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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60여년 입속에 머금은 한마디. “나 살아있어...”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7

    조회 1807

 

적도아래 맥베스 관람 후기.

60여년 입속에 머금은 한마디. “나 살아있어...”


아무런 해설없는 진행. 관객은 극장 한 가운데 사정없이 내팽개쳐진 느낌을 받으며 극에만 눈을 고정한다. 아나운서가 말한다기엔 너무나도 빠른 템포. 의미의 전달에만 충실해 보이는 전개는 극장의 관객에게 한없는 아득함과 까마득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 까마득한 템포는 어느새 나를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극의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 속으로 내쳐놓고 마는데,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춘길, 박남성, 이문평, 다케오, 그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애통해하며, 기뻐하고 분노하는 그 순간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때는 2010년 아시아 노동자 20만명이 동원되었고 약 11만 6천여 명이 중노동과 질병, 부상, 영양실조로 사망한 일명 죽음의 철도라고 불리기도 하는 버마철도 위에서 막을 올린다.

가타부타의 부연 설명 없이 진행되는 적도 아래의 역할극, 감독겸 아나운서 소다 히로시(이기봉)와 카메라 미야지마 마사야(오일영), 그 시대를 살아간 듯 한 늙은 노인과 그를 보살피는 야마구치 요시에(황연희)는 지금 현대의 시각과 예전 1940년대를 파헤치고자 하는 극중 상황을 어떠한 해석이나 여과 없이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노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뻔히 보임에도 그 노인은 다큐멘터리의 도움자 역할을 충실히 고수한다.

무슨 이유에설까 ?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2막으로 연결된다.

뭐야? 뭐야? 없었던 구조물이 생기고, 그 안에서 죄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2중 배경은 물 흐르듯이 나를 극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2010년의 우리들이 알고 싶어 하던 그 당시의 감옥 안.

안경을 쓴 채 편지를 쓰는 이문평(황태인), 바둑을 두는 쿠로다 나오지로(최용진), 이문평을 놀리며 골려먹는 활기찬 박남성(정나진), 주위를 배회하는 야마가타 타케오(조정근), 무죄방면으로 풀려났다가 다시 체포된 김춘길(서상원)이 그 감옥 안에서 서로의 생활을 이어간다.

역시 아무것도 우리에게 설명 해 주지 않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이의 생활인양 서로의 위치와 생각, 행동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두 번째, 세 번째쯤 되니, 이젠 이사람이 누구구나 어떤 상황이구나. 알고 싶어 하기 전에 그들에게 일단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러한 나의 반응이 작가의 의도인걸까 ? 알 수 없지만, 그들의 행위 하나하나는 나의 눈과 귀를 모으고 차근차근 요리해 나간다.

현재시대를 달려가는 다큐멘터리와 그 당시, 1947년의 형무소 안은 같은 상황을 지향하며 형무소의 상황을 다각적으로 재조명 해 주어 극의 초반 극장 안에 내동댕이쳐진 나를 달래듯 하나하나 나의 막힌 의문점을 풀어 나간다.

극의 중간 중간 나오는 철문소리는 나의 심장을 거세게 움켜쥐고 (흡사 극장이 ‘나에게 집중해!’라고 외치는 듯…….) 놓아주질 않았으며, 나는 그에 호응해 무대안의 그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했다.

갈등의 절정. 남성의 가족으로부터 전달된 편지로부터 얻은 짧은 희망도 잠시, 곧이어 전달된 남성의 사형집행소식은 모두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의지인걸까? 좋은 모습만 남기다 가고 싶다. 울다 가긴 억울하니 웃다가자며 웃고 떠들고 아리랑을 부르는 그들의 모습은 나도 모르게 나에게 자그마한 미소를 머금게 했다. (베테랑 연극배우이지만, 그 당시의 단역배우로 화해 어설프게 연기하는 남성과 쿠로다 나오지로의 연극은 정말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느낌을 전달 해 주었으리라.) 하지만, 그 웃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슬프게 떨어지고, 경건하게까지 느껴지는 아침의 샤워 장면에 나도 모르게 그 이후를 말없이 쫒게 만든다.

“조선독립 만세 ! (철커덩) 끅..............................”

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듣고 이문평은 감형 소식을 받은 춘길에게 자신이 어머니에게 보내려던 편지를 꼭 쥐어준다.

“춘길이형. 울보긴 했지만 전범이 될 만큼 나쁜 놈이 아니어다고 알려주세요……. 내 고통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촛불 같은 기쁨, 위안이 생길 거 같아요.”

“살아줄게... 전해줄게... 죄송합니다... 저 혼자…….”

“춘길이형... 건강하세요…….”

 세 시간 남짓 되는 이 극 안에 너무도 많은 이들의 너무도 많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

“조국은 해방되어서 기쁠 텐데 내가 왜 전범이 돼서 죽어야 되는 거야 왜?!!!... 누가 좀 가르쳐 줘 !!!”라고 비통하게 외치는 춘길의 모습.

“나의 죄... 우리 일본인의 죄를 업고 넌 처형되는 거야... 용서해줘... 용서해줘...”라며 남성에게 용서를 비는 쿠로다 나오지로.

“용서 못해... 죽을 때까지 용서 못해... 아저씨가 죽으면 그땐 용서해 줄게 죽으면 일본인이고 조선인이고 없을 테니까”라며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남성의 모습.

그 외에 일본에서 훈장을 받은 장군(야마가타 타케오)에서 심약한 아이(이문평), 무죄선고 후 풀려나는 김춘길, 2010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명의 상황과 인물을 한 장면 안에 밀어 넣는다.

정의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BC급 전범들... 그들의 무념의 마음을 극작가로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그 결과로서 저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말 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인의 입장으로써 이 극은 환대를 받을 만하다. 잊혔으나 그 역시 한국인인 이들을 대변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해 생각지 못한 감정과 상황들을 다방면으로 보여준다.

이래서 이렇게 되었구나. 저래서 저렇게 되었구나. 초반에 알지 못했던 답답함은 유레카!를 외치며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앎의 기쁨(슬픔일지도 모르겠으나)을 느끼게 해주며 감정을 이루 말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놓는다.

 하지만, 일본인에게도 자신 나름대로의 성전이었다고, 그것은 옳은 일 이었다고 외치는 그 당시 오만하고 자존심 강한 일본인을 대변하는 야마가타 타케오의 행동으로 인해 자칫 잘못하면 모든 일본인이 오만하고 반성할 줄 모른다고 하는 잘못된 인식이 박힐까 두렵다. 또한 그의 사형당하기 직전의 그 모습은 충분히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에 대하여 충실히 반영 했듯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일본에 대해서도 조금은 객관적으로 피력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일본 안에서 애국자였으며, 열사였고, 의사였기에, 일본인의 시각에선 그것이 정의의고 올바른 일이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에 대해서 나는 나쁘지 않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 안에서 어우러져 살던 여러 이들을 한 장소에 불러 모아 교감하고 소통하는 장면에서 각자의 영향력과 의지를 충분히 대변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며, 60년이 지난 춘길의 모습에서 그들은 뻔뻔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너무 강직하지도 않았으며, 그 당시의 나약하고 주위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를 살아가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너무도 현실감 있게 재현하여 그 속에서 너무도 편안하게 그들과 호흡하고 공감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20100912_적도아래 포스터최종.jpg
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

-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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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탈퇴회원)

    많은 리뷰를 봤는데 이리뷰가 특히 좀더 참신한거 같아요!! 연극 재밌게 볼께요

    2010.10.17 14:44

  • (탈퇴회원)

    실제 연극의 대사를 인용하고 극 상황을 설명해 주시니까 정말 실제로 제가 가서 보는 듯 한 느낌이 드는 리뷰네요

    2010.10.17 14:38

  • (탈퇴회원)

    안그래도 보려고 후기 찾고 있었는데 많은 참고가 된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2010.10.17 14:37

  • (탈퇴회원)

    참신하고 색다른 리뷰인거 같아요.~ 극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거 같아요 ^^ 인용을 많이하셨네요~ 특히 대사인용에서 그 장면들이 머릿속에 다시 새록새록 떠오르는 느낌이 들어요.

    2010.10.17 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