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전쟁후에 남는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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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5
조회 1765
뮤지컬을 본거라곤 어렸을 적 흥부와 놀부를 본 기억이 전부인데 이번에 우연찮게 명동예술극장에서 적도아래의 맥베스를 봤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이 적도아래의 맥베스의 포스터였다. 포스터를 보니 연극의 무게가 느껴지는 거 같았다. 맥베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씌어진 연극인데 일본의 태평양전쟁에 동원되어 전쟁범죄인으로 사형 대에 희생된 한국청년들의 이야기다.
별로 뮤지컬에 관심이 없던 지라 별 기대 없이 봤는데 보면 볼수록 연극의 매력에 심취되었다. 배우들의 연기에 심취되고, 신기한 연출에 심취되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내용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사형선고를 받으며 절망하는 순간에는 나도 같이 괴로워하게 되고 가족의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같이 기뻐하게 된다. 연출 또한 신기했다. 태면 철도를 무대로 시작하다 스크린을 올리니 새로운 무대가 등장했다.
솔직히 전범이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는데 조선인도 일본인으로 취급 받아 똑같이 일본인으로 재판 받고 처형당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조선인이면서 조선인일 수 없고, 그렇다고 일본인도 아닌 존재 대일본제국의 병사라고는 하지만, 군속으로 이등병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존재 전쟁 중에는 일본인대신 온갖 굳은 일 다하고 전쟁 후에는 전범이란 오명으로 친일누명까지 쓴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실화라는 게 정말 충격적이었다.
작가 또한 제일교포출신으로 실제인물인 이학래씨(극중에선 김춘길)를 직접 인터뷰하여 극을 더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 거 같다. 연극 내내 무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중간중간에 코믹요소가 있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맥베스와 같이 마녀의 부추김을 이유로 죄를 거듭해야 했던 그들의 젊은 날. 하지만 그들의 희생을 위로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맥베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