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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고전연극탐험Ⅰ "동 주앙"> 동주앙을 보고나서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1.04.04

    조회 1970

명동의 분위기에 취해 도착한 명동예술극장은 또 하나의 설렘을 기대하게 했다.  17세기 파리의 원조 도시남 동 주앙을 21세기로 데려와 나의 마음에 담고 연극을 보기 시작했다.
 연극은 동 주앙의 하인인 스가나렐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동 주앙을 비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스가나렐은 동 주앙의 밑에서 일하면서 귀족신분인 동 주앙의 풍기 문란한 행동을 보고도 신분이 낮아 따끔한 소리를 못하고 오히려 잘하시는 일이라며 아부를 하기에 바쁘다. 동 주앙을 혐오하면서도 아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가나렐과 동 주앙을 바라보는 주위사람들이 정당한 말을 돌려 표현하며 설득하지만 동 주앙은 마음과 행동이 다른 가식으로 내비친다. 끝내 동 주앙으로부터 상처를 받았거나 희생당한 피해자들은 그를 고발하며 직접적으로 쓴 소리를 한다. 하지만 동 주앙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반성을 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전체를 상대로 자기의 위선을 정당화시킨다.


  남미에 카사노바가 있다면 17세기 프랑스에는 동 주앙이 있었다. 동 주앙은 17세기 시대를 귀족의 신분을 발판으로 즐기며 살았지만 그 즐거움 속에는 여러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다. 질타를 받음에도 즐거움만을 추구했던 동 주앙은 그 누구의 쓴 소리도 들으려 하지 않았기에 그만의 틀 안에 갇혀있게 되었다. 귀족의 타이틀을 벗기게 되면 그 틀을 깨고 나오는 순간 그 모든 즐거움은 사라질 것이다. 귀족이라는 높은 신분과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누렸던 즐거움은 귀족이 아니면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동 주앙으로 하여금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절대적 자유가 어느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동 주앙의 하인 스가나렐은 끊임없이 주인에게 도덕적 조언을 하지만 통하지 않고 결국 물질의 노예가 되고 주인의 노예가 된 채 살아간다. 아첨꾼 하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계급사회의 모순이 드러난다. 하인의 삶을 살았지만 동 주앙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자유를 외치던 동 주앙이 두드러지게 비난을 받았지만 그 시대 모든 사람들도 그 자유를 느껴보고 싶고 위선 또한 갖고 있었을 것이다.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 상황을 작가 몰리에르는 고발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스가나렐 또한 어떻게 보면 동 주앙보다 더 위선적인 인물일 수 있다. 동 주앙을 위해 도덕과 종교적 설교를 떠들던 스가나렐은 동 주앙이 죽음으로 몰리자 슬픔은커녕 월급을 외치며 절규하는 모습에서 그 위선이 드러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는 뒷배경을 제외하고 직사각형 틀은 변하지 않는다. 시대적 틀을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동 주앙과 닮았다고 느꼈다.

 연극 중간 중간 배우들이 퇴장하는 장면을 유심히 보았다. 모두가 지옥에 떨어지듯이 소리를 지르며 퇴장하는데 그 때 조명은 붉은 빛과 푸른빛을 띠었다. 나는 아무렇게나 조명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 명 한 명 의미를 두고 지켜보니 동 주앙의 방탕한 생활을 좋지 않게 생각하지만 결국 돈 앞에 무릎 꿇은, 정작 할 말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퇴장 할 때는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극 중에서 가난뱅이와 도적, 동 주앙을 용서하기 전의 엘비르 부인이 그랬다. 반대로 동 주앙을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 되라며 올바르게 인도하려 노력했던 사람들이 퇴장할 때는 푸른빛을 쏘았다. 그 인물들은 빚쟁이와 동 주앙의 아버지, 동 주앙을 용서하는 단계까지 간 엘비르 부인 그리고 죽은 석상이었다.

 연극을 보면서 또 하나 느낀 것은 앞부분부터 급작스럽게 전개가 되는 듯 했다는 것이다. 한 컷 한 컷의 내용은 걸리는 것 없이 이해가 되었는데 한 컷과 앞뒤의 다른 한 컷과는 연결이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씩 나열하는 방식인 것 같았다.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원작이 이런 것인지는 몰라도 중요한 내용만 추려낸 것 같았다.

 보는 도중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장면이 동 주앙의 집안으로 바뀌고 또 거기에서 동 주앙이 여러 인물들과 상대하지만 석상이 대면한 것은 과한 설정이 아닌 가 싶었다. 아무리 죽은 석상이 살아 움직이는 설정이라고 해도 동 주앙의 집까지 찾아와 잘못을 뉘우치도록 하는 것은 약간의 웃음 요소로 쓰일 뿐, 갑작스러운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면 한 컷을 동 주앙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습으로 시작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며 효과음과 함께 꿈속으로 들어간다는 신호를 주겠다. 그런 다음 동 주앙과 그가 죽인 석상이 결투의 장소에서 다시 만나 석상은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시키는 반면 동 주앙은 그에게 위압감을 느끼도록 하여 잠에서 벌떡 깨어나는 장면으로 했을 것이다. 그러면 부자연스럽게 석상이 나타나는 일도 없고 의미상으로 꿈속 장면이지만 결투장면을 떠올리게 하여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더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뮤지컬 ‘돈 주앙’을 연극 ‘동 주앙’과 비교해 보았다. 뮤지컬에서의 돈 주앙은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자신의 행각에 대해서 미안해하지도 않고, 굳이 변명하려 하지 않는 연극 속의 동 주앙과 유사하다. 전체적인 줄거리의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음악적인 선율과 간절한 어조의 노래와 춤으로 돈 주앙의 호색적인 행동을 따끔하게 충고하기 때문에 더 애절하고 감성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연극에서는 동 주앙이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는 마지막 부분에 경고를 하는 반면, 뮤지컬에서는 중간 중간 동 주앙의 위선과 반항을 역시 춤과 노래로 만류한다.

 17세기 희극 작가 몰리에르가 동 주앙을 썼던 그 시대에는 귀족이 귀족을 낳고 하인이 하인을 낳는 수직적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동 주앙의 인물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너무 앞선 시대에 태어난 인물이기 때문에 당대 사람들에게는 ‘시대의 반항아’라고 불리며 억압당했지만 누구에게나 위선이 있다며 당당히 자기 주관을 지키며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인물이다.

 

 400여년이 지난 오늘날 21세기에 이르러 동 주앙을 다시 그림으로써, 위선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가면을 쓰고 자신은 물질적인 추구를 하지 않는다며 되새기고 합리화하려고 애쓰며, 심지어는 이 사실자체를 망각하고 있는 물질만능주의 현대인들에게 경고를 하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이런 의미로 다시 연극을 계획한 것 같다.

 연극이 끝난 후 배우들의 재치있는 말과 행동에 한바탕 크게 웃어서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부끄러움과 동시에 반성을 하게 되었다. ‘위선’이라는 단어를 극중 동 주앙이 외쳤을 때 나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살아온 건 어떻게 보면 짧고 어떻게 보면 긴 21년 밖에 되지 않지만 되돌아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먼저 생각이 들었다. 내 이익을 위해서 가식을 보인 적이 많은 것 같다. TV에서 위선적인 사람을 보면 ‘저렇게 까지 하면서 살아야 되나’하면서 혀를 끌끌 찬적도 있었다. 주위사람들을 유심히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 티 없이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난 계속해서 자그마한 가면을 쓰고 왔던 것이다.

 어릴 때 보던 연극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어느 정도 컸다고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이 내놓은 웃음 포인트에 맞춰 단순하게 웃어주는 관객이 아니라 비판을 할 줄 알고 시대를 이해하며 지금의 나와 연결시켜 한층 더 성장한 눈을 가지게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동 주앙’보다 조금 더 진지하고 딱딱한 연극을 통해 내 눈을 시험하고 싶다.

 

20110126_동주앙포스터_2절3.jpg
세계고전연극탐험Ⅰ "동 주앙"

- 2011.03.10 ~ 2011.04.03

- 월,목,금 7시 30분 / 수,토,일 3시 / 화 공연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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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8일(화) 19:30, 3월 9일(수) 15:00 프리뷰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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