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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적도아래의 맥베스, 철도 끝에서 바라본 반딧불이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6

    조회 1925

지난 10월 2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이 되고 있는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극단 ‘미추’의 작품으로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니었던 포로감시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시대는 조국해방이 되고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현재이다. 회상의 형태로 두 시대가 번갈아가며 무대에 등장한다. 과거의 무대는 포로감시인들이 갇혀있는 감옥이고 현대의 무대는 일명 죽음의 철도로 불리는 태면철도이다. 극중에서 주인공의 비서가 하는 대사 중 “이 철도는 미얀마까지 이어져있어요. 좀 더 적도에 가까워요.” 란 대사가 있는데, 이 대사가 제목의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이 극은 포로감시인이었던 ‘김춘길’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먼저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필요한 간단한 사전지식을 관객들에게 제공한다.(포로감시인, 죽음의 철도 등등) 이후에 김춘길의 회상을 통해 극이 전개되어 나간다. 억지로 혹은 자원해서 군에 지원한 조선인들은 포로감시인이 되고 상부의 지시로 포로를 때린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일본재판소에서 일본인으로써 사형 판결을 받고 사형수가 된다.

조선인에게는 배신자라 손가락질 받고, 일본인에게는 자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한채 사형수라는 딱지를 달게 된 이들은 피우지 못하고 지고 만 자신들의 꿈과 이중피해자로써의 아픔을 나누며 각자의 인생을 마무리해나간다.

작품에서 현재의 무대는 죽음의 철도로 불리는 태면철도이다. 무대 스크린에 나무가 우거진 열대림사이로 저 멀리서부터 철도가 지나간다. 그리고 그 철도가 무대바닥까지 이어져있다. 이러한 장치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진 느낌을 주어서 414km에 달하는 철도의 길이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이어서 그 곳에서 치러졌을 엄청난 희생의 양을 표현해주고 있다. 또 감옥인 배경인 곳에는 사형대로 가는 길이 뒤편 중앙부분에 자리해 있다. 극중 대사에서도 바로 눈 앞에 위치한 사형대에 대해 언급을 한다. 사형대를 관객과 배우가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배치해 둠으로써 배우들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형수라는 것을 더 강조시켜준다.

태면철도가 배경인 현재에서는 일본인 4명과 포로감시인이었던 김춘길이 등장한다. 이 4명의 일본인들은 각각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진실에 접근하는 방송국PD, 진실이던 거짓이던 어느쪽이던 상관없는 카메라감독, 순수하게 진실을 보려하는 오디오감독, 측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비서. 이것은 현재 역사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여러 가지 시선들이 아닌가 싶다. 연출가 손진책씨는 “역사를 바라보려고도, 사과하려하지도 않는 현실에 규탄하려 하는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극에 등장하는 일본인 4명에게 일본의 현실을 담아낸것이 아닐까. 사형수들도 매우 다양한 사람으로 이루어져있다. 조선인포로감시인으로 지원해서 온 춘길, 어머니를 위해 온 문평, 반강제로 끌려온 남성. 일본인은 표창까지 받았던 야마가타군조, 전쟁 중 2명을 살해한 쿠로다. 이러한 구성은 당시 조선인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군에 지원을 했다는 것과 군인이란 이유로 일본인 취급을 받아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인이 2명, 조선인이 3명. 즉, 일본인으로써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 중에 실제 일본인보다 조선인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대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는 무난했다. 그 중에 나에게 가장 와닿은 인물은 이문평이란 인물이었다. 이문평은 어머니를 위해 군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형수가 되자 그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하고 감옥에서 매일 어머니를 그리며 눈물을 훔치는 여린 청년이다. 이문평은 매일 종이에 깨알같이 자신의 생각을 담은 편지를 써나간다. 이부분에서 내게 가장 와 닿았던 대사가 있다. 왜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매일 써가냐고 물었을때 이문평은 대답한다. “10년후일지 20년후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50년후가 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가 내 편지를 읽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공감해준다면 그걸로 행복할꺼같아요.” 이 대사에서 꿈을 펼치지도 못하고 져버린 한 청년의 슬픔이 느껴졌다. 이 대사는 2번, 3번 반복되는데 이문평을 연기한 황태인씨가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자신의 인생을 잘 표현해냈다. 또 대사하는 도중에 울어야 하는 부분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몰래 눈물을 훔치는 장면, 소리내서 서럽게 우는 장면에서 모두 실감나게 연기를 해서 내 자신이 이문평에게 감정이입이 돼서 감정이 간접적으로 전해져왔다. 하지만 배우와 관객은 조금 심할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옆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호응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벽을 하나 두고 그들이 하는 일방적인 이야기들을 그저 수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멀리서 바라보았을때 이 극의 설정들은 연출가의 의도가 잘 나타나있다고 본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의문으로 남는 것은 이 작품이 원작 맥베스와 과연 어떠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느냐는 것이다. 원작 맥베스에서 맥베스가 연극 내내 자신의 죄의 무게 때문에 괴로워하는것에 반해 이 극에서 포로감시인들은 자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것만을 주장한다. 과연 이 작품을 맥베스와 연결시키는 것이 옳은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것을 제외하면 아픈 역사 속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있던 그들의 존재에 대해 재조명하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고, 연출도 관객이 상황을 이해하기 쉽도록 해서 극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줬다. 하지만 배우와 관객사이에 너무 큰 거리감이 있었다는 것과 제목이 극과 부적합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00912_적도아래 포스터최종.jpg
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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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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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탈퇴회원)

    역사속으로 잊혀진 사건을 드러낸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끝나기전에 저도 가서 한번 봐야겠어요 후기 잘봤습니다~

    2010.10.16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