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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차드 3세 理査三世> 중국식으로 녹여낸 리차드 3세
  • 작성자 이*준

    등록일 2016.04.07

    조회 3388

앞서 먼저 전체적인 평가를 하자면 중국의 전통극과 문화를 셰익스피어에 아주 잘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극에 쓰인 타이포그라피 아트는 꽤 훌륭한데, 영어를 조합하여 언뜻 보면 한자처럼 보이지만 풀어보면 영어인 표현방식이 너무나도 신선했다. 영단어를 뭉뚱그러뜨려 한글자에 의미를 가진 표의문자로 만든것은 상당히 신선했다. 연극 시작전에 걸려있는 패널의 타이포그라피는 언뜻 한자이지만 뜯어보면 Richard를 한자처럼 보이게 조합한 것이다.

이 타이포그라피는 중국 아티스트 Xu Bing의 작품으로, 어찌보면 왕시아오잉 연출의 기법과 의도를 담았다고 볼수 있다. 왕시아오잉은 중국의 색으로 리처드 3세를 그려내고자 하였고, 이 의도는 영어를 한자스타일로 담아낸 이 타이포그래피의 구조와 동일하다. 이 타이포그라피는 배경 및 소품들에서도 쓰이고 있으며, 동서양이 어우러져있는 이 극 안에서 통일성을 느끼게 해주는데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왕시아오잉 연출은 중국의 고대 의복/예술양식을 가릴 것 없이 이것저것가져와 소품과 의상으로 썼는데도 전혀 위화감을 느낄수가 없었다. 여러면에서 왕시아오잉의 연출은 서양과 동양을 하나로 녹여내려는 시도를 훌륭하게 성공 시켰다. 특히 중국의 경극 스타일로 연출해나가면서도, 마녀나 유령이 가면을 쓰는 방법은 그리스 연극에서 차용해온다. 

 

극은 전부 중국어로 공연되었는데, 중국어로 셰익스피어를 공연하는 점에서는 여타 언어보다 장점이 하나 있던걸로 보인다. 중국어는 성조가 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대사에 적용했던 약강오보격을 그대로 가져올수 있다는 것이다. 리처드 3세의 마지막 대사인 A horse! A horse! My kingdom for a horse! (말 한필! 말 한필! 말 한필이 있다면 내 왕국이랑 바꾸어도 좋다!) 는 一匹馬!一匹馬!我用我的王國換一匹馬!로 옮겨졌는데, 리처드 3세의 비통함과 최후의 발악이자 용맹이 섞인 이 대사가  쓰였던 이 장면에서 중국어로 셰익스피어의 극을 올릴때의 장점을 엿볼수 있었다. 약강오보격을 죽이지도 않고 원대사의 느낌을 아주 잘 살려냈었다. 장동규 배우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말하길, 약강오보격을 가져와서 운율을 살리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물론 한국어로도 약강오보격을 가져올라 치면 못가져 올것이 아니지만 성조가 언어에 녹아있는 중국어는 이점에서 아주 큰 잇점으로 작용할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극의 사용은 꽤 재밌었다. 앤의 가녀림은 경극 특유의 하이톤 여성목소리로 인해, 톤이 낮은 편에 속하는 마가렛과 엘리자베스 왕비와 대비되어서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컸다. 경극식의 발성으로 리처드 3세와 앤의 연애장면은 패왕별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에드워드 황태자또한 경극식으로 연기하였는데, 등장하면서 말을 타고 달리고 노는 것을 표현하는 무용과 경극식으로 풀어나간 연기는, 짤막하게 등장하는 에드워드 황태자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기운차고 당당하고 용기있는 황태자임을 보여주는데 충분했다. 그렇게 에드워드 황태자가 "사랑받아 마땅하고 차기 왕이되어 마땅한 사람"임을 잘 연출해주어서, 스테이지 위에서 죽진 않았지만 에드워드 황태자가 죽었다는 장면에서 관객들을 크나큰 비애와 동정을 느꼈을 것이다.

 

제일 재밌던 점은, 원작에서는 리처드 3세의 I am determined to prove a villain (내가 악인임을 증명해보이겠다)라는 명대사가 들어있는 1막 1장의 독백을 상당부분 지우고 에드워드 4세의 즉위하면서 평화와 공존을 선포하다가 중병으로 쓰러지는 장면에서부터 리처드 3세의 독백(많이 편집되어서)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왕시아오잉 연출은 극 자체를 선과 악이 아닌 음과 양으로서, 만물의 조화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었다. 위의 대사는 리처드 3세를 악인으로 못박을수도 있는 대사이기도 하며, 이미 리처드 3세의 악독함은 표정연기나 뒤틀린 걸음걸이, 사악한 웃음등으로 충분히 나오기에 딱히 없어도 될것이라 생각하여 넣었다고 한다. 이는 도르셋 후작이 잘려나간 것이나, 초반의 리처드 3세가 세 마녀를 만나는 듯한 연출도 같은 의도로 잘라내고 삽입된듯 하다. 특히 리처드 3세가 맥베스와 비슷한 면모를 보이는 점에서 3 마녀가 등장하여 리처드 3세에 대한 예언을 하는 장면은 아주 적절했다고 생각된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물어보지 못해 아쉬웠던 것은, 리차드 3세가 중국인들에겐 어찌 보이는 지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추측이지만 딱히 나쁜 이미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우나 유방, 그리고 조조같은 중국사의 영웅들은 리처드 3세와 공통된 점을 가지고 있지만, 영웅으로서 존경받을지 언정 악인이라고 비난받지는 않는다. 오히려 장미전쟁이후 난세를 올라타려 했지만 실패한 간웅정도가 아닐까.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중국식 연극을, 그것도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을 중국식으로 연출하고 풀어나간 명연극을 보게 된 것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긴다. 이러한 명연극을 국내로 초청한 명동예술극장과 국립극단의 현명함에 큰 찬사를 보낸다. 국립극단은 앞으로도 계속 한중일 국립국단의 극을 서로 교류로 가져올것이라고 하였는데, 앞으로도 어떤 극을 초청해올지 아주아주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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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3세 理査三世

- 2016.04.01 ~ 2016.04.03

- 평일 19:30, 주말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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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13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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