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Ⅱ LIEBEⅡ> '사랑Ⅱ LIEBEⅡ' 관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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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하
등록일 2021.07.05
조회 8042
<사랑Ⅱ LIEBEⅡ>는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신나고, 이상하며, 슬픈 연극이어서ㅡ정말이지 황홀한 공연이었다.
나는 <사랑Ⅱ LIEBEⅡ>를 감상하기에 앞서 지난주 <으르렁대는 은하수>를 먼저 봤다. 앞서 관람한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사랑Ⅱ LIEBEⅡ>와 마주하니, 나름 박본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해한 박본은 2000년대 초반, 시단(詩壇)을 뜨겁게 달궜던 '미래파 시인들'과 궤를 같이 한다. 당시 몇몇 젊은 시인들이 서정시의 정통을 거부하고 환상, 전복, 엽기, 난해성, 무의식, 개인 은어의 사용이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작품(박본의 작품 역시 이와 같은 특징이 농후하게 드러난다)을 써냈다. 이는 곧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큰 파장을 불러왔는데,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극찬부터 '시가 자폐적'이라는 비판까지 각양각색의 반응들이었다. 이들 중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순 없지만, 분명한 점은 미래파 시인들이 보여준 언어적 모험이 시단에 전례없는 활기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유착 상태에 빠졌던 시 문학이 때아닌 논쟁으로 다시 전진하기 시작한 것. 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나는 박본의 연극도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할 때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즉, 그의 극이 난데없이 산만하고 어려운 건 사실이나 그가 기존의 연극 문법을 비틀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것이 향후 연극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랑Ⅱ LIEBEⅡ>는 아이돌이 되고 싶었지만 실패한 후 자살한 현무, 청룡, 주작이 지구 내핵에서 자신들 그룹의 멤버로써 이무기짱을 기르는 이야기다. 일단 배경부터가 특이하다. 지구 내핵이라고? 보통 죽음의 이미지는 상승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흔히 사람이 죽으면 위에 있는 어떤 세계로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품 속 현무, 청룡, 주작은 지하에 갇혀 있다. 가만 보면 그들은 완전히 죽은 상태도 아닌 것 같다. 극은 그들이 지구 내핵의 한 정원에서 갖가지 감정과 트렌드를 길러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조달한다는 설정이다. 나는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대체 박본이 우리에게 내보인 세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는데, 극의 주제와 엮어 생각하니 어렵지 않게 수용할 수 있었다.
극중 현무, 청룡, 주작은 반복적으로 '완벽'에 대해 언급하고, 강조한다. 현실 세계와 인터넷 세상 사이에서 진짜 자아ㅡ진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고 떠도는 현대인들에게, 보편적인 감정을 제공하는 연예 산업이 지탱되기 위해선 아이돌만큼은 '완벽(극중 완벽이란 개인주의의 배제, 더 정확히는 획일화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그들이 그 완벽함을 충족시키지 못 해 자살했다는 점인데, 현실 너머의 세계에서마저 완벽주의를 포기하지 못 한 걸 보면 연예 산업의 덫에 영원히 빠진 듯하다. 마치 <프로듀스 101>의 F등급 연습생들이 어떻게든 A등급, 데뷔조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모양새다. 현무, 청룡, 주작은 결코 죽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돌이 되기 위해 지하 단계(F등급)에서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점을 바탕에 두고 극을 검토하면 모든 것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연예 산업을 사회 전체의 단위로 확장시키기 위해 사랑의 후속편, 무결점의 사랑인 '사랑Ⅱ'를 쫓는 현무, 청룡, 주작의 모습이 처절하게 느껴진다. 이와 달리 극에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 사운드, 오브제 등은 하나같이 아기자기하고 경쾌하며 밝아서 도리어 기괴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그 기괴함의 끝에는 단연 이무기짱이 있었다. 박본은 이무기짱이 아이돌이 되는 과정ㅡ마침내 사랑Ⅱ를 탄생하는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로 포장하지만, 그 내면은 현무, 청룡, 주작이 극한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또 한 명의 희생자를 양산한 거 아닌가.그래서 극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다'라고 자막으로까지 친절히 알려주지만, 나는 영 못미덥다. 슬픔, 절망, 증오 없는 사랑을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녕 사랑Ⅱ가 이 세상을 지배하면, 모두가 아이돌처럼 완벽해져 버리면 행복으로 가득해질까? 나는 아닌 것 같다.
박본도 아마 아니라고 생각할 듯하다. <으르렁대는 은하수>에서 관객들에게 서로 뺨을 때리면서도, 손을 맞잡아 이해하고 존중하라고 일러준대서 알 수 있듯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다만 우리들이 함께 나아갈 것'을 주문한다. 이와 결을 달리하는 <사랑Ⅱ LIEBEⅡ>의 극중 사건은 현 시대 연예 산업에 대한 고발, 혹은 재미난 풍자로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니 '극이 너무 난해하고 유치하다'는 의견이 왕왕 있다. 그러나 그들도 박본이 대체 무엇을 지향하는가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금방 그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S. 박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배우분들이 장난 아니게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사 외우기도 힘들겠지만, 무엇보다도 캐릭터 분석이 곤혹일 듯. 열심히 연기해 준 그들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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