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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하는 습관"> 뒤에 남겨진 사람들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1.07.04

    조회 2274

6 월 27일에 혹시나 하고 라디오 이벤트 게시판을 둘러봤다. '사랑하기 좋은 날'에 내 아이디가 보였다. 바로 '예술하는 습관'에 당첨된 것이다.^^ 금요일(7.1) 저녁 8시 명동예술극장이었다. 친구와 약속을 잡고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을지로입구역으로 향했다. 금요일에 명동은 사람들로 븜볐다. 친구와 만나서 티켓수령하고 그 앞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극장에 입장했다.

 

티켓에는 1층이라고 되어 있는데 계단을 올라가서 입장했다. 극장은 생각보다 컸고 의자도 좋았다. 소극장과 분위기가 달랐고 연극도 다를 것 같았다. 우리는 무대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에 다섯 번째 줄 정도에 앉았다. 무대 역시 컸다. 왼쪽 위에는 커다란 창들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탁자를 둘러싼 의자 두개, 그리고 깊숙한 곳에 침대 하나, 오른쪽에 싱크대, 전체적으로 책들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종이조각들이 어질러 있었다. 2층에는 피아노가 있는 게 특이했다.

 

<연극 연습하러 모여든 사람들>

연 극이 시작되었고 한 남자(카펜터)가 앞에 나와서 관중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자신은 위대한 사람들의 단점과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알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조금 후에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오든(시인)과 브리튼(음악가) 역을 맡은 두 분은 TV에서 봤던 분들이라 눈에 띄었다. 그 밖에 무대감독과 효과주는 분, 스튜어트, 피아노치는 분, 조연 한 분, 노래부르는 소년이다. 이 분들은 '카니발의 날'(카니발은 오든의 시 '바다와 거울'에 나오는 인물)을 연습하려고 모이신 것 같다. 배우들과 스텝들이 연극을 연습하는 자유스러운 분위기다. 그런데 연출하시는 분이 안 오신 것이다.  그래서 그냥 파할 분위기인데, 그 때 극작가분이 등장하신다. 그래서 모두 10분이 무대에 계셨다. 연극연습은 시작됐다.

 

<오든을 인터뷰하러 온 카펜터>

오 든은 다리를 꼬고 편하게 의자에 앉아있다. 그 옆에는 BBC에서 온 카펜터가 오든과 인터뷰한다. 때는 1972년, 오든은 뉴욕에 갔다가 다시 영국 옥스포드대로 돌아왔다. 카펜터는 과거 오든의 동성애에 대하여 질문한다. 그렇다. 오든은 동성애자다. 1972년에는 동성애자임을 드러내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든은 시인이라서 그런지 개방적이다. 씽크대에다 오줌을 누고 성기묘사도 숨기지 않는다. 오든은 나중에 오든의 전기작가 되는 카펜터를 경계한다. 자신의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이 기분나쁘고 두려운 듯.

시와 시인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화를 내지. 사람들이 내 시를 이용하는 게 싫어.

 

<오든이 부른 콜보이>

카 펜터는 30분전으로 시간을 돌린다. 그 때 오든은 카펜터를 콜보이(돈을 주고 불러들인 남창)로 착각하고 바지를 벗으라고 한다. 실랑이 끝에 인터뷰를 시작하지만. 곧 진짜 콜보이 스튜어트가 등장하고 카펜터의 인터뷰는 끝난다. 스튜어트는 누가 봐도 키크고 젊고 잘생긴 청년이다. 오든은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숨기지 않듯이 자신의 집으로 콜보이를 불러들인 것이다. 오든이 의자 위에 올라간 콜보이의 지퍼를 내리는 순간,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오든은 인상을 쓰고 콜보이를 돌려보내려고 한다. 인터뷰에서 카펜터가 말한대로 오든은 시계가 없으면 식욕도 못 느끼지 성욕도 못 느끼는 것 같다. 오든은 왜 시간에 집착할까?

 

콜 보이는 자신이 한 것이 없는데 돈을 받는 것에 대하여 미안한 듯 청소라도 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오든과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오든이 성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오든역을 맡은 배우는 갑자기 화를 낸다. 연습이 중단된 것이다. 그 배우는 오든이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무대감독은 진정시키고 연극은 계속된다.

교수든 콜보이든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카펜터의 불안한 위치>

그 런데 아까 퇴장했어야 할 카펜터는 무대 한쪽에 서 있다. 나중에 자신의 위치를 정해달라고 호소한다. 자신은 그냥 '단순한 장치'가 되기 싫다는 것이다. 역시 무대감독은 카펜터를 달랜다. 배우는 훌륭한 장치라고. 그냥 아무데나 있으라고. 단락이 끝날 때마다 2층에 있는 소년이 피아노 소리에 맞춰 아름다운 미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오든이 노래를 부르고 잠깐의 정적이 좋았다.

 

중간에 오든의 가구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나중에 오든의 문자와 브리튼의 음표는 서로 대화한다.

 

<오든과 브리튼과의 만남>

브 리튼이 방문한다. 오든과 20년만의 만남이다. 둘은 예전에 연인이었다고 한다. 20년이 지났고 둘 다 늙었지만 둘 다 설레인다는 것이 느껴진다. 브리튼은 '베니스의 죽음'이라는 오페라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한다. 응원과 격려가 필요해서 오든을 찾아온 것이다. 오든은 그 오페라는 충분히 멋질 것이고 자신도 참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브리튼은 오든과는 달리 깔끔한 성격인 듯 하다. 브리튼은 과거에 음악을 가리키던 소년들과 동성애를 했지만 큰 소란은 없었다고 한다. 브리튼을 '타락한 순수성'이라고 한다. 오든이나 브리튼 모두 동성애자들! 브리튼이 하고 있는 오페라 '베이스의 죽음'은 68세 아센바워 할아버지와 14살 소년의 사랑이야기이다. 마지막 장면이 해변에서 죽어가는 아센바워가 바다로 들어가는 소년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오든은 이 이야기를 왜곡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그리라고 하고 브리튼은 관객들을 배려해서 완곡하게 하려고 한다. 이런 오페라에 대한 거부감은 당연할 듯 하다.

역설적이게도 대본작가는 음악에 집중하게 만드는 산파. 음악은 언어를 녹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노래하노라.

 

<배우들의 의견, 불만 표시>

그 런데 이상하다! 지금 이 상황은 배우들과 스텝들이 모여서 연습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장면은 나에게 생소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진행될수록 배우들이 연습하다가 자신의 의견과 불만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오든은 자신이 맡은 이 시인이 이런 불쾌한 농담을 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한다. 오든을 인터뷰하러 온 카펜터는 처음 인터뷰후에 자신이 맡은 역이 없지만 무대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무대 여기저기를 불안하게 돌아다닌다. 자신은 단순한 장치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나중에 카펜터가 음악가였다는 것을 말하고 이 연극가 상관없는 빨간옷을 입고 트럼펫을 불기도 한다. 극작가는 연출자가 마음대로 어떤 부분을 삭제했다고 불만을 표현하고 배우들의 항의를 이해못하는 것 같다. 스튜어트는 자신의 나이가 29살이라며 25살인 콜보이를 연기하기 위해 시키지 않은 화장을 하고 왔다. 조연을 맡은 남자는 오든이 자신의 시 '바다와 거울'을 '노인과 바다'라고 말한 후에 그게 아니라고 자세히 반박한다.

 

<배우들을 진정시키는 무대감독>

왜들 이럴까? 원래 연극 연습할 때 이런가? 배우는 대본대로 충실히 연습하고 표현하면 되는 게 아닌가? 무대감독만이 이들을 타이르고 달래서 연습을 계속하게 한다. '배우들은 어린아이 같아. 행복하게 해줘야 돼', '배우들은 링위에 오르는 사람이고, 적군을 향하는 군인. 그래서 무서워하고 떨고 있다' 며 무대감독은 배우들을 진정시킨다. 나중에 콜보이인 스튜어트는 오든과 브리튼이 대화하는 중에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조연인 줄 알았던 이 콜보이가 결정적인 말을 한다.

 

위대한 인간의 삶은 포장이 잘 돼 있죠. 하지만 평범한 우리는 뭔가요? 예술하는 인물들, 예술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건가요? 당신들 예술가 패거리들은 누립니다.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 가운데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뭔가요?

 

오든은 '그건 도와줄 수 없어'라고 차갑게 말하고 연극 연습은 끝난다. 그리고 모두 연극 연습을 끝내고 기분좋게 퇴장한다. 무대감독은 불을 끄기 전에 극작가와 대화하다가 다음 얘기를 한다.

 

연극은 계속되요. 예술하는 습관인가 봐요. 언제나 누군가는 뒤에 남게 돼요.

 

<뒤에 남겨진 사람들>

이 연극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무엇을 말하는지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관객은 단지 연극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볼 뿐이다. 배우들과 스텝들이 연극 연습하다가 끝내는 게 이 연극의 전부다. 하지만 마지막 콜보이 스튜어트의 대사를 생각해보면, 안에 담긴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다. 오든과 브리튼은 영국의 유명한 시인과 음악가다. 그들은 늙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겉보기에 이 연극은 오든과 브리튼의 이야기가 중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듯 하다. 카펜터는 인터뷰 후에 자신이 무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몰라 불안하게 서성인다. 그리고 단순한 장치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오든과 브리튼 역을 맡은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우가 이런 말을 할 줄을 몰랐다고 불평한다. 이것이 배우로서 과한 것일까? 이 연극은 오든과 브리튼이라는 형식으로 배우, 작가, 감독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시가 문자라는, 음악이 음표라는 형식으로 표현되듯이. 어찌보면 이들은 이든과 브리튼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만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도 더 멋지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든과 브리튼처럼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감독과 작가에게 이런 저런 건의와 불만을 표현한다. 스튜어트의 마지막 말처럼 그들은 유명인사의 뒤에 남겨진 변두리에 머무는 사람들이 되기 싫었던 것이다. 오든과 브리튼처럼 위대한 사람들도 알고 보면 퇴폐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이 연극을 통해 알 수 있다. 어찌보면 이 연극은 그들을 풍자한 것이 아닐까? 연극 연습을 통해 연극을 만드는 배우들과 스템들의 무대 뒤의 모습, 그들의 고민과 욕망을 본 것 같아 좋았다. 이 연극은 그것에 대한 답을 관객들에게 던지는 것 같다. 정말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소외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단순한 장치 역할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감독의 말대로 누군가는 뒤에 남게 되더라도 멋지고 의미있는 장치로 남았으면 좋겠다. 관객으로서 그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싶다.^^ 물론, 오든과 브리튼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끝부분에 오든이 낭독한 '대지여'로 시작하는 'W.B.예츠를 추모하여'라는 시가 좋았다. 이 연극에 나온 그 시를 검색해봐도 못 찾았다. 알고 싶다.

 

예술은 테니스가 아니야. 이길 필요가 없어.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인생이 우리를 가지고 노는 거야. 그 안에 박혀서 인생이 놔주지 않으면 우리는 벗어날 수 없어.

 

작가나 음악가가 사라져야 온전히 그들을 소유한다.

 

위대한 연기는 두려움을 요리하는 도구 상자이다.

 

 

 

 

 

 

 

 

20110520_예술하는습관_2절포스터.jpg
"예술하는 습관"

- 2011.06.21 ~ 2011.07.10

- 월,수,목,금 오후 8시 / 토,일 오후 3시 / 화 공연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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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 15세 이상 관람가 / 본 공연은 신한카드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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