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고전연극탐험Ⅰ "동 주앙"> 연극 동 주앙 관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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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1.04.09
조회 2303
연극 동 주앙 관람 리뷰
3월 27일 명동 예술극장에서 연극 <동 주앙>을 관람 하였습니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명동 거리를 가로질러 찾아간 명동예술극장은 간판으로 난잡한 건물들 사이에서 고고한 자태로 예술적 기품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삭막한 도시 속에서 문화의 샘터를 발견한 듯한 기분으로 극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 덕분에 여러 공연 배너들이 눈에 잘 띄었습니다. 배너들에는 공연 정보뿐만 아니라 작품 <동 주앙>에 대한 세세한 설명까지 친절하게 적혀있었습니다. 팜플렛과 함께 배너를 읽어보며 작품에 대해 전반적으로 숙지한 뒤 관람을 위해 공연장으로 입장하였습니다.
공연정보
<동 주앙>은 17세기 스페인의 ‘티르소 데 몰리나’가 처음으로 ‘돈 후안’이라는 인물을 극화시킨 것이,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건너가 희극작가 ‘몰리에르’에 의해 ‘동 주앙’으로 재탄생 된 것입니다. 후에도 여러 연극과 영화로 끊임없이 만들어진 <동 주앙>은 197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국에서 공연되었습니다. 32년 만에 부활한 이번 <동 주앙>은 <에이미>,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등 총 8편의 연극을 연출하여 ‘제 12회 김상열 연극상’을 수상한 ‘최용훈’의 연출과 조만수의 번역, 김도현, 이율, 권성덕, 정규수 등 베테랑 배우들의 출연으로 새롭게 각색된 작품입니다. 3월10일부터 4월3일까지 명동예술극장(1644-2003)에서 공연되며, 매주 화요일은 공연이 없으니 관람하실 분들은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작품정보
주인공 ‘동 주앙’은 지독한 바람둥이로, 사랑을 믿지 않으며 세상 모든 여자를 다 자신의 쾌락 충족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남자입니다. 그는 산수를 제외한 어떠한 종교나 사회적 정의도 믿지 않으며, 법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주의자로써 귀족 신분에 상관없이 온갖 방탕한 생활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의 하인 ‘스가나렐’은 주인 동 주앙의 비도덕적인 행실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겉으론 주인이 전부 옳다는 듯이 아첨하는 이중적인 인물입니다. 공연은 하인이 동 주앙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가 되다가 결말에 가서는 동 주앙이 죽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동 주앙은 스가나렐을 데리고 아내 엘비르 몰래 눈여겨 두었던 시골 처녀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둘은 시골로 가던 도중 엘비르에게 들켜 저주가 담긴 비난을 받게 되지만, 동 주앙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른 사랑을 찾기에만 몰두합니다. 이미 약혼한 시골 처녀를 둘 씩이나 유혹하여 희롱하던 동 주앙은 엘비르 가문의 기사들에게 쫓겨 숲으로 도망을 치던 도중에 한 기사를 구해줍니다. 그런데 그 기사는 엘비르의 명예를 되찾고자 동 주앙에게 복수 하기위해 쫓아온 엘비르의 오빠였습니다. 동 주앙은 기사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 덕분에 숲을 무사히 빠져나가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이 죽인 기사의 무덤을 발견하고 기사의 석상에게 저녁식사에 초대한다며 장난을 치는데, 석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자 놀란 동 주앙과 스가나렐은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집으로 온 동 주앙은 돈 갚으라고 독촉하는 빚쟁이를 현란한 말솜씨로 돌려 보내고, 방탕한 생활을 꾸짖으러 오신 아버지의 훈계도 흘려 들으며, 그를 용서하러온 아내 엘비르의 충고조차 무시합니다. 그리고는 동 주앙이 저녁식사를 하려하자 갑자기 기사의 석상이 집으로 찾아와 동 주앙에게 뉘우치지 않으면 천벌이 내릴 것이라며 경고를 하고 갑니다. 그러자 동 주앙은 겉으로는 뉘우친 척 가식의 가면을 쓰고는 전과 똑같이 계속 즐기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때 석상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동 주앙을 꾸짖으며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 동 주앙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감상
결론부터 말하자면 솔직히 재미없었습니다. 남들이 폭소하며 박수칠 때, 전 왜 웃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웃음을 억지로 지어내려는 듯 하는 대사와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엘비르가 너무 과장되게 화를 낸다던가, 공연 중간 중간에 배우들이 퇴장할 때 들리는 메아리 효과 등의 것들이, 관객의 웃음을 긁어내려는 시도 같아서 조금 불편했습니다. 또 공연 도중 함부로 웃을 수 가 없었습니다. 맘 편히 웃기에는 배우들의 대사가 묵직한 무게감과 날카로운 가시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 주앙이 위선의 가면을 쓰고, 관객을 향해 자신보다 더 올바르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냐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그의 대사가 관객들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박혀 들어가는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작자 몰리에르가 당시 프랑스 귀족사회를 꼬집어 조롱하려했던 의도는 쉽게 느껴졌지만, 희극 같지 않은 희극이라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어이가 없었던 부분은 바로 결말입니다. 동 주앙이 죽인 기사는 스가나렐의 입으로만 언급되고는, 갑자기 죽은 기사의 석상이 등장하여, 공연 끝에 가서 동 주앙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점이 허탈했습니다. 죽은 기사가 이야기의 결말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뮤지컬 <동 주앙>에서처럼 동 주앙과의 결투 장면을 넣는다던지, 둘이 싸우게 된 경위 등을 좀 더 자세하게 전달 해주었어야 하는데, 관객에게 동 주앙이란 인물을 이해시키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 같았습니다. 원래 원작자의 작품 스타일이 급작스런 결말이라고는 하는데, 새로 각색할 때 결말에 조금 변화를 주어 공연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갖는 의미
뚜렷한 기승전결 따위는 찾아보기도 힘든 이 연극 <동 주앙>은 제목 그대로 동 주앙이라는 인물의 행동과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공연의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동 주앙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와 사소한 몸짓 하나, 하나에 전부 녹아 들어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동 주앙의 태도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17세기 프랑스 전역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심오한 질문이 떠돌던 고전주의 시대에 몰리에르가 내놓은 해답이 바로 동 주앙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 곧 살아가는 원동력인, 이 세상 모든 여인들의 가장 위대한 연인인 동 주앙은 여성을 쾌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사랑을 믿지 않는 부정적인 남자입니다. 한국의 현대 사회에는 옛날과 다르게 짧은 만남의 사랑이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세대 간의 생각도 달라 지게 되고 문화도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싫으면 그만인 식의 가벼운 관계로 인식되며, 매년 이혼의 사례들이 늘어나는 사회현상을 보고 있자니, 썩 바람직한 일들이 라고는 생각 되지 않습니다. 17세기 프랑스를 조롱했던 동 주앙은 이러한 한국의 현대사회에도 비웃음을 지어 냅니다. 세상 모든 여인이 자신의 쾌락을 위해 존재한다며 사람과의 만남을 가볍게 여기고 결혼을 장난으로 대하는 태도는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비판과 야유를 보냅니다. 또한 동 주앙은 신에게 매일 기도하는 거지에게, 당신은 언제나 신께 기도하는데, 신은 왜 당신에게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느냐며, 당신이 신에게 욕을 하면, 돈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신을 모욕하는 행동이지만, 그와 동시에 잘살게 해달라고 기도만하고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지 않는 점을 비아냥거립니다.
“너 처럼.” 동 주앙은 공연 내내 관객들에게 외침의 비수를 던집니다. “당신들은 나보다 더 올바르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나?”, “당신들은 신앞에 당당할 수 있나?” 저는 이 비수에 맞았기 때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멋있었던 명대사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가식과 위선으로 얼룩진 더러운 사회는 시대에 관계없이 어느 곳에나 존재 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결말 부분에 가면 동 주앙의 말에 다른 배우들이 극에서 가식과 위선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들며 자신들은 부끄러움이 없음을 표합니다. 그들의 모습에 그는 우습다는 듯, 조소를 띄우다 공연장 전체가 울리도록 웃으며 “그래, 가보자-지옥.”을 외치며 당당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신을 믿지 않아 지옥조차 두려워하지 않은 동 주앙은 한국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예수쟁이들에게도 손가락질 합니다. 폭력적이며 비난 받아 마땅한 난봉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우리에게 그를 비판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한지를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공연 맨 처음에 스가나렐이 무대 한 켠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입체적인 그의 성격 때문에 가장 맘에 들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흡연은 사교에 능해질 수 있는 수단이니 담배 많이 피시라고 관객에게 권합니다. 술뿐만 아니라 담배 까지 권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동 주앙의 행동을 비난하면서도 그 앞에선 아양을 떨며 아부하는 그는 그의 주인이 죽자 “내 월급!”을 외칩니다. 자본주의로 사회 정의가 얼룩져 각박하고 살벌해진 현대사회의 모습을 아주 짧은 외침으로 담아낸 연출가 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리뷰를 마치며
공연을 보고난 후에는 별로 남는 것이 없었는데, 리뷰를 쓰고 나서야 연극이 주는 교훈과 의미들을 더 확실하게 알게 되고, 나름대로 수준 높은 사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예술극장에서 연극을 보니 나도 문화인이라는 자각도 들어 왠지 자부심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좋아서 쓰는 리뷰가 아닌 강제적으로 쓰는 글이 였기 때문에 쓰는 내내 힘들고 지쳤습니다. 그래도 한 편의 글을 써냈다는 성취감이 들어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