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가슴속의 아리랑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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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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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했던 역사 안에서의 슬픈 존재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적도 아래의 맥베스’.
처음 연극은 일본의 TV 프로그램의 외주제작회사가 태국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김춘길.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인 전범들을 수용하고 있는 곳에서 그의 동료들 박남성과 이문평, 쿠로다, 야마가타와 함께 수감되어진다.
수족관 안의 물고기처럼 취급받고 하루 두 개의 비스켓, 그리고 형무소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는 사형대로 올라가는 계단을 매일 바라보며 뜨거운 태양 아래서 그들은 정신적 고통을 받는다.
그러다 어느날 박남성과 야마가타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사형 전날 밤, 박남성은 쿠로다와 멕베스를 공연한다.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한 맥베스처럼 자신 역시 스스로 사형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남성은 말한다. 그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아리랑을 목청 터져라 부를 때 살고 싶은데 죽어야 하는 슬픔이 전해졌다.
사형당하는 순간에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는 김춘길의 애절한 목소리 속에 비록 지금은 전범으로 취급받고 사형당하지만 나는 조선인이며 내 몸속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듯 했다.
과거의 김춘길과 현재의 김춘길의 상황을 넘나들면서 그에게만 비춰지는 파란색 포인트 조명은 그의 우울한 내면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은 동료들 몫까지 살아남기로 약속하고 왜 이렇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말하기로 약속한 김춘길은 다큐멘터리 제작 감독의 추궁에도 아무소리 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마지막장면에 나오는 반딧불이들은 표면적으로는 김춘길의 친구들의 영혼이었지만, 결국엔 억울하게 사형당했던 전범들을 상징하는 매개채일 것이다.
이문평의 편지를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세상에 공개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해 주었다는 김춘길의 말 속에 그간에 겪었던 내면적 고통과 살아도 사는게 아닌 번뇌가 함축되어 있었다.
적도 아래의 멕베스를 감상하고 나서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역사의 일부분을 눈 앞에서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던 멋진 시간이었다.
김춘길과 그의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불렀던 아리랑은 몇초 만에 끝났겠지만, 그들과 나의 가슴속에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