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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고전연극탐험Ⅰ "동 주앙"> 뼛속까지 자유로운 영혼, 동주앙
  • 작성자 이*나

    등록일 2011.03.28

    조회 1945

일요일 낮공연. 동주앙역에 김도현.

안내책자에는 작가에겐 비극보다 희극이 더 쓰기 어렵다는 글이 적혀 있다. 사람을 울리는 일보다 웃기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

하긴, 자칫하면 유치하거나 썰렁해질 수 있는 개그의 미학, 게다가 그 안에 많은 페이소스를 녹여내야 하는 것이 희극.  풍자와 희화화에 성공하지 않으면 말장난 밖에 되지 않는 것이 희극이다.

 

겨울부터 명동예술극장의 공연을 연속해서 보게 되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데, 동주앙은 사실 거의 포기하고 있던 상태에서 보게 된 작품.

동 주앙에 대한 나의 인식은 희대의 바람둥이, 혹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인간적,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자가 아니었던지.

예전에 조니뎁이 나온 영화 돈주안으로 살짝 맛뵈기만 했던 인물이다.

 

어떤 인물들은, 인간의 총체적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상징적이다.

예를 들어, 햄릿, 오이디푸스, 파우스트, 지킬박사, 시지프와 같은 인물들, 그리고 동 주앙이 바로 이런 인물 중의 하나이다.

동 주앙을 한낱 바람둥이로서만 볼 것인가,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나, 그의 인생이나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곱씹어 볼 것인가.

 

동 주앙은 2+2=4인 것만을 믿고 신을 조롱하며, 내세나 종교따위에 집착하지 않고,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다.

위 안내에 써 있듯이 신과 인간의 모든 법을 무력화시키는 뼛속까지 자유로운 인간이다.

한 여자가 나타나면 그녀의 매력에 충실하나, 다른 매력의 여자가 나타나면 새로운 상대에게 집중한다. 사랑을 지켜야 한다는 의리나 관습따위는 개나 줘버려라를 주장하는 동 주앙의 영혼은 그야말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그 자체로, 이 순간만을 산다. 불교의 철학중 지나간 것은 모두 지나간 것이며, 바로 이 순간에 나는 새로 태어나고 또 죽으며 계속해서 끊임없이 태어난다고 하는데, 동주앙의 사랑도 감정도 바로 그 순간에만 충실하다. 그러나, 동주앙이 훌륭한 철학자가 되지 못한 것은, 자기 자신 혼자만 그 순간에 충실하며, 또 누군가를 얻기 위해 계략도 세우는 그닥 일관성 없는 혼자만의 일신우일신을 추구하는바, 헛된 약속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헛된 욕심으로 누군가를 슬프게 하며 모욕한다.

 

사랑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가.

과학자들은 그 시간이 길게 잡아 3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3개월이 지나면 첫눈에 반한 매력은 반감되기 시작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설레이는 감정은 날이 지날수록 퇴색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간의 사랑보다, 의리와 책임에 입각해 그 사랑을 유지시킨다. 한마디로 사랑에 대해서 스스로 자기검열을 늘 철저히 하는 것이라는 것. 동 주앙은 그렇지 않다. 그저 상대의 매력에 빠지고 그 순간에 충실하고 자기 검열 따위는 없다. 때론 사랑을 얻기 위한 거짓말로 서슴치 않는다. 그게 여러 여자들을 파탄으로 빠뜨리는 원인이 될 것이다.

 

능수능란한 말재주로 빚쟁이를 따돌리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하며, 아버지의 권위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나 절대 수긍하지 않는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그의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

그러던 그가 일대 변화를 맞고 위선적으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당신들도 모두 위선적으로 살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 역시 니들 입맛에 맞춰주겠다라는 것이 동주앙의 의지이자 주장이다.

그 누구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고 그는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하인도 그를 계속해서 비난한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고독한 자유방랑가, 동 주앙. 시대의 질서를 모두 희화화하고 풍자하고 웃어버리는 유쾌한 한 인간.

 

몇 세기를 건너 그의 모습이 아직도 우리에게 웃음을 주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동물적이기까지 한 그의 본능충실에 대한 의지를 사람들이 선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간의 규칙과 법규따위, 비난따위 조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희곡속에서 탄생한 동 주앙의 캐릭터는 사회와 더물어 살기 때문에 실현하기 어려운 인간의 자유에 대한 분출구가 되는 것은 아니겠는가.

 

연극은 내내 웃음이 빵빵 터진다. 참 잘 웃는 나인데 요즘 들어 개콘이고 뭐고 TV 프로를 보며 빵빵 터져본 적이 없는데, 동 주앙은 제대로 웃게 해줬다고나 할까.

솔직의 궁극을 보여주는 동주앙의 대사와 갑자기 극 밖으로 튀어나가는 듯한 인물들의 행동, 반어법적 수사와 관객과의 호흡이 매우 유쾌했다.

 

그동안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동주앙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심도깊은 연극이었으며, 연기를 맡은 배우들의 연기야 뭐라 덧 붙일 필요 없을만큼 훌륭하다.

이번 연극에서는 특히 등장인물들의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쓴 듯 했는데, 캐릭터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멋진 시도였고, 의상역시 인물의 성격을 잘 반영해 주어 좋았다. 특히 동주앙의 의상은 전체적으로 매우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광택이 많이 나는 소재를 썼는데 기럭지 므흣한 배우 김도현과 아주 잘 어울렸다.

 

이번 공연에도 수고해주신 많은 스텝과 배우들, 극장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일요일 낮공연엔 이순재씨께서 내 앞 줄에서 관객의 입장으로 관람을 하기도 하셨고 여기 저기 선생님들이 많이 오셨는지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들이 이채로왔다.

근데, 의무적으로 봐야 하는 대학생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공연 전이라도 극장안에서 서로 큰소리로 이름부르며 까부는 행동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2011. 3. 28.

 

4월엔 명동예술극장에서 안톱체홉의 갈매기를 공연한다. 이번엔 좀 일찍 가서 볼 수 있길 고대.

 

 

이하나씀.

20110126_동주앙포스터_2절3.jpg
세계고전연극탐험Ⅰ "동 주앙"

- 2011.03.10 ~ 2011.04.03

- 월,목,금 7시 30분 / 수,토,일 3시 / 화 공연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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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8일(화) 19:30, 3월 9일(수) 15:00 프리뷰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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