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제작 공모선정작 1 극단 실험극장 <고곤의 선물>> 연극, 그 위대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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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2.03.15
조회 2237
연극 <고곤의 선물> - 연극, 그 "위대함" 안에서
어느 날, "에드워드 담슨"이라는 유명한 희곡 작가가 죽었다.
그리고 "담슨"의 부음(訃音)을 접한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평전을 쓰고 싶다며 담슨의 아내 "헬렌"에게 편지로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담슨과 헬렌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누차 이를 거절하였던 헬렌은 담슨의 아들이 직접 방문하여 설득한 끝에 평전 집필을 허락한다.
그런데 이 때 헬렌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담슨의 아들에게 평전 집필을 끝까지 마무리하겠다는 맹세를 하라고 요구한다.
담슨의 아들이 맹세를 하자, 헬렌은 담슨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담슨"은 "피의 복수"로 "정의"를 실현하고, 그 피로 세상을 "정화"시켜야 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희곡은 피칠갑을 한, 정의 실현의 장이다.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한 신성한 의식의 장이다.
그에게 연극은 신성하다. 연극은 "영원한 종교"와도 같다.
그리고 그는 피로 물든 "정의 실현과 세계 정화의 사도"이다.
이것이 그의 존재 의의이고 그게 바로 "담슨"이다.
하지만, 그는 수십 편의 미완성 희곡만을 쌓아놓고 있다.
그는 완성짓지 못한다. 창작의 마비상태에 빠져있다.
이러한 그를 구원해 준 사람이 바로 헬렌이다.
고곤(메두사)의 목을 베어야 하는 페르세우스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아테나가 그를 도와 준 것처럼.
헬렌(아테나)의 도움으로 담슨(페르세우스)은 창작의 마비 상태(고곤)를 극복하고 큰 성공을 거둔다.
허나, 몇 차례의 성공 후에, 큰 실패를 맛본다.
이 일을 계기로 담슨은 자신의 구원자로 칭송하던 헬렌을 원망한다.
집필을 중단하고 술과 여자에 빠져지낸다.
그리고 어느 날, 해외 강연 중 돌연 귀국하여
연극이 죽었다며 완전한 실의에 빠져버린다.
담슨은 연극이라는 위대한 종교의 사도로서 살 것을 장담했던 인물이었다.
헬렌은 그의 자긍심과 열정에 매력을 느꼈고,
그의 구원자(또는 조력자)로서 존재의 의미를 찾았었다.
헬렌이 학자로서 전도유망했던 자신의 미래마저 포기하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로웠던 아버지마저 홀로 남겨두고, 담슨을 선택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제 원망은 헬렌의 차례가 된다.
헬렌은 그들만의 대화방법,
즉 희곡(연극) 안에 자신을 대신하는 인물(아테나)을 심어놓고,
그 인물을 통해 담슨(페르세우스)을 비난한다.
헬렌(아테나)의 준엄한 심판의 소리에 정신을 차린 담슨(페르세우스)은
자신의 과오와 과거 자신의 맹세를 떠올린다.
고곤(창작의 마비)의 목을 베어 아테나(헬렌)에게 바치지 않을 시, 고통속에 죽겠노라는.
그리하여 담슨은 이제 "아가멤논"이 되기를 선택한다.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왔으나, 집으로 돌아온 직후 목욕 중에
자신의 부인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 죽임을 당한 비운의 왕.
그러나 담슨이 이해하는 바, 아가멤논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 있었던 까닭에,
그것은 정의의 실현이었다. 담슨은 그 "정의"를 스스로에게 다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담슨은 헬렌에게 자신을 씻겨달라고 사정한다.
그리고 먼저 들어가 욕실의 불을 모두 끄고, 물을 틀어놓고, "모든 준비"를 하고 기다린다.
헬렌은 욕실로 들어가 어둠 속에서 담슨이 건네준 비누로 담슨의 몸에 비누칠을 한다.
담슨이 말한다. "더 세게!"
헬렌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담슨이 말한다. "더 세게!"
헬렌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더 세게, 더 빨리, 비누로 그의 몸을 문지른다.
그러다 미지근한 액체를 느낀다. ... 그렇다. 피다. 피!
담슨은 그 비누에 조그만한 칼날을 심어놓았던 것이다.
담슨이 희곡을 쓰기 위해 직접 구입한 종이(전지)를 자를 때 쓰던 그 칼이다.
헬렌이 놀라서 뛰쳐 나오고, 뒤이어 담슨이 온몸에 피를 흘리며 등장한다.
그리고 절벽 위에 위치한 자신의 집 발코니에서 뛰어내린다.
......
담슨의 아들은 주체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는 평전을 쓰지 않겠다고 한다.
헬렌이 맹세하지 않았냐고 다그쳐도 그는 단호하다.
비록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자신을 버린 아버지이지만,
자신에게 우상과도 같은 인물인 아버지가 미친놈으로 낙인 찍힐 것이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하지만 헬렌은 지금까지도 불면의 밤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만든 담슨에게 복수하고 싶어졌다.
평전 발행을 통해서.
헬렌은 (담슨과는 다르게) 평화주의자였던 자신의 아버지만큼이나,
용서, 화해, 평화의 가치를 강변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친듯이 복수하고 싶은 것이다.
담슨의 아들은 헬렌에게 "용서"를 간청한다.
결국 그녀는 끝없이 자기 세뇌를 한다.
"나는 용서할꺼야!""나는 용서할꺼야!"
더 큰 목소리로, 그러나 흔들리는 목소리로, 괴로워하면서,
"나는 용서할꺼야!" "나는 용서할꺼야!" "나는 용.서.할.꺼,야 아 ..."
......
나는 눈물이 났다. 그녀를, 헬렌을, 김소희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 용서, 참 쉽지 않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상처를 안고 누군가를 용서한다는게 ... 참으로 쉽지 않다.
게다가 그녀에게 그는 전부이지 않았던가.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사회적 차원에서건, 개인적 차원에서건 정의/복수는 무엇이고, 또 용서란 무엇일지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 ...
지극히 "근대적인 인간"인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알면서도 부정하려 애쓰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한계에 대해서, 나의 무기력에 대해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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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고곤의 선물>은 현재와 과거, 현실과 연극, 그리고 현실과 신화를
수차례 오고가는 탓에 다소 복잡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고곤의 선물>은 담슨과 헬렌의 관계를 통해 구조적으로 양분할 수가 있다.
"페르세우스와 아테나",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스트라".
그리고 두 인물의 관계는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스트라"에 대한 논쟁으로 시작해서
결과적으로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되어서 끝난다.
그리고 연극의 시작과 끝은 공(共)히
"담슨의 아들"과 "헬렌" 간의 평전 집필을 둘러싼 대화/다툼이다.
페르세우스와 아테나의 관계 전환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 이야기가 포개진다.
"일리아스"의 형식이다.
그리고 담슨(damson)!
말장난이기는 하지만, 극중에서는 의미심장하게 반복되었던 이름,
담 슨! (damn son),
신에게 저주 받으라고 할 때 쓰는 단어, damn
그리고 아들, 남아 son.
그러니까 담슨은 신에게 저주받은 놈이다.
"필멸의 인간" 중에 가장 저주받은 이, 바로 오이디푸스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다가 방황하고, 그 과정에서 영광도 얻었지만, 끝내 파국을 맞은 이.
자신이 뱉어놓은 저주가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이 스스로를 벌한 이.
바로 오이디푸스!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밀고가서 (한 때 성공하기도 하였지만) 끝내 좌절을 맛보고,
자신이 그렇게 강변하던 피의 복수와 정의의 칼날이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이 스스로를 벌한 이.
오, 담슨!
이 둘은 이렇게 만난다.
<고곤의 선물>은 담슨을 통해 연극의 죽음을 말하였지만,
그리스 비극(신화), 즉 연극의 시원에서 연극의 본질과 연극의 원초적 생명력을 길어올려
연극의 위대함을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김소희, 정원중, 이동준!
이 세 배우의 소름끼치는 연기로 더더욱 전율하면서,
연극의 그 펄펄 끓어오르는 뜨거운 힘, 생생함을 느끼면서
그들의 눈빛, 신음, 절규를 깊이 새기면서,
연극의 위대함을, 연극이 주는 미적 쾌(快)를 다시 한번 절절히 확인하면서
나는 연극 <고곤의 선물>을 보았다.
나는 연극 <고곤의 선물>을 이렇게 보았다.
덧붙이는 말.
제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