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 세상에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 <적도 아래의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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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1
조회 2120
2010. 10. 06(수) 19:30
명동 예술 극장
재일교포 극작가이신 정의신작가님의 작품에, 연기력이 기가믹힌다고 소문난 극단 미추에서 만든 이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1940년대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한국인이지만 일본군의 군무원으로 징용되어, 포로를 관리하는 감시원의 이야기로 그 당시 어쩔 수 없이 피해자가 되었던, 시대가 남긴 한국인 희생자들의 이야기이다. 연극은 춘길이라는 노인으로 시작해서 1947년 싱가포르 형무소의 기억과 그 형무소시절을 회상해주는 매개체인 다큐멘터리로 시작한다.
무대는 죽음의 철도라 불리는 태연철도를 보여주는 스크린과, 싱가포르 형무소를 보여주는 스크린 뒤의 무대로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란 이 간단한 구성을 누구도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을 만큼 굉장했다.
춘길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 음향보조, 돈 때문인지 스폰서 때문인지 전화 받기 바쁜 연출자, 돈이라면 그저 사족을 못 쓰는 대머리 카메라맨, 그리고 사장님의 보디가드 요짱 등등... 연극의 전반적인 내용에 있어서 굉장히 비중 있는 케릭터는 아니었지만, 연기에 있어서 물 흐르는 듯한 연기를 보여주어 ‘연극이라는게 비싸서 영화처럼 자주 본적은 없지만, 이런게 문화생활이라고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해주는 좋은 연기력이었다. 조연의 연기에 그렇게 느꼈으니 주연의 연기에 어떻게 느꼈겠는가? 이야기의 주인공인 젊은 춘길과 쿠로다 아저씨, 울보 이문평, 야마가타, 그리고 박남성.. 이들 모두 정말 훌륭한 연기에 마지막 인사 때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았다. 그중 네는 박남성의 연기에 더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여태까지 들을 수 없었던 밀양 아리랑과 경기 아리랑, 그리고 “살고 싶다”, “1번 기차 출발”, 쿠로다아저씨의 고향의 아버지 대신 안아주는 장면에서 평소에 눈물 없는 나였지만,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무언가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전범으로 몰린 그들이 같은 동포인 한국 사람들에 눈에는 대일협력자의 일본앞잡이가 되어 비난을 받고, 일본인으로써는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버림받는 이중피해자인데도 누구하나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고, 사과의 말도 못 받는 시한부 현실... 연극 내내 폐쇄공포증처럼 다가오는 감옥의 철장과, 음향효과로만 나오는 큰 철문을 닫는 소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에 비스킷 2장으로 견디는 하루... 연극에 빠져 나를 극중 인물로 대입해 보았는데, 답답해서 숨이 조여 오는 느낌에 정말 견딜 수 가 없었다.
사실 이 연극자체의 무거움에 있어서 무엇에 주목해야 하냐고 이야기를 감히 할 수 없겠지만, 한 가지 이야기를 한다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별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런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관심으로 인해 방치되었던 우리 현실, 결국은 자국민이 자국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이해해주고, 기억해주고, 전해주어야 하는데 우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라고 이야기 한 사람이 영국 역사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토인비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명언처럼 이 안타까운 상황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치욕스러웠던 역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꼭 기억하고 있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첫 리뷰라서 두서없이 썼지만, 예쁘게 봐주셨으면 더 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이 리뷰나 연극을 보고 누군가가 이해해주고, 기억해준다면, 극중 그토록 누군가가 알아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던 (故)이문평씨는 마음 편히 잠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