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선택에 따른 책임, 그리고 반성이 아닌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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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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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거리 명동. 그 가운데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명동극장에서 볼 수 있는 ‘적도아래의 맥베스’ 는 제목에서 풍기는 무언의 신비로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가을이 다가와 찬바람이 살살부는 요즘의 날씨 속에서 ‘적도 아래’ 라는 말은 암묵적인 따뜻함을 넘어서 뜨거운 느낌을 주었으며, 뭔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를 비유적으로 활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제목. 연극을 빨리 관람하고 싶은 관객의 심장을 요동치기에 적절했다.
이 연극은 1940년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군무원으로 징용되어 포로들을 관리하는 감시원을 했던 한국인들이 주인공으로 일본의 태평양 전쟁이 남긴 상흔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연극은 태평양 전쟁 속에서 한국인 군속으로 두 번의 사형선고와 두 번의 감형으로 살아남은 실존인물 이학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전범으로 몰려 죽음을 맞이했던 한국인 군속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에 의해 재구성된 이 연극은, 어쩌면 사회적 소수자인 재일교포의 입장에서 사회에서 외면당한 전쟁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서 인지 서로의 입장의 오묘한 동질성 속에 그들의 아픔이 현실감 있게 반영된 것 같다. 그리고 연극은 현실 속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현실장면과 과거회상장면이 교차되어 나타나는데 의도는 좋았으나, 그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현실과 과거 각자 다른 이야기를 보는듯하게 부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무대에 현실장면을 표현할 당시 연극의 배경이 되는 태국의 철도사진을 직접 찍어 배경으로 쓴 것과, 그에 따라 철길을 설치한 점은 연극에 사실성을 좀 더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암전 때 마다 한국인 군속으로 목숨을 잃었던 이들의 사진을 영상으로 보여준 연출 또한 역사를 주제로 한 연극답게 현실감을 높여주었다. 또 무대가 크고 넓고 조명이나 음향도 적절하여 위층의 관객석에서도 쉽고 인상적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이 연극은 역사를 소재로 한 연극이기 때문에 진실의 전달에 표현의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그래서 다소 흥미와 재미가 반감되었다. 리얼리티와 현실성을 추구하면서 연극에 조금의 흥미와 재미를 부여했다면, 지루하고 무거운 느낌을 조금은 반감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력이 매우 뛰어나 리얼리티를 조금 더 극적으로 살릴 수 있어 현실감의 전달은 확실히 이루어진 것 같다. 연기를 하고 있는 배우들에게 어떠한 배역을 정해줘도 모두 소화할 듯이 보였다.
연극의 제목을 선정함에 있어 ‘맥베스’ 를 활용한 것은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맥베스와 전범으로 몰린 군속들의 모습이 비슷해 보여서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참신한 제목은 제목의 참신성에서 그칠 뿐 연극을 관람한 뒤에는 오히려 작품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야망에 가득차 자신의 야망을 위해 불물가리지 않고 행한 행동들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며 고뇌했던 맥베스와는 달리, 연극 속 전범들은 자신의 야망에 의한 선택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버린 전쟁이란 현실 속에서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비극적 죽음과 죄책감등의 소소한 유사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물의 내면까지 고려해 보았을 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럼 ‘적도아래의 맥베스’ 가 근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이 연극이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역사에 대한 인식이었던 것 같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란 역사에 대한 반성도 후회도 아니다. 그냥 인식 자체이다. 이러한 일이 존재했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를 알게 되었을 때 어떠한 생각을 갖든지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상대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우리는 역사속 숨겨진 아픈 기억을 전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말그대로 역사에 대한 무관심.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역사속 아픔을 지닌 이들은 그저 가해자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물론 이들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의 제대로 알고 ‘그들의 아픔과 내면의 갈등, 죄책감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가해자라고 생각한다’ 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관심한 상황에서 대충 들은 이야기로 그들은 가해자라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이 연극을 관람하고 나서 내가 역사공부를 하면서 그 어디에서도 배운 적이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전쟁이라는 반인륜적행위 속에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현실. 어쩌면 전쟁의 어두운면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워 마땅한 사실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그것도 역사를 좋아하고 사랑해서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내가 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한국 근현대사 시간에 배운 전두환 정권시절의 광주민주화항쟁모습이 비슷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광주민주화항쟁을 진압하였던 군인들 또한 원하지 않은 환경을 맞이하여 한민족간의 비극적인 적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양심이라는 가치 아래 갈등하며, 역사 속에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남아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말속에도 피해와 가해라는 단어는 확실히 정해져있지만,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경우를 뜻하는 단어는 없다. 그만큼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일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마음상태. 아마 연극 속 전범으로 치부된 한국인들을 나는 평생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의 마음상태를 조금이라도 표현해줄 수 있는 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나는 그들과 같은 현실상황 속에 노출된 적도 없으며, 결정적으로 나는 그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한다. 그리고 더 이상 무관심 하지도 않으며, 이 비극적인 역사의 이면 자체를 이 연극을 통해 인식하게 되었다. 연극 속 실제 주인공 청년들, 연극의 작가 모두 아마 이러한 인식을 바랐을 것이다.
또한 나는 이들을 통해 선택과 책임이라는 것이 대해 생각해 봤다. 이 연극의 포스터에는 ‘그때 난 아직 18살, 다른 선택은 없었지요’ 라고 적혀있다. 과연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이들은 물론 일제치하시절 자신의 위해 시간을 쏟는 다거나, 미래를 계획해 본다거나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제한은 있을 수 있으나, 그래도 나라를 위해 싸우는 독립투사가 된다거나, 일본수용소를 관리하는 일에 자원을 하지 않는 다거나 하는 선택의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그 속에서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았고, 그 삶이 후에 상처만 남는 결과를 가져왔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의 선택에 의한 결과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형이라는 면죄부로 그 책임을 졌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극중에서 막내 문평이 어머니께 매일같이 사죄의 편지를 쓰던 모습, 일본인 쿠로다가 자신의 죄를 용서 받고 싶어 남성에게 사정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만큼 이들은 어느 누구 하나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그 좁은 선택로에서 길을 택한 삶에 대한 책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매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자신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며, 또 그 선택에는 반듯이 책임이 따른다. 선택과 책임. 그 책임이 비록 면죄부로 작용하게 될지라도 선택을 하는 동시에 겪게 되는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책임이라는 도착지점에 까지 우리에게 그 어떤 훌륭한 선생님의 가르침보다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라고,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져 가는 이들이 억울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대한 면죄부로 사형이라는 책임을 얻게 될 때,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항상 젊음의 거리로만 느껴졌던 명동.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던 명동 한복판에 자리한 명동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나온 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사로잡혀 젊음의 중심에 서있던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