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관>국립극단 "오이디푸스"> 운명의 이름으로 운명을 거절한 사나이 오이디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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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헌
등록일 2011.01.19
조회 2046
운명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손 안에 컴퓨터를 가지고 살아가고 방안에 앉아서 컴퓨를 통해 전국의 도로를 볼 수 있는
우리에게도 운명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 오이디푸스 결국 그는 운명에 굴복했다. 자신의 연약한 몸뚱이를 운명에
맡긴다. 운명은 그를 눈먼 장님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그는 결국 또 자신의 삶을 살았으리라. 그 운명 또한 자신의 삶이다.
우리도 운명을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그녀를 통해 자신의 아들을 낳는 그것이 오이디푸스의
운명이라면 그는 어떻게 그 비참한 운명을 거부할 것인가? 보란듯이 그 비극을 사는 것이 운명을 이기는 것이 아닐까?
운명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기력이라면 비극을 완벽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 운명을 이기는 것이 아닐가 생각을 한다.
배우들의 멋진 열연 그리고 원작에 충실한 연출 멋진 무대 전체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만에 연극같은 연극을 보았습니다. 역시 고전은 깊은 울림 같은 것이 있어서 좋습니다. 요즘은 고전을 보기가 힘든 시대라서
국립극단이 고전을 한다니 반갑고 축하할 일입니다.
우리에게도 운명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 오이디푸스 결국 그는 운명에 굴복했다. 자신의 연약한 몸뚱이를 운명에
맡긴다. 운명은 그를 눈먼 장님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그는 결국 또 자신의 삶을 살았으리라. 그 운명 또한 자신의 삶이다.
우리도 운명을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그녀를 통해 자신의 아들을 낳는 그것이 오이디푸스의
운명이라면 그는 어떻게 그 비참한 운명을 거부할 것인가? 보란듯이 그 비극을 사는 것이 운명을 이기는 것이 아닐까?
운명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기력이라면 비극을 완벽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 운명을 이기는 것이 아닐가 생각을 한다.
배우들의 멋진 열연 그리고 원작에 충실한 연출 멋진 무대 전체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만에 연극같은 연극을 보았습니다. 역시 고전은 깊은 울림 같은 것이 있어서 좋습니다. 요즘은 고전을 보기가 힘든 시대라서
국립극단이 고전을 한다니 반갑고 축하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