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아래의 맥베스> 적도에서 부르짖은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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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퇴회원)
등록일 2010.10.15
조회 2001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2010.10.2.~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한다
. 이 작품의 시대적인 배경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 일본은 연합군의 포로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조선에서 젊은이
3000명을 동원한다
. 그리고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에서 일본군의 무기처럼 소모됐다
. 이들이 전쟁 중에 포로감시원이 된 이유는 조선의 청년들은 일본에 도움이 되는 감시원일이나 아니면 탄광으로 가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기 때문에 포로 감시원일을 선택했다
.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들 중
129명은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연합군의 의해
B, C급 전범으로 처리됐고
23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일본의
A급 전범들은 단
7명만이 처형되었다
. 그들은 일본인도 아니고 조선인들에게 외면받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 이 작품은 그들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 몇 안되는 전범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조선인
129명의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다
.
공연의 시작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촬영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전범들의 수용소가 있는 태국의 논프라덕역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 포로 수용소의 조선인 감시원인 김 춘길의 증언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다큐이다
. 증언을 하면서 중간 중간에 회상장면으로 김 춘길이 전범수용소에서 있었던 일들이 공연이된다
. 그 안에서 있는
, 죽음을 기다리는
5명의 전범들의 이야기이다
. 억울한 조선인들의 이야기와 일본 황제의 표창을 받은 일본 충신까지 그곳의 전범들은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 그 속에는 한에 대한 표출과 억울함을 표출하고 있다
.
여기서 작가는 전쟁의 희생양인 일본군 최하위 집단이 포로감시원인 조선 전범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일본내에서는 외국이라는 이유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한국 내에서는 친일파
, 일본군의 앞잡이라는 오명이 씌워진 채 가족들에게 외면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
일본에 사는 한국계 작가로서 정의신은 무대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버림받은 그들의 잊힌 과거를 되살린다
.
이를 통해 우리에게 제국주의적 시스템
,
전쟁이 야기한 비극을 말하고자 한다
” -
연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
“
한국인 군속들을 주변의 유혹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
‘
맥베스
’
에 비교했다
”
며
“
그러나 극중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파국은 그들이 자초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남겼다
.
최종판단은 관객에게 맡길 것
” -
정의신의 말을 인용
작가의 의도대로 우리 관객들에게 많은 의문을 남기고 연극은 막을 내린다
. 과연 전범들이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희생된 희생양인지 아니면 자신의 선택을 책임져야하는 당연한 의무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
무대는 막이 오르기전까지는 철길하나만 보였다
. 처음에는 그것이 다 인줄 알았다
. 무대가 상당히 작구나라고 생각하고 연극의 시작을 기다렸다
. 시작을 하고 나니 뒤쪽에는 전범들이 지냈던 수용소와 사형대
, 그리고 음수대까지 보였다
. 그 간결한 무대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철길이였다
. 늙은 김 춘길은 철길을 보면서 과거에 지냈던 전범 수용소를 기억하고 젊은 김춘길은 그 철길 때문에 수용에 갖혀있다
. 음향과 조명은 대체로 무거운 톤 이였다
. 아마도 소재의 무거움을 잘 표현하려다 보니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무거운 쪽으로 간 것 같다
.
여기서 등장하는 배우는 총
12명이 나온다
. 김 춘길은 과거와 현재에 동시에 등장하고 현재 인물들과 과거 인물들의 교류는 김 춘길 밖에 없다
.
현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PD와 카메라맨 그리고 음향감독이 나오게된다
. 이들은 다 각자 다른 임무에서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 PD는 현실에서 원하는 그런 장면을 담기위해서 짜놓은 틀에 맞춰서 연출을 한다
.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음향감독은 불의를 참지 못하고 진실을 밝히고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카메라감독은 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현실 때문에 옳은 소리도 할 수 없는 현대의 가장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 김 춘길의 노인역할은 진실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밝혀야 하는 사명을 가진 인물로써 나오게 된다
. 과거 부분에서 인물인 야마가타 타케오는 말없이 계속 주위만 맴돌고 있다
. 자신의 잘못을 묵언으로 반성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 하지만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서는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는 그런 인물로 등장한다
.
과거속에 인물들은 김 춘길과 그리고 그의 동료
4명이 등장하게 된다
. 박남성은 성격이 강한 남자로 그 수용소 안에서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맡고 있다
. 이문평은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캐릭터로 자신의 억울함을 글로 쓰면서 후세에 이 글이 조선의 전범들의 억울함을 알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 쿠로다 나오지로는 일본군 병사였지만
2명을 살해한 죄로 수용소로 끌려와서 수용소안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 야마가타 타케오는 포로 감시원들을 감시하고 명령을 내리는 역할을 맡아서 전쟁이 끝난후 그에게 책임을 물어 전범으로 낙인 찍힌다
.
이 연극에서 쿠로다 나오지로의 역할을 맡은 최 용진 배우의 연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 중재자의 역할을 하면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특성을 잘 표출해주었다
. 물론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 모두들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 조금 오버스러운 말투가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역할들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연습 한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 그래서 막이 끝나고 배우 한사람 한 사람이 인사를 할 때 박수를 제일 크게 받은 사람이 쿠로다 나오지로의 역을 맡은 최 용진 배우인 것 같다
. 나뿐만 아니라 같이 연극을 봤던 관객들도 그렇게 느끼나 보다
.
이 작품 속에는 기차길과 기차가 등장하게 된다
. 기차는 철로가 있어야만 달릴 수 있는 의존적인 매개물이다
. 그리고 기차는 항상 종착역을 향해 달린다
. 여기서 기차의 종착역은 전범들의 죽음을 나타내는 의미일 것이다
. 하지만 기차는 종착역에 도착을 하게 되면 새로이 출발을 하게 된다
. 이렇게 기차는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전범들은 죽음 당하지만 죽음으로 자유를 얻는다
.
18세 소년인 이문평은 다시 태어나면 해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다
. 해는 예전부터 많은 것들의 비유되면서 사용되어 왔다
. 일제시대의 쓰여진 시들에도 많이 해를 비유하곤했다
. 여기서 해의 의미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영원의 의미로 해석 될 수 있다
. 그리고 반딧불은 극에서 죽은자의 영혼이라는 의미로 해석 되서 나타난다
. 반딧불은 극중에서 두 번 등장하게 되는데 극의 중간부분과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오게 된다
. 중간에서 나오는 반딧불들은 극에서 나온 것처럼 수없이 죽어간 포로들의 영혼일 것이다
. 반딧불은 환경이 좋은 곳에서 사는 곤충이다
. 그래서 반딧불하면
‘깨끗함
’을 연상한다
. 마지막에 나오는 반딧불의 의미는 모든 것을 깨끗하게 용서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
사형을 선고 받고 나서 김 춘길은 야마가타 타케오에게 찻잔을 건넨다
. 야마가타 때문에 이곳에 들어온 김 춘길이 야마가타에게 찻잔을 내민 것은 용서의 의미와 일본의 정화를 의미하게 된다
.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 담배는 꺼져가는 생명을 잘 표현해 준다
. 그리고 죽기 전날밤에 배우들이 부르는 아리랑에서는 우리나라의 한
, 조선 포로 감시원들의 한을 표현하고 있다
. 아리랑을 통해서 한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하지만 그 속에 내포된 진실 된 한은 느끼지 못해 아쉽다
. 박 남성의 죽음에서 죽기전에
‘대한독립만세
’는 죽음으로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함을 나타내고 있다
.
포로 감시원들의 수용소에서 지냈던
5명의 전범들을 통해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전쟁의 참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솔직히 이번 연극을 보지 못했다면 포로 감시원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고
, 이들의 억울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이 포로 감시원들의 수용소 안에서는 죽음이라는 농담도 할 수 없는 곳이다
. 연극이 시작되고 과거 회상부분에서 전범들은 서로를 놀리고 장난을 치는 가벼운 장면을 보여준다
. 하지만 이런 농담속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섣불리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무거운 공간이다
. 또한 이곳은 항상 배고픔과 들리지 않는 외침만 있는 그런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
“전쟁의 부조리 속에 진실을 찾는다
”라는 목적으로 다큐가 제작되지만 이 다큐는 결국 다른 사람 손에 맡겨져서 새로운 연출을 맡는다
. 과연 이 연극에서 나타내고자 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 정말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인지
,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전쟁의 희생양인지를 계속 되묻게 하는 작품이다
. 무지를 탓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는 것쯤은 포로 감시원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자신이 구타를 당한다고 남을 구타한다는 그런 의미의 합리화는 받아 들여지기는 조금 어렵다
. 그래서 내가 느낀 이 연극은 시대상황이 낳은 모순된 부조리속에 벌어진 일들로 해석한다
. 그런 시대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행해진 조금은 억울하고 답답한 일들도 또한 그들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 연극을 통해서 그들의 억울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