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잿빛 반딧불이<적도 아래의 맥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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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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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에서 ‘맥베스’라는 단어가 붙은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비극 제목이자 그 극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맥베스는 왕이 되려는 끝없는 욕망과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결국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인물임을 알고 작품에 임한다면 더 깊이 있는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서태평양의 제해권을 둘러 싼 문제에서 사실상 물러나게 된다. 그래서 육상운송로의 확충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등지 각 근처에 철도를 다니게 할 수 있는 다리를 건설하게 되었다. 그 중 이른바 '죽음의 철도‘라 불리는 ’태면철도’ 공사가 매우 악명이 높았으며, 그 건설 현장에 전쟁포로들이 투입되면서 고된 노역으로 수많은 희생을 야기 시켰다. 이 작품은 그 시절 일본의 포로감시원을 하던 실존인물인 ‘이학래‘씨의 증언을 토대로 내용을 전개한 것이다. 그리고 극에서도 인터뷰 형식을 빌려 ’이학래‘씨를 모태로 탄생한 유일한 생존자인 춘길이 미래에 나이가 들어 등장하여 당시 생활을 이야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무대장치는 상당히 단조롭다. 장면도 액자식 구성을 취해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와 현세기의 태국 논프라덕역 딱 2곳의 장소로만 이동을 한다. 장소의 이동 중간에는 군속으로 실재한 듯한 인물들을 무대 벽면에 흑백영상을 비추어 역사적 사실을 계속적으로 상기시키는 듯 했다. 그리고 동시에 무거운 음악들을 깔아 그들의 비극성을 더욱더 강조했다.
조선인 군속들은 어느 정도 가해자이면서 어느 정도 피해자라고 하는 정의신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흑과 백 어느 한 가지에 물들지 못한다. 일본인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조국에서는 일본군의 앞잡이로 오인 받아 조선인으로 대우받지도 못하며 조국은 해방되어 독립의 기쁨을 누릴 때 이들은 형무소에서 간수들의 핍박을 받으며 외로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사형날짜만 기다리고 있다. 군인이면서도 절대 명예로운 직책이 아닌 최 말단 계급의 노예나 다름없는 군속. 이들은 그렇게 어디에서도 어울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의 한 일부로 어울리지 못한 채 그렇게 사실로서도 잊혀 지게 된다.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들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어느 정도 자신을 생각할 줄 알고 남을 생각할 줄도 알며 사람답게 살고 싶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묻어나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작은 소망조차도 외면하고 순간의 잘못된 기로의 선택이 그들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 선택은 그들이 했고 우리도 충분히 할 수도 있었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죄에 비해 그들이 당면해야했던 사회적 책임은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컸고, 그것을 운명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그들은 너무나 억울했으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고독하고 외로운 이들의 마음은 어느 정도 치유 할 것이다. 그 중에 기적같이 감형을 받아 살아난 춘길은 이들의 희망을 그대로 저버리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난 이유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미 운명을 넘어선 어떠한 사명감이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엔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달래듯 초롱초롱한 반딧불이가 수많은 별처럼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