면, 위치, 내 발언, 행동에 대한 사회의 반응 등등을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야되 똑바로 살아야되 하면서 정작 나자신은 그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위선자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같다. 아마 다른 많은 사람들도 나와 같이 비겁함을 감추기 위해 더더욱 고상한 가면으로 자기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는 것들이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 또한 위선의 껍데기를 뒤집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설교때는 하나님을 운운하며 도덕적인 행동을 주문하지만 뒤에선 비도덕적인 행동을 일삼는 종교 지도자들, 비리를 저지르는 고위 임원, 공무원들 모두다 가면속에 숨어서 비겁함을 감추는 사람들이다. 극중에서는 스가나렐도 이런 위선의 가면 속에 숨어있는 사람같다. 그는 평상시 동 주앙에게 도덕과 종교적인 옳음을 설교하며 동 주앙이 마음을 고쳐먹도록 옆에서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할때도 그는 동주앙의 금화 몇푼에 동 주앙을 따르고 도와준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 유머러스한 장면을 위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동 주앙이 지옥으로 빠진뒤 스가나렐은 자기 월급은 누가 주냐며 절망한다. 난 이런 모습의 스가나렐을 보고
‘이 인물도 정말 겉으로는 위선을 떨면서 속은 비겁하고 물질적인 욕망이 많은 사람이구나 마치 우리시대의 많은 사람들처럼’
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되었다. 어쩌면 작가는 스가나렐이라는 인물을 통해 위선의 껍데기를 쓰고있는 사람들을 대표적으로 상징할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가 얼마나 위선을 내세우며 자신의 비겁한 모습을 감추는지를 보여주고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시작때 언급한 왜 이작품이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사랑을 받는지에 대한 답이 되는 것 같다. 4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우리가 위선이라는 껍질에 숨어사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건 인간이라는 존재자체가 자기 자신의 나쁜점, 약점을 감추고 자신을 어떻게 해서라도 조금이라도 고귀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게한다.
이렇듯 동 주앙은 희극의 재미를 충분히 살리며, 우리가 재밌게 웃은뒤 작품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하는 참 좋은 작품 같다. 우리가 우리 자신 혹은 사람들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볼 때 보면 참 좋은 작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