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와 아들> 따뜻하게 감싸안는 체홉식 가족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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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별
등록일 2015.11.28
조회 3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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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원작소설을 아일랜드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엘이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체홉이 투르게네프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프리엘이 체홉을 좋아하는 것도 한몫해서, 각색한 후에는 체홉극 같은 느낌이 굉장히 강해졌습니다. 원작소설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계급사회가 아직 남아있는 기대를 배경으로 세대간의 갈등을 담아낸 작품이라면, 희곡은 좀 더 따뜻하고 서정적이며 체홉식 사랑과 유머를 담고 있는 작품이에요. 덕분에 원작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꽤나 실망하시기도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원작보다는 훨씬 가볍고, 세대간의 이념갈등보다는 엇갈린 사랑이야기가 더 주가 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념이나 세대갈등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면, 아버지 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남명렬 배우님이 맡으신 빠벨이라는 인물이 될 겁니다. 원칙과 예의와 계급을 중시하고 기존 질서의 가치와 예술을 옹호하는 신사로서, 아르까디의 큰아버지죠. 이 대척점에 있는 아들 세대의 대표는 윤정섭 배우님이 맡으신 바자로프일 겁니다.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니힐리스트로서, 기존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그 가운데서 좋은 가문의 넉넉한 경제력을 가진 지주로서 자라나 대학에서 니힐리스트가 된 아르까디가 있지요. 이명행 배우가 맡은 이 청년은 양쪽 모두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양쪽 모두에 온전히 속해 있지 못한 존재입니다. 아르까디가 바자로프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각 장마다 논쟁이 벌어지고 갑론을박이 오가지만 이 극은 진지한 세대담론극으로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극의 무게중심은 결국 이러한 철학을 가진 인물들이 자신의 신념과는 배치되는 사랑에 빠지고, 그래서 고통받고 실패하는 과정에 더 맞춰져 있거든요. 계급과 도덕과 예의를 중시하는 빠벨은 "동생의 아내"가 될 "하녀"를 남몰래 흠모합니다. 계급을 부정하고 사랑을 경멸하는 바자로프는 나이많은 "부자"와 결혼해 재산을 상속받은 "미망인" 안나에게 첫눈에 반하죠. 둘 다 자신의 신념 안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린 거죠.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마음을 소화시키려고 애씁니다. 파들파들 떨면서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직설적으로 고백하는 바자로프와 달리, 늘기회를 엿보다 한두마디 섞는 것으로 끝냈던 빠벨은 마지막에 자기 사랑의 징표인 반지를 선물로 주고 곁을 떠나는 식이에요.
개인적으로 극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통틀어서, 제가 가장 사랑하고 애정했던 인물은 아르까디의 아버지이자 빠벨의 동생인 니꼴라이입니다. 유연수 배우님이 맡으신 이 인물은 어릴 적의 사고로 다리를 저는 장애가 있지만, 정말로 매력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처음에는 좀 경박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자기 집에서 일하는 딸뻘의 하녀에게 손을 대어 아이를 낳게 한 호색한이라고 생각해서 부정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페니치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데다 바자로프의 무례함을 웃어넘기거나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바로 인정하고 안나의 도움을 청하는 등 가장 열린 형태의 인간애를 보여줍니다. 특히 빠벨의 감정에 관한 모든 것을 알면서도 조용히 포용한다는 점에서 그렇죠. 니꼴라이는 이미 빠벨과 바자로프가 왜 결투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빠벨이 준 반지의 로맨틱한 사연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빠벨이 신사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끝내 자신도 모르는 척 덮어둡니다. 저는 이것이 니꼴라이가 형을 페니치카만큼이나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나 소중하기에,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거죠.
<아버지와 아들>은 당연하게도 문학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납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은유법인데, A에 대해서 말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B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장면이 많아요.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저 A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게 B에 관한 것이라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식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니꼴라이가 빠벨이 왜 바자로프와 결투했는지 거짓말을 하고 나서 보인 반응입니다. 니콜라이는 뾰뜨르를 부르지만 나타나지 않자 갑자기 흥분해서 마구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전까지는 허허 웃어넘겼던 일인데도 "그앤 니 말 못 들었어"하는 빠벨의 코앞까지 손가락질을 해대면서 "그건 거짓말이야!! 형도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잖아!!"하고 외쳐요. 다들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말이죠. 오직 관객들만이 니꼴라이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한 거짓말이 뾰뜨르 얘기가 아니라 빠벨 이야기라는 것도요. 이런 식의 대화는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빠벨과 안나의 대화를 통해 한번 더 사용됩니다. "전염병은 어때요?"하는 빠벨의 질문에 안나는 "거의 잠잠해졌대요."하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빠벨이 묻죠. "그럼 이제 끝난 건가요?" 그리고 안나는 대답하죠. "거의... 아직은요..." 캬~ 우회적이면서도 상황을 잘 표현하지 않았나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전염병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이 들리겠지만, 사실 두 사람은 안나의 감정과 상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놓고, 직설적으로, 곧장 이야기하지 않고 각자 자신들의 감정을 갈무리하며 이야기하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이 외에도 올가 부인이 툭툭 내뱉는 블랙유머나, 두나샤의 장난기넘치는 묘사 같은 부분은 극의 매력을 더 높여줘요.
하지만 정말 시간가는 줄 몰랐던 1막에 비해 2막은 중간 이후부터 좀 지루해지는 감이 있습니다. 어떤 굉장히 큰 사건 이후에 갑자기 분위기가 급격히 다운되거든요. 바자로프의 아버지가 혼자 독백을 꽤 오래 하는데, 그 부분이 긴장감이 좀 떨어지고 재미가 없었어요. 오영수 배우님께서 연기를 정말 잘해주신 것과 별개로 말이죠. 그 장면은 사실 유머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고, 그래서는 안되는 장면이기 때문에.. 처음 볼 때는 그래도 굉장히 집중해서 잘 봤는데, 아무래도 몇 번 관람을 하면서는 2막 그 부분이 되면 집중도가 확 떨어져버리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좀 아쉬웠습니다.
시작 전에 15분 강의를 들었는데요, 사실 저는 이미 극을 관람한 상태에서 듣는 거여서 아무래도 더 잘 이해가 됐습니다. 하지만 몇몇 부분은 강의자 분께 동의하지 못하는 포인트들이 있었어요. 극을 본 저의 느낌과 전혀 달랐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원작소설 위주로 해설을 해주셔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예를 들어 빠벨 별명이 옷걸이인 이유를 "옷을 잘 입는 멋쟁이 신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시던데 극중에서 제가 받은 느낌은 그보다는 조롱과 비웃음에 가까웠거든요. 두냐사가 옷걸이라는 말을 하면서 흉내낸 태도는 결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어요. 마지막에 페니치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구요. 또, 마지막 파티 장면이 '희망이 사라진 불안하고 공허한 세계'라고 설명하셨는데, 그것 역시 다르게 느꼈습니다. 오히려 '그래도 여전히 삶은 계속된다'에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모두가 과장된 기쁨을 꾸며내는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은 있다는 거죠. 행복도.
170분의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식 이름들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밌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잘 봤던 연극이었습니다. 전 러시아 문학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싫어하는 편도 아닌데 극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원작소설과 각색한 희곡 모두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상당히 괜찮은 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