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누구의 잘못인가? <적도아래의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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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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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유명한 작품을 배출해 낸 극단 미추와 명동예술극장이 공동으로 제작한 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가 10월 2일부터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무대에 올랐다. 이 공연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전쟁의 책임을 대신 지고 전쟁범죄인으로 낙인 찍힌 조선인 전범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전범 재판에서 두 번이나 사형을 선고 받았던 한국인 이학래씨의 실제 이야기로 ‘야키니쿠 드래콘’ 등으로 잘 알려진 재일 극작가 정의신에 의해 연극으로 탄생되었다. 지금껏 한,일 양국에서 모두 외면 받아온 이들의 정체성 문제를 파헤쳐 온 재일교포 2세인 정의신 작가가 이 연극을 다루어 이번 작품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단순히 보면 셰익스피어의 비극작품 ‘맥베스’를 각색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적도 아래 태양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적도 아래 창의 형무소에 수감되어 자신들의 정해진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이들의 삶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연극은 어느 여름날 태국의 논프라덕 역을 배경으로 세 남자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 된다. 그들은 포로 수용소의 한국인 감시원이었던 김춘길의 증언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촬영하기 위해 왔으며 그들이 춘길을 인터뷰를 하는 내내 춘길이 그 당시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과거 춘길은 전범으로 잡혀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에 수용된 인물이다. 이곳에는 맥베스 책을 늘 끼고 다니는 박남성과 고향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면서 마음의 위로를 삼는 이문평, 전범 재판에 불만이 가득 찬 일본인 쿠로다, 그리고 포로 수용소의 간부 야마가타가 함께 수용되어 있다. 이들이 서로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며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냐는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나날을 보내다 결국 박남성과 야마가타가 사형대에 오르는 것으로 과거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여기서 살아남은 김춘길이 결국 그들의 이야기를 촬영을 통해 전해주면서 극은 끝이 난다.
이문평은 울먹이며 ‘왜 우리가 이렇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외친다. 이는 이 연극이 다루는 궁극적인 질문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한 이런 물음에 답해준다. 작가는 맥베스란 역을 그들과 일치시키고 박남성이 죽기 전날 밤 맥베스를 연기하게 하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선택에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 사실을 거부하는 김춘길과 이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통해 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김춘길은 동료를 자살에 이르게 한 야마가타에게 책임을 지워 분노를 표출해 죽이려고까지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분노를 표출해야 할 상대가 못 되는 것에 절망을 느낀다. 그를 죽이지 못하고 김춘길은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가’라고 외친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개인이 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연극에 무대적 장치를 가급적 배제한 것도 이런 내용들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인식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이 극은 맥베스를 전범들이 연기하게 함으로써 전범들을 맥베스로 대변하고 있다. 여기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살펴보자면 맥베스는 마녀의 예언에 현혹되어 기승을 부리는 부인과 공모하여 국왕 던컨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그는 결국 맥더프에게 살해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작품을 언뜻 보면 ‘적도아래의 맥베스’와 접점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접점은 이들이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당해졌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의 수단으로 쓰여졌다 철저히 버려진 이들의 운명이 각기 다른 두 개의 연극의 내용으로 표현된 것이다.
처음 연극을 보았을 땐 다른 연극들에 비해 무척 단조로운 무대가 눈에 띈다. 오로지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철도 하나. 모든 것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이곳이 어딘지 무엇이 있는지가 밝혀진다. 그러나 이런 아무것도 없는 배경으로 인해 이 연극에서 역사의 흐름을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인 철도가 더 눈에 띄는 것이 아닐까.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과거의 회상을 나타내는 막과 현실과 분리된 형무소의 공간이다. 얇은 막을 쳐서 형무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진짜 과거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단조로운 무대 때문인지 거의 모든 것을 조명과 소리로 표현했는데, 특히 빛이 점점 사라지는 것으로 문을 닫는 것을 표현한 것과 반딧불을 조명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갈 때마다 전범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멜로디는 어딘가 구슬프고 가슴이 저리게 한다.
한편 이 연극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단연 전범들의 연기다. 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수용소에서 그들의 절규를 잘 연기력 하나만으로 잘 표현해 냈다. 각각의 배우들 모두 자신들의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표현해 냈다. 다큐같은 이 연극의 재미도 한 배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바로 언제 직장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카메라맨 역. 다만 비서인 요짱과 투닥거리는 모습이 이 연극의 유일한 코믹적 요소라는 점이 아쉽다.
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다소 무거운 주제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우리는 관객으로서 그 주제에 대해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 이 작품은 그 동안 단순한 재미와 웃음의 요소로만 평가했던 연극이 감동과 슬픔 같은 새로운 감각들로 평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연극이 대중들에게 역사적인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한 의미있는 연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