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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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5
조회 1795
'명동 예술 극장'에서 공연 중인 <적도아래의 맥베스> 는 태평양 전쟁 후 오명을 쓰고 전범이 된 자들의 수용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범으로 몰린 그들은 같은 동포로부터는 친일 누명을 쓰고 비난을 받고, 일본으로부터는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당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우리의 무관심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되어 온 자들이다. 살생을 집행 하며 전쟁을 발발시킨 사람들은 빠져나간 채, 남겨진 죄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일 뿐이었다. 이 공연은 그 때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재조명 하고 있다.
한 일본 PD는 포로수용소의 한국인 감시원이던 춘길에게 과거 수용소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사용할 것이라며 묻는다. 그가 물어보는 내용은 춘길이 폭력을 사용했느냐 뿐. 그의 비서 요시에는 촬영을 만류하지만 춘길은 사형당한 동료들의 아픔을 대신 알리기 위해 촬영에 응하기로 한다.
춘길은 전범으로 잡혀 서로가 언제 형 집행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들은 어머니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맥베스>를 연습하기도 한다. 이 수용소에는 춘길은 포로감시원 시절에 있던 일본인 야마가타와 함께 수용되어 마음속에 증오와 갈등이 교차하기도 한다. 극 중 춘길이 2번 사형선고를 받고 2번 감형이 되며 극의 갈등이 진행된다. 극 중간 중간에는 다큐멘터리 촬영 현장이 연결되면서 관객이 더 극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연극이라는 것은 좁은 장소, 제한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무대 가운데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여 영상을 보여주고, 열대성 기후에서의 수용소 상황을 드러내기 위해 연기자들의 빈번한 수도시설 사용을 나타내주었다. 또한, '철크덕' 하는 철문을 여닫는 음향효과, 열린 문틈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으로 수용소의 육중함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덧붙여 배우들 각각의 연기 흡입력은 극에 흥미를 더해주었다. 특히 '남성'이 살인선고를 받고 통곡할 때의 모습과 죽기 전 날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절로났다.
'10년, 20년, 50년 후에라도 내가 쓴 이 편지를 누군가가 읽고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견디기 힘든 이 고통을 이해해 주는 그런 날이 온다면...' 이 말을 하는 배우의 표정. 그리고 이 한마디에 담긴 모든 것들이 극장을 나서는 동안에도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므로 이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의 편지를 읽고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그게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 연극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억울하게 수용되어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인 진실을 암묵적으로 용인했으며 치욕스러운 역사이기 때문에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려 했으며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역사를 우리 국민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외면한다면 억울히 죽음을 맞은 사람들에게 너무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이 연극을 통해서 나처럼 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