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을린 사랑> 일그러진 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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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수
등록일 2013.04.17
조회 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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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34년 만에 명동 한복판 공간에서 기적적으로 복원 개관된 이후 지난 3년간 명동예술극장의 기획 연극들을 늘 주시했었습니다. 부지런히 챙겨본건 아니지만 공연 기간과 무대 설치 기간 포함해 약 한달여 단위로 일정하게 끊어지며 정극만 올리는 명동예술극장 공연들에 대한 신뢰가 높았죠. 되도록이면 다 보고 싶었어요. 흘려보내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이곳 작품들에 대한 애정이 있었어요. 연극다운 연극을 보고 싶으면 명동예술극장 공연부터 찾았습니다. 그전엔 아르코 예술극장 공연이나 산울림 소극장 공연들을 알아보곤 했죠.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이나 정미소 공연들도 괜찮은게 있었지만 편차가 컸어요. 오프 대학로에서 실험적인 작품들이 자주 올려지긴 하는데 극장이 여간 불편해야죠. 상업적인 색체가 적으니 실험적이고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만큼이나 정돈되지 않은 느낌도 있고요. 정돈된 정극을 보고 싶지 시험 공연은 꺼려집니다.
명동예술극장 공연들은 연극 본연의 순수함을 유지하려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 일정 수준의 완성도는 보장합니다. 극장 운영도 훌륭하고요. 재단법인으로 운영되는 극장이니 그만큼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거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양질의 공연을 꾸준히 선보인다는것은 극장 관리를 잘 한다는 얘기에요. 운영체계 덕이라고 폄하시킬수많은 없는 부분이죠. 그래서 학생 단체 관람 단골 공연지가 됐습니다. 이곳에서 공연 볼 때마다 지루해서 몸을 배배 꼬는 학생 단체 관객을 못 본적이 없는것 같아요. 원가도 별로 비싸진 않지만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연보기에 상당히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기 때문에 과제 때문에 억지로 공연 보러 오는것에 대해 부담이 없습니다.
아마 교양과목이나 연극과 관련된 과에서 연극 감상문 과제같은걸 내줄 때 교수들이 특정 극장을 지목할거에요. 저도 학교 다닐 때 예술영화 감상문 과제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처음으로 필름포럼을 가봤어요. 티켓사본을 과제물 끝장에 붙이면 임무 완수였죠. 연극 감상문 과제도 하나 있었는데 학생들 지출, 그리고 그로 인한 불만표출을 염려한 담당 교수는 딴에는 생각한답시고 교내 아마추어 극단에서 하는 연극을 보고 과제를 제출하라고 했었어요. 아예 과제 자체가 연극을 보고 감상문을 쓰는게 아니라 교내 연극반 애들이 하는 연극을 보고 감상문을 쓰라는것이었는데 그 때는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 교내 아마추어 극단에서 하는 연극을 보고 감상문까지 써야 한다는게 자존심 상해서 도무지 내키지 않았죠.
그래서 저는 내 돈 주고 일반 공연장 가서 제대로 된 연극 보고 감상문 제출한다고 했어요. 초짜 애들 버벅되는거 보면서 스트레스 받기 싫다고 과제 언급하는 교수한테 수업 중에 대놓고 말했더니 자존심이 상한 교수는 강의가 끝난 후 따로 교수실로 불러서 차근차근 그 이유를 물어봤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어떤 연극을 보고 과제를 제출했는지는 기억이 안나요. 아마도 평상시 쓰던 후기를 정리해서 제출했었던것 같군요. 무대극을 접하는데 의의를 둔 과제였으니 그런 과제를 내 준 교수의 의도는 뭔지 알겠지만 애초부터 선택권을 차단한건 생각이 짧았던거죠.
지금도 이런 류의 과제를 수행해야 할 학생들이 많을텐데 돈 만원이 없어서 과제를 못하겠는 학생이 아니라면야 3D영화 관람료보다 싼 명동예술극장 공연을 학생 할인 받아 A석에서 만원 주고 보면 될겁니다. 교수들도 좋아하고 인접접근성도 용이하고 일정 수준은 보장해주니까요. 곱씹어 보면 수준보단 타고난 포장술에 녹아났던 적이 더 많았던것같지만요. 이것이 명동예술극장 연극들의 탄력받을 수 있는 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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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그을린 사랑]을 보면서 대체 이 못견디게 지루한 작품은 언제 끝내려고 이렇게 질질 끄는것일까, 하며 오만 잡생각으로 따분함을 이겨내려고 애를 써야 했습니다. 어찌나 지루하던지 밥먹고 바로 본게 아닌데도 식곤증같은 증상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명동예술극장 객석에서 200분 동안이나 잘근잘근 버티면서 든 생각은 명동예술극장이란 공간에 집중하여 맴돌았습니다. 나는 왜 이 황금같은 주말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이러고 있는가? 가만 생각해보니 지난 3년 동안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을 보면서 단 한번도 재미를 느낀적이 없다는걸 알았어요. 이걸 이제서야 깨닫다니 저는 그동안 명동예술극장이 주는 고급스러운 안락함과 순수 예술로 위장한 상업적 온기에 취했었나 봅니다.
명동예술극장 자체가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긴 하죠. 예술의 전당이나 LG아트센터 같은 극장이 주는 신뢰처럼 명동예술극장도 공간이 주는 위력을 무시할 수가 없는곳입니다. 극장은 극을 관람하는 장소이자 체험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극장 견학이 괜히 있는게 아니죠. 명동예술극장은 연극 관람의 체험을 극대화시켜주는 곳입니다. 국내에서 이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연극 공연장은 명동예술극장 밖에 없어요. 독보적이죠.
이곳 테두리를 두르고 올라가면 평범했던 작품도 특별한 예술적 감성을 부여 받습니다. 그리고 다행이도 꽤 괜찮은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죠. 그러나 딱딱해요. 지금까지 이곳에서 봤던 공연 중 [오이디푸스]정도를 제외하면 물흐르듯 유연하게 흘러갔던 작품은 없었던것같아요. 그런데도 기획력이 좋아서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면 그저 그랬죠. 취소한적도 많았군요. 분위기는 좋은데 재미가 떨어지고 과제물 제출에 대한 의무도 없다 보니 막상 관람일이 다가오면 귀찮아 집니다. 그동안은 그걸 연극에 대한 호감과 무관하게 나른한 몸상태 탓으로 돌리고 말았는데 돌이켜보니 명동예술극장 공연을 보는게 지쳐서 그랬던것도 같아요. [그을린 사랑]도 그랬어요. 이 연극은 꼭 명동예술극장이 아니더라도 보긴 봤을겁니다. 연기 잘 하는 배해선도 나오고 궁금했던 영화의 원작 희곡이었으니까요. 공연 소식이 올라왔을 때부터 기대를 했던 작품이에요.
[그을린 사랑]은 작년에 예술영화 관객 동원 신기록을 세우묘 국내에서 화제를 모았던 영화 덕분에 공연까지 성사된것같습니다. 드니 빌뇌브 연출의 동명 영화가 국내에 처음 공개된건 정식 극장 개본 전인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였는데 그때는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려진 연극과 동명의 제목은 아니었습니다. 원제인 incendies를 직역해서 [그을린]으로 소개됐다가 작년 이맘 때 정식으로 극장 개봉했을 때 뭐든 하나 덧붙이는걸 좋아하는 국내 수입사답게 [그을린]에서 [그을린 사랑]이 된거죠. [그을린]보단 [그을린 사랑]이란 제목이 더 낫습니다. 외우기도 쉽고요.
[그을린 사랑]은 작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예술영화 중 최다 관객을 동원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6만 8천명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걸로 집계됐습니다. 예술영화의 성공기준인 1만명 돌파의 일곱배 가까운 관객을 기록했으니 대단한 성과였죠. 작년에 [그을린 사랑]이 개봉관에 걸렸을 때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 영화를 보는 분위기여서 저도 봐야할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적극적으로 상영관을 찾아봤고 실제로 현장발권까지 마쳤는데 영화 보는 날 너무 피곤해서 관람 20분 전에 환불하고 말았죠. 서면CGV에서 그랬어요. 부산까지 가서 CGV무비꼴라쥬 관을 찾았는데 겸사겸사 일정이었죠. 대구 교보문고에서 작가 최인호의 사인회에 참석했다가 당일 치기로 대구를 왕복하는게 아까워서 내친김에 대구에서 한시간 정도 걸렸던 부산까지 갔는데 결국엔 부산에서도 돌아다닌 장소가 어딜 가나 갈 수 있는 이마트와 CGV등의 체인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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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기 전에 개봉관에서 놓친 영화를 2천원 주고 제휴 파일로 내려 받아 봤는데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제휴 파일 가격이 500원으로 내려갈 때까지 볼 생각이 없었는데 연극 때문에 서둘러 본거였죠. 현재 [그을린 사랑]은 파일공유 사이트 검색하면 제휴 파일 밖에 안 뜹니다. 1,000원이면 모를까 1,500원에서 4,000원 주고 제휴파일로 영화를 보느니 부지런히 움직여 개봉관에서 보는게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 개봉관을 많이 가는건데 이렇게 한번 개봉할 때 놓치고 나니 이미 내려간 가격대인데도 2천원 내는게 왜 그렇게 아깝던지요.
돈 아까워서 2011년 [제인 에어]도 1,000원으로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봤어요. 5천원 주고 영화관에서 조조로 보면 돈이 안 아까운데 1,000원 이상의 금액을 결제하고 집에서 보면 본전 생각 나요. 작년에 캐리 후쿠나가 연출의 [제인 에어]가 제휴파일로 3,500원에 올라왔을 때 저 돈 주고 다운 받아 보느니 이마트에서 9,900원에 파는 [제인 에어]dvd를 사서 보고 팔아버리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지금도 [제인 에어]는 똑같은 제품인데도 유통 경로의 차이로 이마트에선 9,900원에 살 수 있는 dvd가 일반 dvd판매 매장에 가면 그 두배 되는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그을린 사랑]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호들갑스러운 구석이 있었지만 잘 만든 영화라는건 인정하겠어요. 특히 색감과 촬영이 뛰어나더군요. 영상 언어로 설명되는 부분이 많은 작품이라 설마 연극이 원작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연극 공연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처음엔 영화를 가지고 연극을 만드는건 줄 알았지 원작인줄은 몰랐죠. 영화를 보고 나서 연극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어요. 이런 구성이라면 적어도 지루할 틈은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구성에 구성이 반복되는 작품이라 복잡한 구성에 치이는 기분이 드는 영화가 [그을린 사랑]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소재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찾아 보니 원작 연극은 4시간 짜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지, 4시간이나 되는 영화를 130분으로 축약해놨으니 내용이 뒤죽박죽 된거겠지, 국내 연극은 쉬는 시간 포함해 170분이니 영화에서 거칠게 넘어간 부분도 보완할 수 있겠고 이야기의 결속력도 더 단단해질것입니다. 그러나 이건 저의 바람에서 그쳤습니다. 원작이라 달고 나온 연극이 전혀 그렇지 못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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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더 나아요. 연극은 조용합니다. 모든 사건, 인물 설명, 독백, 대화들이 전부 조용하게 전개돼요. 고요한 호수를 보는것같아요. 전개는 대부분 독백으로 처리됩니다. 구성은 130분짜리 영화와 동일해요. 그러나 연극은 쉬는시간 포함해서 195분이나 합니다. 예매처에 기재된것보다 25분 길죠. 쉬는 시간 제외하더라도 3시간 입니다. 영화보다 50분이 더 긴데 같은 내용임에도 영화에서 더 확장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감정선이 조금 더 매끄러워지긴 했지만 사족으로 흐를 때가 더 많죠.
연극을 보니 영화의 각색이 다시 보이더군요. 훌륭한 각색이었죠. 이렇게 넋빠진 구성의 연극을 그 정도의 재미와 몰입도로 구현시켰다는것이 연극과 비교하면 감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원작이 연극이었다는 흔적이 영화에선 보이지 않아요. 그 정도만으로도 성공한 각색인데 이 작품은 국내에서 임성한이나 서영명 같은 작가들이 천박하게 다룰 만한 막장 인물 관계도를 가지고 품위있게 살려냈죠. 연극은 뒤통수를 갈기는 충격적인 결말로 가기까지 축축 늘어지는 구성으로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들어서 막상 터져야 할 후반부엔 별로 놀랍지도, 감정적으로 동요되지도 않습니다. 연극과 영화의 전개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영화를 보고 나면 장면을 따라가는게 보다 수월한 작품이죠. 그러나 각 장면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알고 보는데도 매우매우 지루합니다.
[헤다 가블러]에 이어 [그을린 사랑]까지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연극을 같은 극장에서 연달아 보고 나니 극장에 대한 신뢰까지 깨져버리더군요. 연극은 온통 나레이션으로 전개되는 테렌스 멜릭의 서사극을 보는 느낌입니다. 테렌스 맬릭 영화 중엔 [천국의 나날들]은 인상깊게 봤지만 [씬 레드라인]과 [트리 오브 라이프]는 어떻게 봤는지 제 자신이 신통할 정도로 지루함과의 전쟁이었죠. 버지니아 울프처럼 의식의 흐름 기법을 영상 언어에도 도입하려는것인지 대사보단 나레이션에 의존한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기분이에요. 아름다운 영상으로도 구제가 안 되는 구성이었죠.
연극 [그을린 사랑]도 그렇습니다. 기술적인 요소는 뛰어나요. 무대도 아름답고 상징적인 장면 묘사도 인상적이죠. 나왈이 아이를 출산하는 장면에서의 소품 처리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시각적으로 영리하게 구성된 장면이 더 많습니다. 깊이있고 무게있는 무대 미술이었어요. 그러나 대부분 독백으로 처리되는 인물의 심리와 관계망, 사건의 묘사는 답답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입니다. 속도감 있게 그릴 수 있는 전개인데도 맥이 툭툭 끊기고 내용은 설명조로 이어지고 편지에 편지로 이어지는 후반은 서간체 소설의 낭독회로 변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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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실력은 들쑥날쑥합니다. 배해선의 연기는 훌륭해요. 배해선은 좋은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지만 연극 배우로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뮤지컬에선 편차가 컸지만 연극에선 늘 만족스러웠어요. 배해선이 한참 뮤지컬만 할 때도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준적이 많았는데 연극 위주로 활동하는 요즘엔 뮤지컬 할 때보다 실력이 더 좋아졌어요. 연극 배우 배해선을 보고 있으면 뮤지컬 배우 배해선이 있었나 싶죠. 뮤지컬만 할 때도 연극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확실히 연극쪽에서 실력이 조금 더 부각되는 배우입니다. 연극, 뮤지컬 외에도 다른 분야에서도 배해선 연기를 볼 수있었으면 좋겠네요.
나왈의 쌍둥이 중 아들로 나오는 김주완은 잘 하는 배우인데 이 작품 배역과는 겉돕니다. 영화와 달리 연극에선 시몽의 직업이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설정됐고 복싱 하는 장면도 간간이 나옵니다. 그러나 김주완을 시몽 역에 캐스팅 했으면 직업 설정을 바꿨어야 했어요. 바람 불면 날아갈것같을 정도로 왜소한 김주완은 어떻게 봐도 복싱 선수처럼 보이지 않을 뿐더러 거칠고 사납고 다혈질인 복싱 선수처럼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목소리 변주한 노력도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발성은 어색해져서 대사를 칠 때마다 듣기 거북하고 일부러 동작을 큼직큼직하게 한것도 자연스럽지 못하죠. 거기다 나이가 보여서 쌍둥이 남매가 함께 있으면 삼촌처럼 보입니다. 비운의 씨앗으로 나오는 이윤재도 별로에요. 후반부에 연기력으로 각인시켜야 하는 배역인데 존재감이 떨어지죠. 표현력이 단순해서 배역의 드라마가 인공적으로 느껴집니다. 이윤재는 어떤 작품을 하건 매번 연기가 비슷비슷해요. 표현력도 단순해서 답답해요. 신경질적인 인텔리 여성으로 나오는 잔느 역은 배우보단 배역 자체가 호감이 안 갑니다.
전 [그을린 사랑]의 주제의식엔 동조하진 않습니다. 레바논 내전의 비극을 가상의 공간을 빌어 희랍극같은 묵직함으로 전달하는 전개 방식은 인상적이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아는것에서 얻어지는 덕목과 깨달음, 삶의 진리, 성숙해지는 과정은 신경쇠약을 일으킵니다. 중요한건 막장스러운 나왈의 가족 관계도 자체가 아닌 그를 통해 이 작품이 엿보려 했던 레바논 내전의 참상과 비극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성숙한 의지를 봐야겠죠. 후반부는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도입한 방식이 지나친 감이 있어요. 용서와 이해, 화해를 추구한다는것은 동의하는 바이지만 꼭 이렇게까지 까발려서 진실의 힘을 역설적으로 설파해야 하는건지 모르겠어요.
왜 진상의 전부를 다 알아야 할까요. 모르는게 약일 수도 있어요. 나왈의 폭로 방식은 추잡한 구석이 있어습니다. 이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며 죽어 버린 재단사도 아니고 어느날 갑자기 실어증 환자처럼 굴더니 5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침묵하며 곁에 있는 사람 오장을 뒤집어 놓다가 사망해 놓고선 장례 절차에 대한 요구 사항은 왜 이렇게 많나요. 자식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나요. 여러 사람 졸도시킬만한 무시무시한 출생의 비밀과 저주와도 같은 진실을 알게 하는 심보가 고약해요. 그런건 살아 있을 때 본인이 처리했어야죠.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어요. 그녀가 지아비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삿말도 자신을 지칭하는 "72번 창녀"입니다. 이게 뭐에요. 불쌍한 한편으로 비겁해 보여요. 사채빚만 잔뜩 떠넘기고 책임감 없이 자살한 가장의 신세한탄을 보는것같았습니다. 극중 시몽의 욕지거리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더군요. 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라고요. 진실을 아는게 꼭 좋은것만은 아닌데 말이죠. 그걸 이겨낸다고 해서 트라우마가 걷혀지는것도 아니고요. 나왈의 그을린 사랑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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