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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도 아래의 맥베스> 거대한 뿌리에 의해 엉켜버린 개인의 절규
  • 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7

    조회 1785

 

거대한 뿌리에 의해 엉켜버린 개인의 절규 「적도아래의 멕베스」


  

  명동예술극장과 극단미추가 함께 엮은 공연입니다. 155분이라는 짧지 않은 공연시간 동안 무엇을 이야기하고, 꾸려나갈지 기대하였습니다.

 

 작품은 과거, 싱가포르 창이형무소에 갇힌 포로감시원들의 모습을 그립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전쟁은 끝났지만 포로감시원들은 오히려 전범으로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합군의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죄명은 분명 흉악한 전범이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 사회에서 가장 여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당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암울한 상황에서도 남성과 춘길을 비롯한 수감자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리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실낱같은 희망을 쥔 채 춘길은 가까스로 살아남았습니다. 억울하게 전범으로 기록된 수감자들의 삶을 가슴에 품은채로 말이지요.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다큐멘터리 촬영에 협조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순탄치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가 촬영 중단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PD는 제작 지원비를 얻어내기 위해 춘길로부터 대중들의 흥미를 끌만한 자극적인 내용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더욱 씁쓸한 것은 진실을 중요케 생각지 않는 카메라 스텝의 모습입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 먹고살 거리이지 어떤 것이 진실이냐가 아닙니다. 춘길의 눈에는 오히려 진실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카메라스텝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느껴집니다. 오디오 스텝은 진실을 희구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상황을 보는 데 있어서 아직은 미숙하고 감정적입니다. 그러나 젊고 패기넘치는 모습에서 춘길은 오디오 스텝에게서 희망을 발견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맥베스」가 자신의 욕망으로 인한 운명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적도아래의 멕베스」는 사회와 역사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개인의 비극적인 운명을 잘 표현해내었습니다. 두 멕베스에게 있어서 운명은 너무나 무겁기에, 자신을 더욱 옥죄어옵니다.

 

 재일 교포로서 정의신님에게,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니게 된 전범 포로감시원들의 삶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고통스런 삶을 보내야 했던 포로수용소 전범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 나아가 역사 속에 짓눌린 개인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극의 백미는 단연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사형판결을 받은 후 남성의 절규,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던 쿠로다의 눈물은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반딧불이 역시 극의 수준을 높여주었습니다. 스크린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반딧불을 통해 아름다운 시각적 효과를 재현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하나가되어 반딧불을 바라보는 극중 인물들의 모습은 정겨움을 자아냈습니다. 또한 극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를 반딧불을 통해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였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극중 인물인 PD입니다. 극 초반에는 PD의 주도면밀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제작비에 얽매이면서 진실을 보려하지 않고, 자극적인 정보만을 뽑아내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때부터 PD는 다소 부정적인 인물로 변모합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촬영이 무산된 이후로 순순히 오디오 스텝에게 프로그램의 권한을 맡기며 ‘진실을 알고 싶었기에 제작비를 얻어야 했다’고 고백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만했습니다.

 

 그리고 희망찬 내일이라는 주제로 극을 마무리 하기위해, 후반부에 들어 내용들을 약간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디오 스텝이 작품을 맡게 되는 것 하며, 완고할 것만 같았던 PD의 고백 등은 극 전개에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단지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인데, 전범으로, 민족의 죄인으로 기록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흉악범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들에겐 인간적인 정이 있습니다. 「적도아래의 멕베스」는 이렇듯 사회와 역사 아래 짓눌린 개인의 삶을 회고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개인, 역사 간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관객들에게 제공합니다. 자칫하면 무겁게 흐를 수 있는 내용을 여러 가지 극적 요소를 통해 잘 활용하여 표현한 훌륭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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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아래의 맥베스

- 2010.10.02 ~ 2010.10.14

- 평일 7시 30분 / 토요일, 일요일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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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 이상 관람가 // A석 안내- 무대 장치를 넓게 사용하므로, 객석 3층의 경우 무대 일부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사오니 예매 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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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탈퇴회원)

    리뷰 잘 봤습니다. 카메라 감독에 대한 평가가 공감됩니다. 왜곡된 진실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도, 진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세태가 더욱 무서울 수밖에요. 결국 카메라 감독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 많아질수록, 남성과 문평 같은 수감자들은 완전히 잊혀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2010.10.17 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