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운명이여 와라. 다 상대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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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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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을 오가며 외관상 깨끗하고 소박한 명동 예술 극장 안에 들려 작품 홍보물을 볼때마다 흥행보다는 대체로 뚝심있는 공연을 올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맥베스를 떠올리면 "fair is foul and foul is fair" 정도의 문구 정도가 스쳐간다. 이 연극의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따온 제목은 이목을 끄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같은 대중을 대상으로 흥행하기 쉽지 않은 무거운 주제가 아닌가 했다.
'누굴 위해, 누굴 미워해야하나' 하는 외침이 연극이 끝나 집에 돌아온 지금도 귀에 생생한 걸 보면 혼자만의 기우였던 셈이다. 태국을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역사 속의 전쟁과 힘없는 개인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춘길의 운명과 우리네 운명의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삶과 죽음 앞에 결과를 기다리는 전범이 식사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는 사실도 누구나 기가 막히게 와닿을 것이다. 극 중 클라이막스가 지나갔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극의 진행방식은 서서히 그리고 차분하고 담담하다. 전쟁 앞에 무력하고 처참한 개인의 운명을 최후에 살아남은 자의 회고 방식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관객은 더욱 서럽다. 전쟁이 끝난 지금 우리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이 연극을 전쟁을 주제로 한 가련한 조선인의 삶의 다큐 형식으로 가두어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각자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답을 모르지만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나약한 운명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전쟁 속 모순을 담은 슬픔을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속에 정의를 찾아봐라. 힘없는 사람들의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은 어느때보다 철저한 정의라는 잣대에 부딪힌다. 다큐를 찍는 감독은 스폰서가 떨어져나갈까봐 역사적 사실보다 대중을 향한 자극적인 제목을 택한다. 돈을 향한 욕망인지 부양하는 가족과 먹고 살자고 하는 운명인지 우리 스스로 조차 때로는 불분명하다. 하다못해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져도 때가 되면 배는 고프다는 사실이 전범의 배고픔과 뭐가 다를까. 우리네 삶이 그렇다. 답없는 인생의 끝이 오면 짓밟는 자나 짓밟히는 자나 우리는 허공을 떠도는 반딧불이가 되려나. 이런 푸념 속에도 크게 외치고 싶다. 운명이여 와라. 다 상대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