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잊혀져간 역사속의 슬픈 진실 <적도아래의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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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7
조회 1822
10월2일부터 10월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적도아래의 맥베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에 의해 동원되어진 조선인 포로감시원들, 그러나 해방후 전쟁범죄자로 낙인 찍혀 사형대 위에서 사라져간 B,C급 전범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연극은 명동예술극장과 국내 굴지의 극단 '극단미추'가 공동제작하였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재일작가 정의신과 연출가 손진책이 함께 하였다.
이 연극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일본의 TV외주제작회사가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포로감시원으로 당시 수감되었던 김춘길의 증언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1947년 여름, 김춘길은 전범으로 잡혀 싱가포르의 한 형무소에 수용 된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인 전범들을 수용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같은 포로감시원이었던 박남성, 이문평, 포로감시원의 상관 야마가타, 그리고 일본군인 출신의 쿠로다가 같이 수감되어 있었다. 비스킷 두장으로 적도의 뜨거운 태양아래 힘겹게 버텨가며 자유가 되길, 아니 사형집행이 취소되길 바라는 그들. 어느날 박남성과 야마가타에게 사형통지서가 날라오는데 ...
우선 이 연극을 접하면서 가장 큰 궁금점은 제목의 '맥베스'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 알려진 '맥베스'가 왜 제목에 들어가 있는걸까, 일단 무거운 연극이라는 것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제목이었다. 극중 사형집행을 받게된 한 배우는 그냥 있어도 왕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았던 맥베스가 왜 굳이 왕을 죽이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했을까, 이는 곧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했듯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을 한 박남성은 포로감시원이 된 조선인들은 굳이 일본군 군속이 되지 않아도 이미 식민지하 일본에게 조선인으로서의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으면서 조금이나마 가족 혹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여 포로감시원이 되었던 자신의 처지를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당시 이렇게 할수 밖에 없었던, 내몰린 조선인들에게 드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연극 중 야마가타라는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은 춘길의 상관이었고 자신으로 인해 춘길의 친구가 자살을 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중반까지 말도 한마디도 안해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가끔가다가 한마디씩 툭툭 던지고 일본을 욕하면 성스러운 나라를 욕하지말라며 대들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남성이 먼저 사형을 당하고 그것을 소리로만 듣고 있던 야마가타는 결국 죽기 싫다며 절규를 한다. 이 장면은 나에게 인상적이었는데 전쟁속에서 야마가타는 포로감시원의 간부였고 한 개인이었다. 일본을 찬양하던 이 개인이 결국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앞 비극적으로 결말이 난 상황에서 어쩔수없는 운명앞에서 한없이 작은 인물이 될수 밖에 없었던것을 표현한것 같았다. 이 배우의 연기가 계속 세트를 배회하며 비중이 적었다 하더라도 마지막엔 나에게 임팩트가 있었다.
이 연극의 배우들은 하나같이 연기를 빼어나게 잘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서로 부둥켜 안으며 마지막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왠지모르게 나도 눈시울을 적실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무거운 연극에 가끔가다가 억지로 끼워맞춘듯 웃기려고 노력한것이 역력한 대사들이 등장한다. 물론 계속 무거운 이야기여서 분위기가 우중충하기 때문에 유머러스한 장면들을 넣었다고 쳐도 뭔가 극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았던것 같다. 이 연극은 현재 인터뷰장면과 과거 회상장면이 수시로 전환된다. 그 전환되는 장면 사이사이 스크린에 사진같은것들이 나오는데 이 사진들은 포로감시원들의 실제 사진 같았다. 가끔가다가 사진은 너무나도 배우들과 비슷해서 깜짝 놀라곤 했다. 이 스크린 사진들과 같이 나오는 음악으로 인해 연극의 무거운 분위기는 한층 더 배가되었다. 그리고 무대 뒤쪽에는 사형대가 있었다. 이 사형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자리에 있었는데 이는 수감된 감시원들의 목숨을 시시각각 옥죄어오고 그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상징적인 역할로써 잘 표현되었다.
이 작품은 생소하지만 꼭 알아야할 우리 역사속의 슬픈진실에 대해서 실존인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B,C급 전범들. 그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가혹한 상황을 겪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고 희곡대로의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연극은 단순 잘 알려지지 않았던 B,C급 전범들에 대한 관심을 요구하는게 아니라 우리 역사의 반성문의 역할로서 앞으로 이런일이 다시 발생하지않도록 우리의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