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적도처럼 답답했고 적도처럼 뜨거웠던 비극-적도아래의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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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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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연극에 대한 평은 괜찮았다, 형무소에 갇혀있는 죄수들의 절규와 무력함이 간절하게 느껴졌다, 젊은 세대들이 겪지 못한 아픔을 느낄 수 있었던 연극 이었다, 이정도이다. 배경지식을 갖지 않고 이 연극을 접한다면 지극히 단면적인 부분만을 받아들이게 되는 연극 이었다. 그리고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고 답답했다. 예전의 형무소와 현재의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을 넘나드는 설정 또한 조금 무리였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또한 ‘왜 맥베스 여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은 나를 자극했다. 맥베스. 그는 야욕 앞에서 잔인하고 처참히 비윤리적으로 전락한 인간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배신과 죽음,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인간을 얼마나 무섭게 변화 시키느냐 이다. 그렇다면 [적도아래의 맥베스]는 얼마나 맥베스 원작과 닮아 있는가. 그 닮은 점을 찾아내는데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포로수용소의 감시원이 된 그들과 어떤 점이 닮고 비교되는 지 깨닫기 쉽지 않았다. 이내 찾아낸 하나의 공통점은 맥베스는 기다리면 왕이 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야욕 때문에 현재 왕을 죽이고 왕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이고 형무소의 전범이 된 그들은 포로감시원 시험, 독립운동가가 되는 것, 포로들 때리지 않는 길들을 버리고 노구치부대 훈련을 견디고 포로수용소의 감시원이 되는 길이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의 선택으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점으로 싱가포르 형무소에서 전범이 된 그들을 맥베스로 본다는 것은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답답한 전개 였다.
하지만 이 연극은 우리 젊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가르치려했다. 그리고 그 가르치고자한 작가의 의도는 깊이 와 닿았다. 그렇다면 [적도아래의 맥베스] 이 연극이 관객에게 말하고자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선 이 작품은 단지 ‘한국인들이 조국은 해방 되었는데도 왜 일본인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을 받는 가.’ 라는 절규와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서의 죽음은 비극적인 전쟁속의 한국인들의 최후이다.’ 라고만 감상하는 것은 연극의 단면만 본 연극 평이 아닐까 싶다. 분명히 이 연극은 우리에게 전쟁의 비극 속에서 전범이 되어버린 한국인을 전쟁 속의 피해자로 보면서 연민의 눈길과 그 상처를 보듬어 달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포로수용소의 감시원이 되는 길 말고도 다른 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으로 그들은 수용소의 감시원이 되었고 감시원이 된 그들은 포로를 때린 가해자가 되었다. 이 연극은 그 변하지 않는 책임을 냉혹하게 죄수들에게 묻고 있다. 또 이것을 확대해보면 역사의 비극인 전쟁 속에서 한국인이 꼭두각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힘없는 한국인들은 일본이 만들어놓은 비극 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징집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포로를 대하였고 그들을 대신하여 형무소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가혹했던 역사 그 속에서 우린 한낱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적도아래에서 뜨겁게 타들어가던 한국인들의 비극. 우리는 그 시절 적도처럼 뜨거웠던 우리의 역사를 가슴속에 뜨겁게 간직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