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기획-제4회 중국희곡 낭독공연] 장 공의 체면> '장 공의 체면' 관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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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하
등록일 2021.05.30
조회 5870
<장 공의 체면>은 국공합작과 문화대혁명이라는 두 개의 굵직한 사건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속도감 있게 극을 전개한다. 두 사건 사이의 긴 공백을 메꾸는 것은 다름아닌 남경대학교 중문과 교수 하소산, 시임도, 변종주가 펼치는 별 거 아닌 말싸움이다. 그들의 말싸움 주제는 장제스가 자신들의 대학에 총장으로 부임했을 당시, 그의 저녁 초청에 응했는가, 아니 응했는가이다. 셋 다 반동분자로 낙인찍힌 오늘날, 저녁 초청 수락 여부는 그다지 의미를 갖지 않지만 대게 우리 인간 족속이 그러하듯 그들도 별 의미 없는 일에 생을 허비한다. 이때 세 인물들의 성격이 도드라지는데 명분, 자유, 실리 중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장제스의 저녁 초청에 응할지, 그러니까 장 공의 체면을 세워줄지 말지에 관해 제각기 다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극을 끝까지 집중해서 관람한 이들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사실 이들에게 있어 장 공의 체면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신들의 체면이 최우선이고, 장 공의 체면은 표면에 내세운 빈 말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들은 극 중 서로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끝끝내 모두가 장제스의 저녁 초청에 응한 이유도 각자가 지향하는 가치에 그것이 부합하기 때문(어느 누구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이다.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비단 이 이야기가 중국만의 것이 아님을 퍼뜩 깨닫고는 냉소를 흘리게 된다. 당장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떠올려 보라. 국회선진화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정말 우리 국회는 선진화 되었는가? 각 당이 십시일반 모여 서로의 의견에 취할 건 취하고, 비판할 건 비판하는 진정한 협치를 이룬 적이 있는가? 그들이 자주 내세우는 "민생"이란 말과 "장 공의 체면"이란 말이 무엇이 다를까. 소통 부재의 답답한 정치 현실이 이 연극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한 번쯤 볼 만한 좋은 블랙코미디극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중국의 근현대사를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어렵고 낯선 공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내 옆에 있던 어떤 이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약간 지루한 듯 느껴지는 극의 초입만 버티면 세 인물의 말싸움 난장판을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다 안타까웠다. 이 극은 조금 진입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만약 앞으로 쇼케이스를 진행한다면 조금 더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극적 상황을 바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도 중국 못지않게 격정의 근현대사를 지닌 나라이니만큼 국공합작과 문화대혁명을 대체할 사건은 금방 찾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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