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동물원> 반짝반짝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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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영
등록일 2014.08.17
조회 2717
1. 뽑을 수도 없는, 아픈 이빨 같은.
유리 동물원 보면서 내내 생각난건 오발탄, 그리고 비오는날 같은 한국 단편들이었다.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이름도 로라, 톰, 아만다인 이 작품에서,
무대도 엄청 미쿡미쿡한 이 작품에서,
한국 전후세대 단편의 냄새가 났다.
우리나라에서 6.25를 다룬 많은 소설이
로라 같은 캐릭터를 그린다.
전후에 어딘가가 모자라게 되어버린, 다리를 저는, 주인공이 지켜야 하지만 지킬 수 없는,
그래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애처롭고 고통스러운 누이.
그러나 결국은 비겁하게 주인공이 버리고야 말았던 누이.
톰도 오발탄의 철호랑 닮았다.
무기력하고 비겁한 가장.
비어버린 아버지의 빈자리에 타의로 인해 억지로 구겨져 넣어져 버려야 하는,
잘못 쏘아진 탄환 같은 인간.
주인이 억지로 떠맡기고 간 짐을 지키고 있는 사람처럼,
가족을 버리지도 못하고 데리고 도망가지는 더더욱 못하고,
정거장에 멍하니 서 있는 그런 사람.
아만다는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속에 나오는 엄마 같은 사람이었다.
억척스럽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과거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그 와중에 자신의 현재에 대해 자존심 세우는-.
이런 캐릭터들 자체가 매력적이였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분명 어디서 본 듯하고 어디서 들은 듯한 캐릭터들.
황석영씨가 한 말처럼 '전쟁, 독재, 분단은 우리의 일상'이었으므로
내 주변에도, 이 연극을 보는 사람들의 주변에도 이런 캐릭터들은 존재하고 있다.
로라처럼 다리를 절고 아만다처럼 과거의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톰처럼 무기력하고 방황하는 청춘은 현재 우리 어머니, 아버지, 조부모님 세대의 "일상"이었으므로.
무슨 미치광이, 천재, 엘리트쓰레기, 이런 캐릭터에 비해서는 너무 고리타분한 캐릭터이고 으윽... 보기에 너무 힘들고 처절한 캐릭터들이었는데, 내가 인터미션 때 귀동냥으로 들은 칭찬들은 또한 "아 아만다 정말 우리 할머니 같아.", "우리 엄마 같아.", 이런 평가들이었다.
분명 질척하고 빛이 많이 들지 않는 뒷골목, 다리 저는 누이가 내려가기 힘든 계단, 달동네 꼭대기에 뜨는 달,
이런 것들이 너무나 진부하고 많이 들어봤기에
더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2. 깨지기 쉬운 반짝임
이렇게 진부한 배경 속에서 빛나는 건 역시 유리동물원.
로라가 꿈꾸는 세계.
사실 개인적으로 로라와 아만다가 더 빛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톰이.... 너무........ 많이....... 빛나서........
(연기를 잘한 거니까....... 넘어가고..... 잘생기셨더라구요.... 배우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이런 가난한 집 안에서 로라가 애지중지하는 유리동물원은
당연히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를 가장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소재.
단편들에서 보는 것처럼 아내가 아프고, (운수좋은 날),
누군가가 범죄에 빠져들고(오발탄), 이러지 않아도
그냥 아... 저 힘든 상황속에서 로라가 그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유리동물원이라는 것.
특히 애지중지하는 유니콘...
우리 모두 유니콘 꺼낼 때, 꺼내지 마=______= 라고 말하고 싶었잖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
핀 조명막 떨어지고 유니콘이 막 빛날 때 이쁘다, 라는 생각과 함께 아, 깨뜨릴 거 같으니까 높이 들지 말아줘, 라고 자연스레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ㅋㅋ
그리고 마침내는 그것이 깨지고 짐이.....어휴.... 본색을 드러낼 때, 우리 모두 오지말았으면 했던 바로 그 상상이 걷히고 난 뒤의 처참한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짐이 자기는 껌을 단물이 빠지기 전에 뱉는다고 했을 때부터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어...)
이게 결국 이 작품의 백미이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로라는 처음부터 유리 유니콘 같은 아이였다.
다리가 하나뿐인 아이. 유니콘처럼 전설속의 동물.
특별하고 싶지만 사실은 소외된 아이.
자신의 유리같은 멘탈을 어쩔 줄 몰라서 마냥 지키고만 있다가
꽁꽁 감추고 반짝이는 공상 속에서만 참고 살다가
타인의 손에 의해 쉽게 바스라지는 아이..........
3. 총총총평
여러 가지 의미로 아쉬운 점도 있었고, 좋은 점도 있었다.
한태숙 연출님 단테의 신곡을 본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한국 냄새가 물씬.
유리동물원은 너무나 미쿡미쿡한 배경, 말투, 소재를 가졌기에,
그리고 포스터가 완전 모던했어욤.
그런데 막상 보니 옷과 소품과 이름만 외국걸 쓰고 모든 걸 다 한국걸로 바꾸셨다.
정서, 캐릭터, 말투-.
그런 점이 장단점이었던 것 같다.
한국 단편선 어디선가 본듯한 것들이기에 좀 지루한 면도 있었고.(러닝타임 길어유ㅠㅠㅠ)
결국 그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본 사람들이 나오기에 친숙해서 더 웃을 수 있고, 긴장 풀고 볼 수 있어서 좋은 면도 있었다. 김성녀 배우님 연기가 빵빵 터지고 완전 친숙했던 건 아마도 그런 정서와 캐릭터가 더해졌던 게 한 몫하지 않았을까? 정말 아만다는...........:)
그런데 결국 이런 정서들이 나한테는 처절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내가 20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어찌보면 1945년 뉴욕에서 초연된 미국작품이랑 1940,50년대의 한국 문학의 일관성,
그러니까 시대 속에서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장애자가 된 한 가정의 이야기를
이 작품에서 뽑아낸 것 자체도 이 작품의 강점일지도.
그리고 사실 이 작품의 강점은.......연기임.
정말로 연기임ㅋㅋㅋㅋㅋㅋㅋ 이승주배우님... 김성녀 배우님... 멋져용..
아니 김성녀 배우님 아만다 연기할 때 대사 진짜 많고 정보도 사실 꽤 많고,
그리고 가끔씩 외국 단어들 나오는데
안들리는 대사 하나 없고 이해안되는 대사 하나 없다.
그게 정말 기초처럼 보여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아무리 딕션이 아나운서라고 해도 캐릭터에 묻혀서 전달하지 않으면 세상에 그렇게 안들리는 말이 없다구!
이승주 배우님........은......
잘생기셨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아니 것보다 톰이 원래 이렇게까지 어퍼컷이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퍼컷 여러 방 맞았어요.
단순히 무기력하고 비겁하고 책임감에 짓눌린 아버지 대용품 아들, 몽상가 소설가라기보다는
타이타닉에 디카프리오 같았어요..... (전적으로 개인 의견ㅋㅋ)
여튼, 잘 봤습니다. 한 번 쯤 볼만 한 것 같아요.
프로그램북에 써놓으신대로 정말 회자가 많이 되는 작품인데
이렇게 크게 공연하는 건 거의 본 적이 없었으니까,
공연을 볼 수 있던게 행복이었음>_______<bb
고생하셨습니다!!
p.s. 명동예술극장 자주 이용(?) 하는데 제일 맘에 드는 극장.
사실 명동의 랜드마크라는 이유 때문에 제일 맘에 듬.
복작거리는 거리 한 곳에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는 것도 좋고, 로비가 쾌적한 것도 좋고(크리스피 도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앉을 곳만 몇 개 더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소만), 완전 프로시니엄이라 첫줄왼쪽에서 봤다가 고개빠지는 줄 알았던 적도 있지만 나름대로 소리(?) 같은 것도 잘 들리는 것 같고, 심지어는 바로 옆에 오설록이랑 명동교자가 있는 것 까지도 맘에 들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공연 많이 해주세요!^.^ 자주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