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적도 아래의 맥베스> 정말로 세상에 전해지게 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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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6
조회 1803
재일 극작가 정의신씨의 작품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1940년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인들에게 징용되어 포로들을 관리하는 감시원을 했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포로들을 학살했다는 이유로 연합군에 의해 사형에 처해져 있는 한국인들의 이야기이다.
연극은 재일 교포 노인인 김춘길의 과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현재와 형무소에 갇혀 있던 과거를 왔다 갔다 하며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며 어두워지는 때가 있다. 그 때 배경 영상으로 실제로 목숨을 잃었던 한국인들의 사진을 띄워 보여주었다. 그냥 단순한 암전 상태가 아닌 실제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연극의 내용이 거짓이 아닌 사실이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해주었던 좋은 장치였던 것 같다. 무대 설치 뿐 만 아니라 음향 효과도 훌륭했다. 무대에는 설치되지 않았던 철문을 열고 닫는 소리, 극 중 박남성이 교수형을 당하는 이런 소리들이 너무 나도 생생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음향 효과 까지 연극에 한 층 더 몰입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내용의 생생함을 그대로 전해줄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었다. 배우들이 웃을 때 같이 따라 웃었고, 서로 부둥켜 앉고 울 때 나도 같이 울었다. 주연, 조연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였지만. 특히 극 중 인물인 박남성과 이문평의 연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두 장면이 있는데, 첫 번째는 박남성이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대에 올라가기 전 쿠로다 나오지로가 철장을 사이에 두고 안아주는데 그 장면에서 나도 같이 눈물을 흘릴 수 밖 에 없었다. 아버지에게 마지막까지 못난 아들로 남게 되는 그 박남성의 마음이 진실하게 느껴졌다. 대사 중‘평생 남한테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머리를 숙였단 말이야’ 라는 부분에서 우리들 앞에서는 강한 아버지 이지만, 자식을 위해 남에게 고개를 숙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욱 더 슬픔이 더해졌다.
두 번째 장면은, 김춘길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게 될 때, 이문평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전해주는 장면이다. 이문평은 김춘길이 곧 풀려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편지를 전해주는데 매일 어머니에게 적었던 편지에 대해 누군가 자신의 편지를 읽고 지금의 고통을 이해해 준다면 그것 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말했다. 그런 문평의 편지를 나중에 다큐멘터리 PD를 통해 세상에게 보여주게 되며 그 사실에 기뻐하는 김춘길의 마음이 나에게도 전달 된 듯 했다. 이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배우들의 연기가 나를 연극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완벽하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극이었지만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제목이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맥베스가 마녀들의 예언과 부인의 꾐으로 인해 왕을 암살하는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 처럼 일본에게 이용당해 모두 다 잃고 희생양이 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는 극의 내용과 잘 맞아 떨어지긴 했다. 다른 연극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 맥베스의 내용을 잘 모른다면, 아무런 정보도 모르고 제목만 듣는 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에는 부족한 것 같다.
연극을 보기 전에 제목만으로 지루 하고 따분할 거라고 생각됬던 2시간 30분이란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이만큼 시간과 돈을 투자해 볼만한 연극이었다. 이런 흥미롭고 재미있는 극을 본 후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았다. 일본군의 감시원으로 이용당하고, 일본에게서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의지 할 곳은 조국과 가족뿐인 사람들이었는데 조국과 가족들조차 친일파, 전범이라고 외면했다. 이러한 피해자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왜 몰라주었을까. 왜 이해해주지 못했을까. 가장 잘 이해해주고 가장 잘 기억해주어야 하는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그 기분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지금에서야 <적도아래의 맥베스> 라는 연극을 통해 이문평씨의 편지는 바람대로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적도아래서 쓸쓸하고 외로운 슬픔 속에 사라져 간 이문평씨의 뜻을 내가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 같아서 마음 한쪽이 찡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