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죽어야 하는자와 살아야 하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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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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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어도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과 죽고 싶어도 살아남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야만 했던 자.
연극은 일본의 한 방송국 촬영 팀이 태평양전쟁 당시 수용소 감시원이었던 김춘길을 인터뷰하는 장면과 전쟁이 끝난 후 전범이라는 낙인 하에 형장의 이슬이 되어야 했던 동료들을 회상하는 장면을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소품과 의상만으로도 일본인임을 알아볼 수 있는 촬영팀. 머리에 염색을 하고 나이에 맞지 않는 귀여운 거울을 들고 다니며 손윗사람에 대한 깍듯한 인사 등으로 일본인임을 나타낸다. 특히 대머리 카메라 감독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소품과 익살스런 대사로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를 상승시키며 관객들에게 폭소를 유도한다.
형무소에 갇혀있는 수감자들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로 분위기를 무겁게, 또 장난과 연극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두 명의 수감자들이 연기하는 멕배스의 한 장면은 연극속의 연극으로 웃음을 더하며 연극이 끝난 후 관객의 박수를 유도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무대의 정면 뒤편에 보이는 커다란 교수대와 양 옆에 서 있는 창살 문. 그곳을 통해 간수들이 드나들 때 마다 들리는 쇳소리가 죽음의 공포를 극대화 시킨다. 그리고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무대 한 켠에 자리한 수도꼭지. 이 장치가 없어도 연극의 진행에는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수감자들은 번갈아 가며 이곳에 와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신다. 어쩌면 그들이 씻어 내고자한 것은 육체가 아니라 지난날 자신들이 겪은 기억들일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제목에도 있었던 멕배스에 대한 언급이 크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연극속의 연극에서 원작 멕배스에 대한 소개를 잠시 하지만 제목과 그들의 현실에 대한 연결을 좀 더 알기 쉽게 풀어줬다면 연극을 이해하는데 조금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마 관객들의 교양 수준을 너무 높게 잡은 건 아니었을까.
이제 수감자들은 하나 둘 그토록 피하고만 싶었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형을 감면받아 죽음은 면하게 된 춘길에게 문평은 그들이 겪은 억울함을 알아달라는 내용의 작은 쪽지를 내밀며 꼭 살아서 이 쪽지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 달라 한다. 그 쪽지는 이제 무대 전면에 장치된 철도 레일을 따라 춘길이라는 기차를 타고 과거에서 현재로 와 우리에게 쪽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역사 속에 잊고 있었던 이들을 기억하고 알리고 싶어 했던 것일까. 재일교포의 눈에서 본 한국과 일본.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으로 죽어야했던 그들. 과연 그들을 기억해야 할 사람은 한국일까? 일본일까? 전쟁에 희생된 300만의 일본인과 3000만의 아시아인들. 결국 한국과 일본 모두가 지난 전쟁의 피해자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