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역사의 희생자 조선인 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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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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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극단 미추'와 정의신 작가, 손진책 연출가가 준비한 작품으로서, 10월 2일부터 10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맡겨진 운명 때문에 전범이 될 수밖에 없었던 '조선'출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라 없는 설움을 여실히 보여준 그래서 내게는 더더욱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고 있음에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준 연극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은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기 위해 조선인 젊은이들을 착출하여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의 일본군 기지에서 포로를 감시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전쟁이 끝나자, 조선인 젊은이들은 연합군 포로들의 고발로 감시자의 신분에서 포로로 전락하고 만다. 비록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어쩔수 없이 주어진 일에 순응했다손 치더라도 주변의 유혹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 이들의 운명이 ‘맥베스’와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 연극이라 하겠다.
'조선'출신 전범들의 기구한 운명을 다룬 이 작품은 '조선'출신 포로감시원이었던 '김춘길'의 증언을 녹화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현재의 '김춘길'과 과거의 '김춘길'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점점 이어지도록 구성되었다. 작가의 의도는 '자칫 잊혀질수 있었던 한국의 BC급 전범문제를 생각하는데 있다. 이야기의 구성이 과거와 현재를 드나들며 이루어졌듯이 과거 조선 젊은이들의 전범 문제를 현재의 우리들이 다시 상기하며 보다 높은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무언의 몸짓이리라.
이 연극의 효과음이나 무대 장치는 관객의 느낌을 배가하는데 큰 역할을 한 듯하다. 문이 열리는 큰 '삐걱' 소리는 관객들과 연극 속 수감자들에게 동시에 긴장감을, 무대 양쪽에 서있는 감옥문은 연극의 전체적 분위기가 비극적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며, 무대 뒤쪽 중앙의 교수대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은 무대 세트 중 가장 크고, 중앙에 있으므로 관객들의 시선을 모아 죽음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로써 '조선'출신 전범들에 대한 비극적 결말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켜준다. 또한, 구석에서 쫄쫄쫄 새어 나오는 수도꼭지의 물은 수감자들의 실낱같은 희망이 아닐까?
수감자 역할을 맡은 연기자들의 연기도 감탄할 만하다. 처지를 한탄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외치는 연기자들의 감정이입이 그 때 그 안타까운 조선의 젊은이를 보는 듯 했다. 자신의 조국을 위해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요. 부모형제를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닐터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억울한 일인데 포로가 되어 전범으로 취급 받는다면 얼마나 착잡할까... 마지막까지 바깥 세상에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려 편지를 쓰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그들의 억울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 또 한편 끝까지 삶에 충실하려는 최선을 보여줌으로써 그 어떤 처지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불굴의 의지가 엿보여 인상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일제 강점기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우리 조상들이 불쌍하고 억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쩌면 떠올리기 싫은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똑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것은 더욱더 치욕스러운 일일게다. 해서 역사의 성찰은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지 싶다. 그러므로 이 연극은 알려지지 않은 우리 역사의 한쪽 귀퉁이 상처를 꺼내어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상채기를 내지 않도록 후세들에게 주지시키자는 의미가 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