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적도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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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6
조회 1762
지난 14일에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적도아래의 맥베스>는 일본의 식민지 당시 강제 징용되어 뜻하지 않게 전범이 되어버린 조선인들의 비극을 담고 있다. 사실 얼핏 보면 조선인 전범들의 비극적 이야기와 적도아래의 맥베스라는 제목의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 연극의 배경이 되는 곳은 적도아래에 위치한 싱가포르 강제수용소로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맥베스를 이들에게 비유하여 제목을 붙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전범 경력을 가지고 있는 김춘길이라는 노인이 등장한다. 김춘길은 과거 자신이 전범이었던 시간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그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서술자 역할을 한다. 김춘길은 조선인이지만 일본의 세계대전 패배 후 일본의 밑에서 일했고 포로에게 학대를 했다는 이유로 강제수용된다. 하지만 김춘길을 비롯한 대부분의 수용자는 자신이 원해서 학대를 했던 것도 아니고 타국에 온 것도 아니었다. 모두 일본 식민지하에 어쩔 수 없이 택한 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에 대한 비극성을 이번 연극에서는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김춘길에 의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될 때 무대에서는 오버랩 효과처럼 그 당시 실제 전범들의 사진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실제 사진을 보여줌으로서 우리는 연극이 실제상황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게다가 이 사진들이 순차적으로 보여질 때에는 어두운 느낌의 음향효과가 같이 가미되는데 이것은 연극 중간중간 이제까지 본 부분을 정리하고 또 다음부분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또한 연극무대는 하얀 천막을 기준으로 하여, 기찻길을 배경으로 했을 경우에는 현재를, 천막이 걷히고 강제수용소가 보여졌을 경우는 과거상황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연극을 보면서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며 볼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공화국에 살아가고 있다. 국가가 없는 국민, 부모가 없는 자식이 있을 수 없듯이 우리는 국가와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고 또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우리는 국가가 없는 백성이 되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부모와 형제를 잃어야 했다. 사실 일제강점기 시기에 많은 친일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 다루고 있는 전범들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조국에서는 친일파라는 누명을 입고 타국에서는 포로들을 학대한 전범이라는 누명을 입었다. 어느 쪽에서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들은 원해서 징병을 당한 것도 포로 감시원이 된 것도 아니었다. 정말 불가피한 사정으로 포로감시원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내 자신에게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이 연극을 보기 전까지는 일제강점기 시기라고 하면 단순히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그리고 조선인과 일본인, 이렇게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만 생각했다. 나는 전범이라는 누명을 쓴 사람들이 있었는지 또 그런 일이 있었는지 마저도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광복이 된 지 65년이 된 지금 우리는 너무나 달라지고 새로워진 자유민주주의 이념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광복이 되어서도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국가와 민족에게 외면받은 그들의 삶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21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연극은 이러한 점을 우리에게 시사해주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역사의 흐름속에서 우리의 조상 중 일부는 전범이라는 오해와 거짓에 억울하게 묻혀졌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이 연극을 보며 느낀 또 하나는 죽음을 앞두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항상 침체되어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앞이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 속에서 늘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그것은 그들이 그 상황 속에서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빛인 것이다. 인간에게 있는 본질성, 삶의 의지를 이 연극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강제수용소에 등장하는 두 명의 일본인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일본은 분명 우리에게 저질러서는 안 되는 많은 악행들을 일제강점기 시기에 저질렀고 또 그 댓가를 온전히 치루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 역시 전쟁의 피해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든다. 전쟁이라는 피폐함 속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뼛속까지 악한 사람은 없다. 연극에 등장하는 일본장군이었던 사람(야마가타 타케오)은 과거 나쁜 행실들을 달고 살았지만 그 감옥에 갇혀서는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가 일본 제국주의 시절 태어나지 않았고 그러한 이념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한없이 나약하고 여릴 수 있지만 그 하나하나의 삶이 모여서 커다란 역사가 되는 것이듯,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전범들의 억울한 삶을 알게 되고 느낄 수 있는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