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라노 드 베르쥬락> "낙엽은 떨어져 썩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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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1.17
조회 1921
"낙엽은 떨어져 썩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수수수 쏟아지던 시라노의 유려한 대사들 중 특히 맘에 와 닿았던 대사입니다.
시라노가 내게 그 낙엽처럼, 시련 속에서도 주어진 길을 꿋꿋하게 살아야한다고 얘기해주는 듯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듯 초연하게, 어쩌면 포기한듯한 시라노의 얼굴도 겹쳐지네요.
평생동안 한 여인을 가슴에만 간직한 채, 옆에서 지켜주기만 했던 시라노의 마음이 무척 고귀한 사랑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낭만이 사라진 21세기에 느껴보는 17세기적 낭만서사시는 가을이 지나가는 제 맘에 아련한 향수와 촉촉한 감동을 선사해주었습니다.컴플렉스에 가려져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시라노의 마음이 어쩌면 꼭 제 맘 같은지...감정이입 200%네요.
시라노가 자신의 맘을 직접 표현했대도 록산느는 시라노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아마 그랬다면 이런 멋진 작품이 탄생하지는 못했겠지요. 저는 외모보다는 그 사람의 내면을 더 보려고 하기 때문에 만약 내가 젊은 록산느였다면 잘생긴 크리스티앙에게 맘이 흔들리기도 했겠지만,시라노의 맘을 받아들였기를 바랍니다.
공연을 보기 전 원작인 희곡도 읽어보았는데, 흔히 소설이 원작인 작품들은 원작이 더 좋은데, 이 작품은 원작이 희곡인지라 무대로 보는게 훨씬 생동감 있고 애절하게 와 닿았습니다. 진심을 담은 번역과 애정어린 연출과 열정적인 배우분들의 열연이 작품에 흠뻑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다 외웠는지, 배우 안석환님의 열연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갠적으론 록산느 역의 김선경님을 좋아하여 보게 되었는데, 작품 자체로서도 감동에 폭 빠지게 되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해 가을에 다시 만나고 싶은 시라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