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고전연극탐험Ⅱ "갈매기">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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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나
등록일 2011.04.24
조회 7957
23일 토요일 공연
출연진은 서주희/박지일/이인철/박상종
어떤 분이 서주희씨 공연을 추천해주셔서 토요일 낮공연으로 선택.
안톤체홉의 갈매기를 지촌 이진순선생 헌정공연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명동예술극장에서 보는 네 번째 연극공연.
1. 텍스트에 대하여
갈매기는 무료한 시골마을에서 시작한다.
왕년의 스타였던 여배우 아르까지나와 그녀의 아들 뜨레쁠레프가 있다.
뜨레쁠레프는 희곡을 쓰길 원하고 지인들을 초청해 공연을 연다.
일종의 가족관계나 다름없는, 아르까지나의 오빠인 소린의 별장에 모인 여러 사람들.
그들의 시간은 멈춰있고, 지루하기 짝이 없으며 대부분 예술과 철학에 조예가 있는 편이다.
시대배경은 1890년대 러시아.
어느 정도의 계급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나, 단역으로 출연하는 네 명의 하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평등한 입장에 놓여있다.
집안을 관리하는 관리인은 외려 주인의 돈으로 농사를 짓고 말을 관리하며, 말을 내달라고 해도 쉽게 주지도 않고 자기 맘대로 집안의 경영권을 쥐고 흔드는 면을 보이며, 식사나 놀이모임에도 부담없이 참가한다.
또한 관리인의 부인인 뽈리나는 소린의 주치의인 도린을 연모하며 솔직하게 감정을 고백하기도 한다. 1861년 농노해방이후 어느 정도 계급해방이 자리를 잡아가는 중으로 보인다.
문학적으로는 모파상과 에밀졸라, 톨스토이의 시대이며, 음악적으로는 차이코프스키가 살아있던 시대이기도 하다.
얼핏보면 순진한 처녀 니나가 구렁텅이에 빠져가는 신파로 보일 수도 있고,
얽히고 설킨 애정관계로 인해 삼각관계에 대한 희곡으로 볼 수도 있다.
뜨레플레프의 희곡의 주인공으로 연기하던 순박하고 억압받던 시골처녀 니나는 유명인인 뜨린고린의 명예와 유명세에 빠져 그를 사랑하게 된다.
뜨레플레프는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희곡을 쓰지만 여배우출신이던 어머니 아르까지나에게 모멸을 당하고 숱한 우울에 휩싸여 지낸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갈매기 한 마리를 잡아 오는데 갈매기는 이 희곡에서 주인공 니나가 자기 자신의 투사물로 여기는 상징이 된다.
"참 아름다운 새지만 누군가의 눈에 띄여 우연히 죽임을 당한" 갈매기는
4막에서 시므라예프(관리인)가 뜨린고린이 예전에 부탁했다며 박제를 만들어 들고 나타나지만 뜨린고린은 그런 기억이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갈매기는 쉽게 말해 니나를 대체하는 상징물이다.
뜨린고린의 눈에 띈 니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고 파멸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뜨린고린이라는 인물은 "유명하지만 매우 소탈한 작가"로 스스로 말하기를 써야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있기도 하면서 참으로 운이 좋고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만큼의 재능은 없으나 유명한 작가이다. 그러니 니나에게 뜨린고린이란 일종의 성공한 기성세대의 명예와 성취, 성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니나가 매혹된 것은 단지 뜨린고린이라는 인물 자체에 있지 않으며 그의 명예와 성공에 부합한다.
또한 뜨린고린이 매혹된 니나의 매력은 그 인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음과 아름다움, 순결한 처녀성에 있다. 드넓은 호숫가를 나는 하얀 갈매기 같은 존재.
결국 니나는 그를 따라 모스크바로 떠나게 되지만 지방순회공연이나 다니는 하류배우로 전락하게 되고, 뜨레플레프는 작가의 꿈을 이뤄 집필을 하는 것이 4막의 배경이다.
4막에서 농장을 방문한 뜨린고린에게 관리인이 박제가 된 갈매기를 들고 나타나는 장면은 약간은 후안무치하고 깊은 철학이 없으며, 과거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마님인 "아르까지나"의 호감을 사기 위해 쓸데없는 농담을 일삼는 시므라예프의 성격과 일치한다. 아름다운 새를 스스럼없이 박제하고 그 것을 들고 나타날 수 있는 인물.
또한 그 갈매기의 박제를 시킨 기억이 없다는 뜨린고린에게 니나는 기억에서 사라진 한 때의 염문일 뿐이다.
4막에서 뜨레쁠레프를 재회한 니나는 끊임없이 불안한 대사 속에 "나는 I am 갈매기"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녀 스스로가 한 때 뜨레쁠레프가 잡아왔던 갈매기에 깊이 이입되어 있는 것이다.
현실을 살고 있는 농노계층인 뽈리나와 시므라예프는 애정문제에 큰 격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마샤 역시 뜨레쁠레프를 향한 사랑을 접어버리고 구애하던 메드베젠꼬와 결혼한다.
메드베젠꼬는 극중에서 내내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마샤의 표현대로 철학 아니면 돈 이야기를 하는 인물이다.
곤궁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교사 메드베젠꼬의 끊임없는 화폐이야기는 당시 산업화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자본주의사회로 본격적 진입을 하고 있던 당시의 상황, 그러니까 자본주의에 매료되는 계층들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계층들 역시 동시에 탄생하던 시대를 반영한다.
주인공인 아르까지나 역시 돈에 대해 인색한 면을 보이면서 대사 중에 상당히 많은 부분에 실물화폐에 대한 대사가 등장하고 돈 없어, 돈 좀 주거나,,등등의 대사가 등장한다.
이미 이 당시는 화폐가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때였고 안톤체홉은 그에 대한 반영을 나타내는 것인데, 묘한 것은 극의 배경은 사실상 경제거래가 전혀 없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농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계속해서 시내로 가거나 도시로 가거나 세계여행을 하거나 모스크바로 가는 등, 산업도시에 대한 갈망을 숨기지 않는다.
여배우라는 화려한 직업을 지닌 아르까지나는 매우 현실적이고 현재에 충실하다. 나이 어린 뜨린고린을 애인삼아 그의 서포터를 자처하며 그녀에게 부족한 지적인 부분을 충족하는 수단으로 삼되, 아들에게 보단 자기 자신에게 더 지대한 관심이 있는 자기애중심적인 인물이다.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고 싶어하며 자신의 경력에 대해 풍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히스테리컬하고 광기어린 부분은 여배우라는 특성을 잘 반영하기 위한 캐릭터의 구성으로 보인다.
4막에서 뜨레쁠레프와 니나의 절망을 접하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도표를 생각했다.
<연극 갈매기의 인물관계도>
단순히 애정관계만을 표시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각 계층을 연령별로 분류해보았는데,
맨 아랫쪽의 노란박스 안의 인물들은 젊은 세대들이며, 그 윗부분은 기성세대들이다. 그 중 분홍색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소린과 도른은 이제 사실 현업에서 은퇴한 것과 다름없는, 그러니까 의견도 힘도 별로 없는 노년층에 해당한다. 사랑도 부질없고 생명연장에 대한 꿈도 부질없고 신진작가의 새로운 형식에 박수를 쳐주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의견을 내놓아도 그닥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는 나이, 힘 빠진 세력이라는 애기다.
그러나 아르까지나, 뜨린고린, 뽈리나와 시므라예프는 세상을 주도하고 있는 기성세대이다. 그들이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재편하고 권력구도를 재구성한다.
시므라예프는 관리인이지만 주인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뜨린고린은 문학계를 대표한다. 뜨린고린과 아르까지나는 신진작가나 새롭게 떠오르는 배우들을 격려할 수도 비탄에 빠뜨릴 수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스타로 만들 수도 있는 힘을 가졌다. 또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여서 돈을 걸고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4막에서 등장하는 러시아로또게임중에 환갑이 넘은 소린은 아예 저쪽에서 자고 있고, 마샤는 테이블에 앉아 있으나 진행자의 역할이다.
메드베젠꼬나 뜨레플레프 같은 젊은 층은 돈을 걸고 게임을 할만큼의 경제력이 없다.
이 극에서 가장 경제적 최약자는 메드베젠꼬인데, 이 자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모멸당하고 무시당하고 6km정도의 거리를 말 없이 발로 다니는 인물이다.
그가, 경제적 힘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무시당하는 것은 아닐까.
젊은이 넷을 보자면 이렇다.
늘 슬픔에 빠져있던 마샤는 적당히 불만스러운 현실에 안주하면서 늘 비탄에 빠져 있고 몽롱하고 맥없는 상태이다. (배우의 연기가 정말 맘에 들었다)
앞서 얘기한데로 메드베젠꼬는 돈이 없어서 찌질하다.
뜨레플레프는 새로운 예술양식을 도입하려고 노력하지만 기성세대로부터 비웃음만 받는다.
니나는 예술가가 되려고 했으나 농락당하고 좌절하며 이리 저리 부유하고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인생의 절반정도가 망가져 버렸다.
뭔가...
오늘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지 않은가.
결국 두 젊은이의 비탄에 빠진 모습으로 막이 내리는 순간, 그리고 갈매기가 날아가는 그 순간.
나는 시대를 초월해 모든 젊음들은 그렇게 농락당하고만 마는 것인가 하고 씁쓸했다.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은 생명으로 회귀하라는 마지막 대사는, 결국 그 젊은이들이 또 기성세대가 되고 또 핍박하고 핍박받는 일이 반복된다는 얘기일까.
강조하건데, 이 작품은 1890년대의 안톤체홉의 작품이다.
2. 극에 대해서
무대의 완성도는 명동예술극장의 모든 무대가 그렇듯 아름다웠다.
사진을 찍어왔는데, 마지막에 다른 분들이 촬영하는 걸 직원들이 제지하는 걸 봤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미리 유출을 하는 것은 감상에 누가 될 수 있겠다 싶으니 연극공연이 종료된 후에 무대인사 사진과 같이 올리도록 하겠다.
전반적으로 평온한 분위기, 그리고 2막에서의 조명이 특히 나른한 기운을 잘 표현해주었다.
이번 공연엔 무대 우측에 박스를 설치해 바이올린/피아노/첼로/기타 세션을 두었는데, 현장감있는 음악이 극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테마가 반복될 때마다 더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었다.
1,2,3막을 하고 15분 쉬는 시간을 가진 다음 4막으로 넘어가는데, 4막에 절정 결말이 묶여 있어 가장 무게감이 있게 느껴졌다. 4막 전에 인터미션이 있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고 해야할까. 배우들의 연기를 평가할 필요는 없겠지만, 최근 영화 <아이들>에서 용덕모로 얼굴을 알렸던 배우 서주희씨의 광기어린 연기는 상당했다. 소름이 쫙쫙 돋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건 직접 보셔야 할 것 같고. (앞으로 영화나 드라마등 다채로운 매체에서 만나뵐 수 있길)
뜨린고린 역은 송승환씨와 박지일씨가 번갈아 가며 하는데 내가 본 어제 공연에서 박지일씨는 아주..시크하면서, 낭만넘치는 소설가의 이미지에 딱 어울렸다. 정말 멋진 중년이라고 해야할까. 학교 때 흠모하던 선생님이 떠오르거나 로버트레드포드의 지성미 정도를 기대해도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마샤 역할을 맡은 김소진씨의 독특한 대사처리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외모도 상당하던데 (신체비율이 ㅎㄷㄷ) 대중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현장에서 음악을 생으로 연주하고 아름다운 조명이 계절을 말해주고 세심한 소품이 등장하고 미적인 완성도를 지닌 무대장치와 배우들의 열연과 제대로 된 텍스트.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연극을 종합예술이라고 하는 것인데, 4번 연속으로 이어보는 명동예술극장의 대작들은 실망을 주지 않아 신뢰가 간다.
텍스트 자체가 고전전통을 위주로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여러모로 참 수준급이라는 생각은, 늘 든다는 것.
5월에는 아놀드 웨스커의 키친이라는 작품이 국립극단 대관작품으로 공연된다고 하니, 이 작품도 연타로 볼 계획을 잡아야겠다.
갈매기는 5월 8일까지 공연되어 아직 시간이 좀 있는 편이니까, 주저하셨던 분들은 과감하게 보시길 추천한다.
2011.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