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동물원> 이토록 비극적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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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별
등록일 2014.08.29
조회 2404
아.. 정말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정말 마음이 힘든 작품이었어요.
사실 극적인 사건이나 굉장한 오해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독하리만큼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무대 위에 올려두죠.
배경이 1930년대 미국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보면서 누구나 자신을 톰에, 로라에, 아만다에 투영할 겁니다.
1930년대의 미국과 2010년대의 한국이 이토록 닮아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에요.
숨이 막힐 때마다 영화를 보러 가는 톰에게서
상황에 짓눌릴 때마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다니는 제가 보였습니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거죠, 아주 잠시라도..
그게 설령 환상이라도.. 환상일 걸 알고 있어도..
현실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죠.
숨이 턱턱 막히는데, 정말이지 답답해 죽을 것 같은데..
이렇게 살다 그냥 인생이 끝날 것 같아 두렵고..
하지만 탈출구가 안 보입니다.
네 명의 등장인물 중 어느 누구 하나 이해가 가지 않은 인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극이 진행되면 될수록
누가 더 이상적이고, 누가 더 현실적인지도 애매모호해집니다.
아만다가 가장 현실적일까요?
물론 그녀는 속물적이긴 하지만 과거의 영광 속에서 살고 있죠.
그러면서 로라는 절름발이가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라고 애써 항변하구요.
톰은 영화를 보고 시를 쓰면서 현실을 도피하는 몽상가처럼 보이지만
정작 로라 문제가 나오자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아만다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반면 학교를 그만두고 집 안에 틀어박힌 로라는 현실과 떨어져 보이지만
오히려 현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현실을 피해 자기만의 세계에 박힌 것 같기도 해요.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 짐마저도 결국 환상을 쫓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지 현실에 발맞춘 환상을 쫓고 있기에 본인 스스로조차 그걸 모르는 거죠.
마치 현대인들이 로또당첨을 꿈꾸듯이..
극이 끝나면 관객들은 꿈도 희망도 없이 멍하니 앉아있다가,
배우들이 내민 산산이 깨진 유리 조각같은 파편을 받아들고
또다시 누군가의 톰/로라/아만다/짐이 되기 위해 현실로 되돌아가겠죠..
하.. 정말...
이렇게 아무런 사건도, 사고도 없는데
보는 사람의 멘탈을 깨부시는 극도 없을 겁니다.
여건이 되신다면 한번쯤 보시기를 꼭!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