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단조로운 구성, 하지만 현재와 과거의 연결로 포로감시원들의 억울한 울분을 세상에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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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08
조회 2338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누군가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은 정말 괴롭다. 게다가 그 일이 잘못됐다고 해서 그 죄를 다 떠안기까지 한다면 그 억울함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잡아둔 포로들을 감시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 곳에 동원된 사람들이 바로 조선인들이자 그 당시 일본에 소속되었던 포로감시원들이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이들의 비참함과 억울함을 연극으로 승화시켰다. 조선인이지만 조선사람에게는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일본소속이지만 일본사람들에게도 외면당하고 포로를 감시하면서 상관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없는 행동이었지만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면서 사형날짜만을 기다리는 포로감시원들의 시한부 인생을 감성적이면서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먼저 무대는 많은 것을 말하려고 하는 듯 보였다. 우선 철길, 철창, 사형대등등 대부분 무대장치가 철로 되어있어서 전쟁의 차가움을 표현했고, 그와는 반대로 사람의 따뜻한 가슴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위로해주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대 맨 뒤에 있는 스크린과 무대 중간에 오르고 내려오는 스크린은 모두 장면전환이나 막을 내릴 때 사용된다. 무대 맨 뒤의 스크린은 장면이 전환될 때 실제 포로감시원들의 사진을 비춰주면서 극의 사실감을 더해주고 있다. 다음으로 간수들이 들어왔다 나갈 때 나는 철창소리는 사형수들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모습을 묘사해주는 듯 보였다. 장면이 바뀔 때 나오는 피아노소리는 상황에 따라서 긴박하게 빠른 장단으로 나오기도 하고 사형수들의 마음을 표현해주듯 무거운 소리도 나왔다. 이와 같이 무대를 이용해서 상황이나 심정을 섬세하게 나타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좀 더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면서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인 방법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배우들의 연기였다. 서상원씨(김춘길역)의 감쪽같은 이중역할, 정나진씨(박남성역)의 실감나는 절규연기, 황태인(이문평역)씨의 눈물연기는 극의 작품성을 높여주는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황태인씨는 제일 막내 역할을 연기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문평이라는 역이 처음에는 어리바리하다가 점차 어른스러워지는데 그러한 심리 변화를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죽고 나야...... 편해질까요?”라는 대사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시고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구성면에서는 다른 연극과는 조금 달랐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기법을 사용하면서 관객들에게 현재와의 연결성을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현재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상황과 과거에 포로감시원들의 수감생활을 분할해서 교대로 보여준다. 현재에 나오는 주인공 할아버지가 과연 과거극에서 어떤 인물인지 맞춰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면 재미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과거와 현재가 교대로 나오는것 뿐이어서 너무나 단조로웠다는 평가는 피할 수가 없다. 현재 상황 중인데도 뒤에 철창이 그대로 비치 되어 있는것은 어떤 의도가 있다기 보다는 관객들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8세이상 관람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흡연장면이 나왔고 심지어는 욕도 여과없이 나와서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마지막부분에서는 사형을 앞두고 굉장히 슬픈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농담을 하면서 극의 흐름을 끊어 놓았다. 물론 반어적 표현으로 슬픔이 극에 달하면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지만 여동생의 외모를 가지고 ‘못생긴거 다 알아요’식의 발언은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라는 비난과 함께 흐름을 끊어놓는, 오히려 작품성을 반감시키는 역할을 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아쉬운 점을 빼면 완벽하다고까지 표현하고 싶은 정도의 그런 매력을 가진 작품이고, 눈물이 메말라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빠져들어 볼만한 진한 감동을 느껴볼 수 있다.
그냥 연극 한편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또 다시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말기를 바라는 의도와 더불어 관객들에게 무엇인가를 던져주고 있다. 현실세계에서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유혈사태만 안 일어날 뿐이지 오히려 더 잔인할 수도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약육강식의 전쟁이 그것 이다. 게다가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희생당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을 방치해두는 사회를 보면 인간과 사회의 갈등에서 언제나 약자인 개인이 패자가 된다. 따라서 이런 사회 구조를 비판하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