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어둠속 눈부신 반딧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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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7
조회 1710
어둠속 눈부신 반딧불이
지난 2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적도아래의 맥베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전쟁의 책임을 대신 지고 전쟁범죄인으로 낙인찍힌 조선인에 대한 뼈아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친일파라는 오명이 씌워진채 나라에 외면받고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한 그들의 버림받은 삶을 단지 어둡고 칙칙함만으로 다루지 않고 쏠쏠한 재미와 함께 감동도 더해 그들의 가슴시린 삶에 더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극의 시작은 일본의 TV프로그램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포로 수용소의 한국인 감시원이었던 김춘길의 증언을 녹화하는 기획이다. 김춘길의 증언으로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극은 진행된다. 김춘길은 동료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인터뷰에 성심껏 임한다. 그러나 연출가인 소다는 사전에 이야기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촬영을 진행한다. 이에 석연치 않다며 김춘길의 비서 야마구치가 촬영하지 말 것을 제의하지만 김춘길은 동료들의 아픔을 누군가는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인터뷰를 계속 진행하는 것으로 연극은 흘러간다.
김춘길은 포로 수용소의 유일한 생존자이다. 포로 수용소안에는 맥베스 책을 늘 끼고 다니는 박남성과 대일 협력자에 전범인 아들 때문에 괴로워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면서 마음의 위로를 삼는 울보 이문평, 명령을 내린 자들은 면죄부를 얻고 그 명령에 따른 군인들만 재판받는 전범 재판에 불만이 가득찬 일본인 쿠로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의 간부 야마가타가 함께 수용되어 있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람들 이지만 그들의 목표는 하나. 살기위함 이였다. 이 세상에서 살기위한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결국 지어버린 그들의 최후를 보게된다.
적도라는 가장 햇빛이 강렬한 곳, 그 뜨거움이 작렬하는 곳의 맥베스. 맥베스는 세익스 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로 이 연극이 비극이라는것을 나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맥베스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인물이다. 작가는 영문도 모른 채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오해로 전범처리된 이들이 결국 운명에 이끌려 처형이라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것을 맥베스로 표현하고 싶었던것 같다.
깜깜한 무대에 바닥을 뚫듯 내려쬐는 조명이 그들의 삶을 눈부시게 해주었다. 결국 김춘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사형을 당하고 말았지만, 그들의 영혼은 반딧불이 되어 더 반짝이며 우리에게 돌아왔다. 울보 문평이의 대사중에 “춘길이형, 꼭 살아남아 주세요. 전범이 될 만큼 나쁜놈은 아이였다고 전해주세요. 내 편지를 누군가 읽고서 고통을 알아주는 이가 10년, 20년 후에 있기를... 이런 생각을 하면 내 가슴속에 촛불처럼 작은 불빛이 켜지고 평온한 마음이 되요” 이게 현실로 이루어진듯 반딧불이 죽어서도 우는 문평이의 눈물을 닦아주는것 같았다.
무대 오른쪽에 수돗가는 그들의 목마름을 축이는 오아시스가 되어주었다. 또 머리를 감거나, 세수를 하는등의 행위는 그들의 억울함, 분노, 고통등을 씻어내는 정화장치이기도 하였다. 쿠로다가 말을 하려다 말문이 막혀 물을 틀고 세수를 머리까지하며 뭔가 씻어버리고 싶은 그 심정이 콸콸콸 나오는 물에 씻겨져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연극에서 소소한 웃음을 준 카메라맨 오일영과 오디오맨 홍석락씨는 자칫 어둡고 무거운 칙칙한 분위기속에서 이루어진 스토리를 재미를 주어 그 무게를 덜어주었다. 극중 대사는 제일 없었지만 제일 바빴던 야마가타 조정근씨는 걷는 연기만으로 그 인물의 심정과 성격를 잘 표현해 내었다. 황태인씨의 눈물연기도 정말 보는사람의 심장을 뒤흔들만한 연기였다. 정나진씨의 열연도 단연 돋보였다.
처음에 공연장에 들어갔을때 느낀것은 무대가 매우 협소하다 라는 것이였다. 그러나 그 협소함안에서 하얀 막이 걷히고 또 다른 수용소라는 장소가 나타나고, 스크린에서 나타나는 실제 전범의 누명을 쓴 사람들의 얼굴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장치가 되었다. 무대는 스크린 한 장으로 시공간을 넘나 들게 하여 연극의 시공간 제약을 해소하였다.
수용소 안에서도, 다큐멘터리를 찍는 공간에서도 항상 답답한 느낌이 있었다. 부적합하고 누군가의 꾀임에 넘어가 자꾸만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길로 넘어가는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오디오맨 오카다는 자금으로 다큐멘터리를 진행시킨다. 결국 김춘길의 진심이 통한것이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진심이 아니였을까 한다. 엔딩을 반딧불이로 형상화한것도 그들의 진심이 전해져 우리에게 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던것 같다. 수많은 반딧불를 보니 사람들의 희생이 그토록 많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 한사람 빼고는 다 사라졌지만, 그들은 눈부신 반딧불이가 되어 자유로 향했다. 이 작품은 전범 문제가 지닌 묵직한 주제를 우리에게 감동과 슬픔 그리고 웃음을 전해주며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꼭 이 연극을 보고나서 나는 역사의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일제치하속 시련을 눈으로만 바라보자니 나역시도 죄를 짓는 기분이였다. <적도아래의 맥베스>를 보는 모든이들이 고통받은 전범의 진심을 알고 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