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6월
[어린이청소년극하는 사람들]
청소년의 감정들. 하나.
김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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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할 땐, 왠지 모르게 희미하게 떠오르는 어떤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청소년 시절 언제나 내 몸 속 구석구석 가득 차올라 있어 굳이 관심 갖지 않았던 그 감정들, 하지만 이젠 문득 그리워져 오래된 사진첩을 보듯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그런. 그런 감정들을 내가 드문드문 그리워하곤 하는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즐거운 두려움이 있다. 나의 한계가 드러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마주하고 싶은 두려움. 그런 두려움 앞에선 심장이 미칠 듯 두근거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다. 바로 그때, 그 두려움에 기꺼이 달려들게 된다면 그건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 순간의 두근거림과, 함께 차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을 계속 느껴보고 싶어서일까?
시즈쿠 세이지는 바이콜린 잘 켜던데? 전공도 할 거야?
세이지 나만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아. 연주가보다는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고 싶어.
(중략)
시즈쿠 부러워. 벌써 미래를 설계했구나. 나는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는데.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어.
세이지 나도 아직 확실하게 간다고 정해진 건 아냐. 매일 부모님하고 싸우기만 해. 간다고 해도 진짜 재능이 있는지 여부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니까.
시즈쿠 저… 지금 여기서 읽어주실 수 있으세요…? 몇 시간이든 기다릴게요.
할아버지 하지만 어렵게 쓴 작품일 텐데,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읽고 싶다만…
시즈쿠 재미없으시면 안 읽으셔도 괜찮아요. 아니, 폐가 되지 않는다면… 그게… 가슴이 떨려서 도저히…
할아버지 그래 알았다. 지금 네 앞에서 읽어보마.
(중략)
시즈쿠 시즈쿠 양, 다 읽었다. 고맙구나. 아주 재밌었어.
시즈쿠 아뇨! 아니에요!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쓰고 싶은 것들이 뒤죽박죽이에요! 뒷부분은 영망이고요! 저도 알고 있는 걸요!
할아버지 그래, 거칠고 솔직하고 미완성이더구나. 세이지의 바이올린 같았어. 시즈쿠가 네 안에서 끌어올린 원석을 이 할애비는 똑똑히 봤단다. 아주 잘 썼더구나. 멋진 소녀 작가야. 허둥댈 거 없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연마하거라.
시즈쿠,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린다. 한동안 서럽게 운다.
시즈쿠 저는… 저는… 쓰고 나서 깨달았어요. 쓰고 싶은 마음만으로 안 되는 것을, 좀 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요. 하지만 세이지가 자꾸만 앞서 가니까… 무리를 해도 쓰려고… 저는 무섭고… 무서워서…
두근거림과 두려움 사이. 그 사이에 놓여있을 때 청소년 시절의 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과 미래에 대한 바람은 언제나 나를 이러한 두근거림과 두려움 사이에 위치시켰다. 그럴 때마다 난 그 사이의 순간에 더 치열하게 머물고 싶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미래에 대한 바람에도 내 한계와 직면해가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물론 그러지 못한 순간이 더 많았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적어도 마음만큼은 항상 그런 상태를 추구했다. 그리고 나에게 그건 마치 끝을 알 수 없이 긴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는 것과 같았다. 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두려움과 두근거림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터널의 끝에 손을 내밀어주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대체로 그 끝에서 난, 시즈쿠의 할아버지와 같은 누군가를 만나진 못했다. 내 치열함의 정도가 시즈쿠의 그것만큼은 아니었을 수도, 혹은 정말로 나에게 사랑을 위한 혹은 미래를 위한 재능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터널 속에서 느낀, 두려움과 두근거림 사이에서 생생하게 느낀 설명하기 어려운 그 수많은 섬세한 감정들은 내 몸 속 구석구석 아로새겨져 지금까지도 가끔씩 내 온몸을 뒤흔들며 눈물을 터트리게 만들기도 한다. 두근거림과 두려움 사이, 나는 언제까지 그 사이의 순간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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