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운명, 그 비극 속에 떠도는 영혼의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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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0
조회 2409
운명, 그 비극 속에 떠도는 영혼의 불빛
극단 미추와 명동예술극장이 10월 2일부터 10월 14일 까지 "적도아래의 맥베스" 공연을 진행 중이다. 연출가는 손진책, 작가는 재일교포 출신인 정의신이며 제목에서도 느껴지다시피 맥베스의 운명적인 비극과 극에 나오는 포로수용소의 감시원들과의 운명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배경은 1940년대 태평양 전쟁이고 그곳에서 일본의 군무원으로 징용되어 포로들을 감시하고 관리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연극은 재일교포 노인인 춘길의 과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죽음의 철로라고 불린 태국의 철도를 배경으로 춘길의 인터뷰로 진행이 된다. 춘길은 일본군에 징집되어 수용소 감시원으로 있었는데 일본이 전쟁에 폐하면서 싱가포르의 형무소로 보내져서 또 다른 사람들과 사형선고를 기다리다가 그 중 유일하게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한국인 전병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진실을 세상에 알려서 어떠한 한을 풀어주기 위함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 회상장면이 나오면서 형무소에 갇혀 자신들의 운명을 기다리는 군무원들의 대화가 진행된다.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다섯 명은 각자 다른 태도로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중 한국인 네 명은 자신들의 조국이 해방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사람으로써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한다.
재일교포이며 극작가인 정의신은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안아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예술적인 공감으로 승화하여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는 사회적 상황이 한국인 군속들을 전법으로 내몰리게 만들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들을 주변의 유혹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 '맥베스'에 비교한다. 그러나 이러한 극중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파국을 그들이 자초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남기면서 최종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그리고 손진책 연출가 역시 "연극을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사회에 제언을 하기 위해 연극을 택했다"고 말하며 정의신 작가와 긴밀히 논의하며 작품의 연출 구도를 잡아나갔다고 한다.
무대 중앙에 철도가 놓여있고 배경으로 열대 숲을 보이게 하면서 실제로 뜨거운 열대지방인 태국을 연상케 하며 스태프들의 의상과 연기가 그 뜨거움을 더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주인공 춘길이 회상을 하면서 장면이 형무소로 바뀔 때에는 미스테리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의 슬픈 멜로디가 들려오며 동시에 실제 형무소에 있던 군무원들의 사진이 나오면서 과거와 현재를 매끄럽게 연결시킨다. 형무소의 무대는 칙칙한 색과 함께 밝은 조명 빛이 어우러져 지옥 같이 뜨거우면서 우울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뒤에는 사형집행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놓여 있어 비극의 결말이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명의 군무원의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 밤 모두 노래를 부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희화 시킨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한이 맺힌 듯이 목청껏 이 노래를 부를 때에는 관객들의 마음을 쓰라리게 만들어 전율과 눈물을 자아낸다. 그리고 사형을 받게 되는 한국인 한명은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는데 "머리가 핑~ 도네."라고 말하며 아직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전날 가족에게 온 반가운 편지가 죽음의 예고였던 것이다. 슬픔과 고통의 연속 속에서 한 줄기의 희망은 희망이 아닌 예고였던 것이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목욕을 마치고 죽음을 앞둔 장면에서는 침묵이 흐르며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만 날 뿐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비극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극은 다시 춘길의 현재로 돌아와 열대 숲의 반딧불을 보여주면서 춘길은 그것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군사람들의 영혼이라고 말한다.
적도아래의 맥베스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딛고 이겨낸 한국인 속에 또 다른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들의 비극을 실감나는 연기와 공감의 전율을 이끌어 내는 연출이 조화를 이루는 연극이다. 극중 실제 맥베스의 대사를 인용하여 내용 전개의 이해를 도왔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실감케 했다. 특히,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전달하기 위하여 다큐멘터리 제작과 인터뷰로 연극을 시작하여 현재와 과거로의 회상을 매끄럽게 표현한 것이 참신하다. 또한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느낄 수 없는 가슴 아픈 현실을 배우들이 감정적으로 잘 표현해내어 관객들 또한 동화되어서 마치 과거, 동시대에 놓인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비극적이고 한스러운 죽음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영혼들을 반딧불로 승화하여 우리의 아픈 과거는 지금도 잊혀질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2010. 10. 10 작성자 : 박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