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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생존을 위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4

    조회 1770

  
생존을 위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적도 아래의 맥베스>


  사람들 대다수가 생각하는 악역이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역을 맡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진정으로 악함을 가지고서 악역을 행하는 사람만이 있는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에 의도되어서 악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에 의해 정의 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악역을 자처하는 사람도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적도아래의 맥베스>, 여기엔 생존을 위해 그리고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어쩔 수 없이 악역을 맡은  아니, 정확히는 떠맡게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이 연극은 역사 속에서 잊혀진 비운의 BC급 전범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일제 강점하에 포로수용소의 감시원으로 강제 징집되어 조선인 취급도 받지 못하고 일본에서도 외면받은 이야기를 주인공 김춘길은 일본TV의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덤덤히 풀어나간다. 그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극은 그때 당시의 시점으로 이동하여 전범인들이 얼마나 비극적인 모습으로 살았었고, 죽어갔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인 김춘길이 사형수로 수감되었던 싱가포르의 한 형무소에는그와같은 처지인 박남성과 이문평이라는 한국인 두명과, 포로감시원에게 지시를 내렸었던 야마가타. 그리고 상부의 지휘속에서 명령만 따랐었을 뿐이었던 일본군인 출신인 쿠로다가 함께 수감되었었다. 비스킷 두장. 뜨거운 태양 아래... 열악한 상황에서도 사형수를 벗어나기만을 바라던 그들에게 어느날, 사형집행통지가 내려진다. 야마가타와 박남성에게. 
 

  극의 중반부까진 전체적으로 무겁게 깔린 분위기가 이어진다. 그들이 살았던 열악한 환경과 비극적인 모습이 극의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지루함이 느껴질 때 쯔음에 그 지루함을 조금 해소해 주는 상황이 펼쳐진다. 바로 사형을 앞둔 마지막 날 밤의 장면이다. 박남성은 사형집행통지를 받기전까지만 하여도 동생에게서 온 편지로 형무소에서 해방되어 나갈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사형대에 나아가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야망과 양심사이,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의 선택들로 미루어 보면 맥베스라는 인물과 전범인들은 매우다른 상황에 놓여있는 악역들이지만, 작가의 말대로라면 그들은 어느 정도 피해자이며 어느정도 가해자이고주변 상황으로 인해 선택아닌 선택을 함으로써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는 점에서 그들을 비슷한 인생사를 겪은불쌍한 악역들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었지만 포로를 학대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를했다는 이유로 악역이라는 타이틀이 전가된 BC급 전범들. 그들에겐 대일협력자라고 조국에서 취급받아 비난을 받은 슬픔과 일본에게서도 냉대를 당해 사형 혹은 전범을 면하지 못했던 슬픔, 그리고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은,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여러가지 슬픔들이 있다. 수많은 왜곡된 상황과 전범이었다는 사실에 경멸적인 시선을 받아오면서도 열심히 살아왔고, 최선을 다해 그런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주인공의 모습에서 연극이 주고자 하는 메세지가 천천히 그리고 깊숙히 와닿았다. 무거운 연극이었지만 그 사이사이에 그들만의 소소한 웃음거리로 인해 더욱더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고, 뜨거운 태양아래였지만 현실감있었던 음향효과와 배우들의 연기덕분에 극의 막바지에 달할수록 몰입이 잘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범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한 역사를 알게되었어서 좋았지만, 좀 더 적나라하게 그들의 삶을파고 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들기도 하였다.
 

  이 연극을 보았다면 적어도 그들에게 덮여씌어진 가면속의 비극을 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삶과 슬픔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해도 잊혀진 역사를 되살리고 제대로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역사 속의 슬픔을간직한 반딧불의 영혼을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슬픔이 조금이나 덜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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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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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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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탈퇴회원)

    악역이란 단어로 그들의 모습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인상깊네요 잘읽었습니다^^

    2010.10.17 15:35

  • (탈퇴회원)

    비극적인 전범들의 삶과 그를 느끼는 마음이 와닿습니다. 정말 감명깊은 후기입니다. ^^

    2010.10.17 15:26

  • (탈퇴회원)

    연극을 보진 못했지만 이 리뷰를 통해서 우리나라 역사 비극의 한 단면이 절실히 느껴지고, 선택할 수 없었던 운명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의 슬픔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맥베스와 전범들이 자신들이 의도한 선택 외에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인해 악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 리뷰 속 비유가 인상 깊네요. 이 연극을 통해서 전쟁으로 인한 비극과 전범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 의미 있는 연극관람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010.10.17 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