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난 18살에 전범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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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7
조회 1608
난 18살에 전범이 되었습니다.
1941년 말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전역을 넓혀가면서 엄청난 수의 포로가 생기게 된다. 싱가포르, 자바를 점령하면서 일본군은 30만명의 포로를 관리하게 된다. 일본군은 전쟁에 참여할 전사들이 부족한 가운데, 포로감시원들을 한반도에서 모집하기 시작했다. 돈을 많이주겠다, 일본인 출신대우를 하겠다고 사람을 모으다가 나중엔 협박으로 포로감시원들을 뽑는다.
포로감시원들은 태국, 말레이반도, 자바섬 등에 설치된 포로수용소에 배치되었고, 일본군 부대에서 내려지는 명령에, 포로감시원들은 포로들을 학대할 수 밖에 없었다. 전쟁포로를 철도 공사에 투입하기도 했으며, 무차별하게 혹사시켰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나고, 포로감시원들은 해방되었다. 그러나 범죄자 적발과 군사재판으로 그들은 전범으로 체포되었다. 전범으로 체포된 사람들은 사형을 당하거나, 무기형 혹은 유기형에 처해졌다. 이들 중 살아남은 이가 “춘길”이다. 무더운 여름, 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춘길”은 이 사실을 알리려고 한다.
춘길과 맥베스 책을 끼고 다니는 남성, 어머니께 효도하려다가 18살에 전범이된 문평과 일본인 쿠로다, 포로감시소의 간무 야마가타 가 수용소에서 얘기를 나누고, 다큐를 찍고, 관객은 그 광경을 본다.
무대에는 사형대와 철창문으로 수용소를 설명했다. 연극은 공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한계점이 있는데, 스크린을 내려서 수용소 화면도, 태국에서의 촬영현장도 잘 표현해냈다. 철창문이 닫힐 때의 쿵하는 소리와 무대가 바뀔때의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 등 하나하나 세심하게 그 당시의 상황을 관객에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
그들의 연기는 정말 미친 듯 했다. 나도 감정이입이 되어버렸다. 그 당시를 겪었다면, 어땠을지 소름이 돋았다.
연극을 보기전에는, 포로감시원들이 이렇게 무시당하고, 험한 꼴에, 억울한 상황을 겪었는지 몰랐다.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문평”을 보면, 어머님께 효도하려고 간 거였는데, 결국은 불효를 저지른 것이었다.
주위사람들의 질책과 수근거림에 끝내 어머님께서는 자살을 하셨다.
처음에 일본인처럼 대우해 주겠다며,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하고선, 쥐꼬리만큼의 돈을 받으며, 일본인 명령 들으면서 포로를 학대했는데 돌아온 건 절망이었다.
일본의 식민지로서 일본인 취급 당하고, 사형된 사람도 많았다.
강화조약 발효 후, “우린 이제 일본인이 아니니 석방해줘라” 했지만 돌아오는 너네도 한때는 일본인이 아니었는가 하며 거부했다. 일본 법원에서 판결한 결과였다. 그렇다고 그들은 반겨줄 조국도 없었다. 한국으로 가도 일본군 협력자라고 냉대와 멸시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일본에서의 생활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환대 받지 못했다.
연극에서 155분이면 굉장히 긴 시간인데, 그 시간이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시간인거 같았다.
지금 이제와서의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려는게 아니라,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는 의도가 깊이 새겨졌고,
이 연극을 통해서, 한껏 당시 상황을 이해하였다. 또,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다는걸, 우린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씁쓸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분하고, 억울하기도 한,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연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