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공감: 희곡 낭독회] 금붕어 휠체어> '금붕어 휠체어' 관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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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하
등록일 2021.05.06
조회 3080
<금붕어 휠체어>는 국립극단 창작공감 프로그램이 발굴해낸 첫 작품이다.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 희곡우체통 제도와 창작공감 제도 사이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는 못 했던 터라, 이번 낭독회로 그 변화를 가늠해 보기로 했다. 10명 내외의 관객이 낭독회에 초대(티켓팅 X, 구글 폼으로 신청받은 뒤 자체 선정)되었는데,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창작공감 낭독회가 희곡우체통 낭독회와 가장 구분되는 지점은 분위기에 있다. 낭독회 장소를 극장에서 연습실로 바꾼 만큼, 전체적으로 편안해지고 한결 다정해졌다. 배우분들의 연기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몰입 또한 잘 됐다. 극단 측에서 다과까지 준비한 걸 보면 배우와 작가, 관객이 모여 한 작품을 두고 벌이는 난장을 기획했던 것 같은데, 이처럼 제4의 벽을 허무는 국립극단의 시도가 앞으로도 쭉 이어졌으면 한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은 채 연극에 대해 마음껏 논하는 자리가 성사되기를 기대한다.
문보령 작가의 <금붕어 휠체어>는 매우 시의적절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 그 결핍을 SNS라는 얄팍한/인스턴트적인 관계망을 통해 해소하려고 하지만 결국 가짜 인생만 생살할 뿐인 비극. 왁자지껄 웃고 나뒹굴며 즐거워하는 사진 뒤에는 슬픔으로 얼룩진 현실이 있다. 문보령은 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부분을 겨냥한다. 송지와 이달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 연민을 통해서. 송지, 이달이 공통적으로 겪는 가족 불화와 그들의 곁을 맴도는 호연과 성현이라는 인물을 이용해서 말이다. 극에 등장하는 송지, 이달, 호연, 성현 그리고 송지와 이달의 부모 모두 사회라는 망망대해에 허우적대는 일개 금붕어에 불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각 인물은 자기변호만 일삼을 뿐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 몰이해가 극의 핵심이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빠의 뒤치다꺼리를 거부하는 송지에게 호연이 한 "너만 버림 받았느냐"라는 대사가 유독 가슴에 박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 졸업 작품으로 선보였던 연극답게, 바로 쇼케이스로 넘어가도 무리 없겠다 싶을 정도로 작가의 무대 구상이 확고했다. 데칼코마니처럼 상수와 하수를 포개 놓고, 그 무대의 무게 중심을 수조로 잡는 설정. 바다와 인터넷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우울을 상징하는 푸른 조명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디테일. 마지막에 호연에게 던진 말인지, 관객들에게 던진 말인지 헷갈리는 매우 의미심장한 대사("나는 오늘 언니를 죽였다")까지. 연극적인 메타포가 곳곳에 깔려 있어, 그 의미를 향유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만 극의 전개에 있어 몇몇 비약이 보여 아쉬웠다. 예컨대 이달이 자신만의 언어를 찾는 과정을 조금이라도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극 후반 갑자기 등장한 호연의 남자친구는 누구인가? 이달과 성현의 관계가 틀어진 후, 성현은 어떻게 되었나? 이달의 등단 소식을 접하고 당혹스러워했던 송지처럼 관객으로서 약간 어안이 벙벙한 지점이 몇몇 있었다. 이는 장차 <금붕어 휠체어>가 보완해 나가야 할 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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